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뒤 부산은 명실상부한 구도(球都)로 자리매김했다. 프로야구가 생긴 뒤에도 부산을 연고지로 한 롯데는 강팀이었다. 두 번이나 한국시리즈 정상에 섰다. 하지만 어느 때부턴가 롯데는 하위권 팀이었다. '가을에도 야구 보고 싶다'는 팬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롯데가 한국시리즈에 마지막으로 나섰던 건 1999년. 외국인 슬러거 펠릭스 호세가 롯데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던 해다. 그는 36 홈런, 122 타점을 기록했다. 비록 한국시리즈에서 한화에 패했지만 그는 시리즈에서 4할3푼8리의 맹타를 휘둘렀다. 롯데는 호세를 잊지 못해 왔다. 호세가 떠난 뒤 롯데로 온 외국인 타자들은 대부분 물방망이였다. 팀 성적도 안나는 와중에 팬들은 외국인 타자들을 불신했다. 반대로 호세의 호쾌한 홈런포는 신화가 됐다.
결국 롯데는 2006년 호세를 다시 모셔왔다. 하지만 이듬해 성적부진으로 시즌 도중 퇴출됐다.
2008년 아직 이른 감은 있지만 롯데 팬들은 '호세의 재림'을 경험하고 있다. 물론 호세가 다시 온 것은 아니다. 그의 이름은 카림 가르시아. 가르시아는 2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펼쳐진 SK와의 경기에서 시즌 2호 대포를 쏘아 올렸다. 시즌 1호 홈런에 이어 이번에도 밀어쳐서 좌측 펜스를 넘기는 홈런이었다. 한때 베이브 루스를 연상시키는 파워를 갖췄다는 이유로 '라티노 밤비노'란 별명을 얻은 가르시아의 강한 손목 힘을 여실히 보여주는 홈런. 이 쐐기포로 롯데는 4연승의 콧노래를 부르게 됐다.
호세의 파괴력에 필적하는 가르시아는 원래 메이저리그에서도 알아주는 유망주였다. 하지만 철새처럼 팀을 옮겨 다녀야 하는 '저니맨'이 됐다. 여러 원인이 있었지만 타석에서 참을성이 없었던 게 최대 문제였다. 그는 2005년 일본 프로야구 오릭스 버팔로스로 떠나야 했다. 양키즈에서 잠시였지만 한솥밥을 먹었던 마쓰이 히데키는 가르시아에 "타석에서의 참을성은 일본에서 매우 중요하다"는 조언을 해줬고, 가르시아는 이 말을 따랐다. 2005년 가르시아는 일본 프로야구 역사를 다시 썼다. 도호쿠 라쿠텐을 상대로 그는 2경기 연속 3홈런을 기록했다.
가르시아 하면 떠오르는 한 장면은 2003년 뉴욕 양키즈와 보스턴 레드삭스의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나왔다. 3차전 보스턴의 에이스 페드로 마르티네스는 가르시아의 등을 맞췄다. 가르시아는 마르티네스와 몸싸움을 펼쳤다. 분을 참지 못한 가르시아는 2루에서 아웃될 때 일부러 보스턴의 2루수 워커를 향해 발을 높게 들기도 했다. 가르시아의 플레이는 양키즈 선수들의 투지에 불을 댕겼다. 결국 마르티네즈는 이 경기에서 패전투수가 됐고, 이 역사적 두 라이벌의 시리즈에서도 양키즈가 7차전까지 가는 접전끝에 보스턴을 눌렀다.
호세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 1999년 플레이오프 7차전. 0-2로 삼성에 뒤지던 롯데는 호세의 6회초 터진 솔로포로 1-2까지 따라 붙었다. 하지만 호세가 3루를 돌아 홈으로 들어 오는 순간 대구 팬들은 맥주캔과 생수병을 호세를 향해 던졌다. 화가 난 호세는 관중석에 방망이를 집어 던졌다. 이 사건으로 호세는 퇴장 당했다. 하지만 호세의 분노는 롯데 선수들을 자극시켰다. 롯데는 9회초 임수혁의 동점 2점포와 11회 김민재의 결승 적시타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할 수 있었다.
호세의 신화에 오랫동안 갇혀 있었던 롯데 팬들에게 가르시아가 남은 시즌 동안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관심사다. 가르시아는 호세와의 비교에 대해 자신있게 말했다. "호세는 멕시칸 리그에서 직접 만나본 적이 있다. 그가 롯데에서 잘 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하지만 지금 롯데에는 가르시아가 있다. 호세는 호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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