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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은행, 그들만의 '노사 화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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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은행, 그들만의 '노사 화합'

비정규직도 산별 금융노조도 '난 몰라'

"굉장히 슬픈 일입니다. 왜들 그러는지 정말 모르겠어요."

16일 하나은행 노사의 화합 선언 소식을 들은 한 노동 전문가의 한탄이었다. 노사가 더 이상 싸우지 않고 평화롭게 지내겠다는데, 노동 전문가인 그가 왜 슬펐을까?

개별 기업의 노사가 당사자 사이의 합의에 따라 임금 동결 등 '무파업 선언'을 하는 것은 새삼스럽게 놀랄 일은 아니다. 하지만 하나은행 노사의 '화합 선언'이 갖는 사회적 파급력은 만만치 않다. 하나은행지부가 산별노조인 금융노조에 소속돼 있기 때문이다.

금융노조는 당장 "무효"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하나은행 노사의 자발적인 평화 선언은 과연 무엇이 문제일까?

하나은행 노조 "임금동결·소모적이고 비생산적인 단체 행동 자제"
▲ 하나은행 노사는 이날 서울 을지로 본점에서 김정태 행장과 김창근 노조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노사 화합을 위한 공동 선언문'을 발표했다. ⓒ뉴시스

하나은행 노사는 이날 서울 을지로 본점에서 김정태 행장과 김창근 노조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노사 화합을 위한 공동 선언문'을 발표했다.

노사는 선언문에서 은행의 경영 상태 개선과 신인도, 영업력 신장을 위해 함께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특히 노조는 소모적이고 비생산적인 단체 행동을 자제하고 경영 악화 등 필요한 경우에 임금 인상 요구를 자제하겠다고 밝혀 사실상 '임금 동결' 의지를 내비쳤다.

이번 노사 화합 선언은 은행 측이 노조에 경영상의 어려움을 호소하면서 제안한 것이다. 금융노조 하나은행지부는 노사 화합 선언 발표에 앞서 조합원에게 "각종 경영 지표가 악화되고 있고 정부가 법인세까지 부과하면서 은행이 경영 위기 상황을 맞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2월 기획재정부가 "2003년 하나은행과 서울은행의 합병은 역합병에 해당된다"며 1조7000억 원의 세금을 물리면서 노사 모두 위기의식이 생겨난 것이다. 이는 지난해 하나금융그룹이 거둔 순이익 1조2000억 원을 뛰어넘는다.

"법적 문제 없으나 신사도 어겼다"…금융노조 "원천 무효" 반발

경영 상태를 이유로 개별 기업 노사가 자발적으로 임금을 동결하는 등 화합 선언을 하는 것 자체는 어찌 보면 둘 다의 생존을 위해 자연스러운 일이다. 더욱이 올해 들어서 LG전자, 코오롱, 대한항공 등에서 노조가 먼저 임금 동결을 선언했다. 금호석유화학는 아예 '항구적 노사 평화 선언'을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독 하나은행의 노사 화합 선언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은 이유는 하나은행이 산별노조인 금융노조 소속이기 때문이다. 산별노조의 임금 및 단체교섭 권한은 원천적으로 금융노조에 있다. 금융노조는 아직 올해 산별교섭을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지부가 덜컥 '임금 동결'을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금융노조가 보건의료노조와 달리 산하 지부의 임금 인상률에 영향력이 적었다는 점에서 임금 동결 자체는 큰 변수가 아닐 수도 있다. 법적으로도 아무 문제가 없다. 은수미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 우리나라는 기업별 노조가 산별노조와 동등하거나 그 이상의 권리를 갖고 있기 때문에 법·제도적으로는 문제될 것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은 연구위원은 "이번 선언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더라도 산별노조의 규약 및 6년째 진행되는 금융 산별 교섭의 관행을 저버린 것은 사실상 산별노조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과 다름 없다"고 설명했다. 하나은행은 이런 선언에 앞서 산별 내부의 협의 혹은 승인 절차도 거치지 않았다.

더욱이 올해 금융노조는 이명박 정부가 예고하고 있는 금융 공기업 민영화 등 대대적인 금융 산업 구조개편에 당면하고 있다. 함께 발을 맞춰 가더라도 각종 금융 산업 개편 움직임을 막아낼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날 하나은행 노사의 화합 선언은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대형 노조가 '자기 살 길'만을 찾아간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금융노조는 이 때문에 하루 전날인 15일 간부 전원이 하나은행지부를 방문해 중지를 요청했지만 별 소득을 거두지 못했다. 이런 사정 탓에 금융노조는 즉각 성명을 통해 "실망과 우려"를 표명하며 "교섭 권한을 지부에 위임한 바 없으므로 노사 공동선언은 원천 무효"라고 핏대를 세웠다.

금융노조 관계자는 "산별노조는 다양한 지부들의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공통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것인데 일개 지부의 일방적인 행동으로 인해 다른 지부도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며 "결국 금융노조의 지위 자체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규직-사측 만의 '평화' 선언, 부메랑 돼 돌아올 것"

형식적·절차적인 문제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이번 선언이 가지는 중장기적인 파급력이다.

은수미 연구위원은 "1990년대의 노사화합 선언과 2008년 현재의 노사화합 선언의 의미는 다르다"고 못 박았다. 노동 시장이 바뀌었고 노사 관계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기업별 노조가 포괄하지 못하는 비정규직이 음지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비정규직, 즉 불안정한 시장에 소속된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이 문제는 더 이상 정규직이 중심인 기업별 노사관계로 해결되지 않는 영역에 방치돼 있다. 노동계가 최근 '대기업 노조의 전투적 조합주의', '귀족 노조의 이기주의'와 같은 비판을 받는 것은 이 구조적 문제 때문이다.

노동계는 이런 난관을 산업별 노동조합을 통해 돌파하기 위한 시도를 하고 있다. 은수미 연구위원은 "오늘 나온 하나은행 노사 화합 선언은 사각지대 노사 관계를 포기하겠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비정규직을 배제한 정규직과 은행 측의 '화합 선언'일 뿐이기 때문이다.

은수미 연구위원은 "만에 하나 하나은행에서 비정규직 문제가 터져 나왔을 때, 화합 선언을 한 정규직 노조는 '도와줄 수 없다'고 나올 것"이라며 "결국 이번 선언은 진정한 산별노조로의 발전이 유보된 금융노조 뿐 아니라 해당 노조인 하나은행지부에도 부메랑이 돼 돌아올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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