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이·친박이 어디 있느냐"는 이명박 대통령의 말을 '사실 규명' 차원에서 나온 말로 받아들이면 왜곡에 해당한다. 패를 지어 갈등하고 반목하는 엄연한 현실을 가리려는 헛된 시도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의지 표명' 차원에서 던진 말로 이해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앞으로 그렇게 하겠다'고 다짐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친이·친박이 어디 있느냐"는 말은 "친이·친박을 가리지 않겠다"는 말로 변환된다.
여러 요소가 그렇게 얽혀있다. "(나의)경쟁자는 외국의 지도자"라는 말이나 "정치의 잡다한 문제는 당이 책임지고 해야 한다"는 말이 뒷받침한다.
전당대회 개최시기 '훈수' 두면서 '잡다한' 정치문제는 당이 풀어라?
표면적으로 보면 국정에 전념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국정에 전념해야 하니까 당무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당무에 관여하지 않으니 친이·친박을 가를 이유도 없다.
대단히 전향적인 태도 같다. 당원이기 이전에 국가 원수라는 자신의 위상과 역할을 제대로 파악한 모습 같다. '여의도식 정치'에 익숙지 않은 자신의 성향을 인정한 발언 같다.
하지만 아니다. 말이 말을 배척한다.
총선 직후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를 만나 그랬다. 당 대표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는 예정대로 7월에 개최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그 기간 동안 강재섭 대표 중심으로 당이 운영돼야 한다고도 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과 25분간 비공개 대화를 마친 강재섭 대표가 그랬다. 친박·무소속 연대의 복당을 '인위적 정계개편'이라며 불허한다고 했다. '복당 검토' 발언을 한 지 며칠 만에 입장을 사실상 뒤집은 것이다. 그래서 다수가 분석한다. 강재섭 대표의 말은 이명박 대통령의 말이라고 해석한다.
문제가 여기에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한나라당의 총재가 아니다. 당원에 불과하다. 그래서 결정권과 결재권이 없다. 그런데도 최고위원회에서 결정할 일을 직접 거론하고 사실상 지시한다. '당의 잡다한 문제'에 대해 감 놔라 대추 놔라 운위한다.
이해할 국민은 많지 않다. 공천 파동이 일었을 때 "공천은 당이 알아서 하는 일"이라며 불똥이 자신에게 튀는 것을 차단했던 모습과 너무 상치되기에 생뚱맞기까지 하다. 선거결과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국정운영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공천 문제에 대해선 '무관'을 강조하면서 전당대회 같이 '소소'하고 '잡다'한 문제에 대해 일일이 거론하는 모습에 어지럼증을 느낄 정도다.
그때그때 달라도 지향점은 하나…친박 배제
그래도 일관성은 있다. "공천은 당이 알아서 하는 일"이라는 말과 "친이·친박이 어디 있느냐"는 말에 공통점이 있다.
친박의 거취와 운명이 걸린 문제에 대해 선을 그은 점이 같다. 공천과 무관하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친박 배제 공천에 앞장섰던 사람들이 '못 먹어도 고'를 외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친이·친박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함으로써 친박 배려 또는 친박 포용의 이유를 원천적으로 없애버렸다. 계파가 없다고 하니 특정 계파를 특별히 껴안을 이유가 없다.
새삼 확인된다. '친이'가 따로 모여 움직이는 것보다 더 중한 사실이 확인된다. 이명박 대통령 스스로 '소소한' 당무와 '잡다한' 정치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 요 며칠 사이에 쏟아져 나온 이명박 대통령의 말이 그렇게 가리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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