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자 정리", 이게 한나라당의 철학이 아닐까 하고 묻고 싶다. 밀어붙이고 싶은 것은 그대로 밀어불이는 불도저 폭주, 그 과정에서 누가 희생되는지는 따지지 않는다. 오늘은 노숙자, 내일은 농민과 비정규직, 모레는 이주 노동자, 글피는 ?
아니라면, 앞뒤가 똑 맞게 명확히 해명하고 당사자에게 경고할 것은 경고하고 공당으로서 사과할 것은 사과하는 편이 옳다. 소속 후보가 한 이상한 말에 책임을 피하려 든다면 그건 집권당의 자세가 아니다. 당사자의 책임을 넘어서서, 집권당 차원에서 이 발언이 의미하는 바가 너무도 심각하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이 발언에 답 좀 했으면 좋겠다.
서울 영등포 갑에 나간 한나라당의 전여옥 후보는 KTX가 영등포에 역에 들어오게 하겠다며, "노숙자가 많으면 이게 되겠는가?"라고 말하는 가운데 "노숙자 정리" 발언을 했다. 이게 문제가 되자 유세 연설의 특징상 단문으로 끊어 말하다가 오해가 생긴 것이라며 "노숙자들의 자활지원을 그렇게 표현했다"고 해명했다.
전여옥 후보는 지난 달 27일 이와 관련해서 무슨 말을 했는가? 동영상이 있으니 자신이 한 말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반드시 우리 영등포역에 KTX를 세우겠다. 그러려면 노숙자들을 정리해야 한다. KTX가 백날 오면 뭐하느냐. 영등포역이 전국에서 노숙자 1위 역이 된다면 KTX 백날 해야 소용없다."
문맥상, KTX 들어서는 일에 노숙자가 걸림이 된다고 전제한 것이고 그 어디에도 노숙자를 배려하는 발언 태도는 보이지 않는다. "KTX 영등포역"이 그녀가 내놓은 정치상품이고, 이걸 하는데 걸리적거리는 대상은 노숙자이며, KTX 사전정지 작업을 위한 방법 가운데 하나가 노숙자 정리, 이렇게 되는 것 아닌가?
해명에 담긴 마음이 진심이라면
만일 전여옥 후보의 사후 해명에 담긴 마음이 진심이라면, 먼저 노숙자 문제에 대한 아픔이 표현되고 그걸 해결하는 정책이 나오며 이와 동시에 KTX 이야기가 뒤따르는 것이 순서다. 아무리 유세현장의 특징상 단문연설을 한다 해도, "노숙자들에게도 재기의 기회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말 하는데 시간이 그리 걸리는가?
과거 대변인까지 지냈으니 정치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본인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머릿속에 있는 생각이 말로 되어 나오는 법이다. "노숙자"는 어떤 노 씨 성을 가진 숙자라는 여인이 아니다. 인생의 실패, 사회적 냉대, 궁지에 몰린 처지, 고단한 하루하루, 그 모든 것을 뭉뚱그려도 노숙자의 고통을 담아낼 수 있을까? 우리 사회가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것만 해도 한탄스러운 일인데, 이렇게 자기가 내놓은 정책 프로그램을 위해 제거대상처럼 삼아도 되는 것인가?
노숙인 봉사단체 "다시서기 인권센터"가 그녀의 발언에 대해 비판하자, 전여혹 후보는 "노숙인들의 인권도 중요하지만, 주민들도 피해를 봐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노숙자들의 인권을 존중하는 것이 주민들의 피해로 연결되고 있다는 논리다. 다시 말해 노숙자들의 인권과 주민들의 이익이 서로 대립하고 있다는 뜻 아니겠는가?
노숙자 또는 노숙인의 인권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런데 노숙자들의 인권은 영등포역에서 노숙의 삶을 그대로 인정해주라는 것에 있지 않다. 이 점 착각해서는 안 된다. 노숙자들의 인권은, 우선 노숙자라고 경멸당하지 않고, 존엄한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는 것이며 그에 따라 노숙의 현실에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날 수 있도록 최선의 정책적 노력을 요구한다.
노숙자, 또는 노숙인의 인권은 역에서 잠자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럴 필요가 없도록 해주는 것에서 실현되어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노숙자들의 인권이 존중되면 될수록 당연히 영등포역의 환경은 개선되는 것이며, 주민들은 피해는커녕 지역 복지의 혜택을 공유하게 되는 것이다.
정리대상은 꼭 따로 있는 것만 같단 말이야
전여옥 후보의 말을 들어보면 정작 또는 진작 정리되어야 할 장본인은 달리 존재하는 것 같다. 정말, 이참에 제대로 정리 좀 했으면 좋겠다.
아무래도 이번 4월만큼은 '청소의 달'로 했으면 싶다. 깨끗이 치우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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