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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자와 정자의 만남, 어렵고 또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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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자와 정자의 만남, 어렵고 또 어렵다"

하리하라의 '육아 일기' <11>

2006년 7월 29일

엄마는 오늘 떨리는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났어. 오늘은 진짜 별이를 만나러 가는 날이거든. 엄마 아빠 몸에서 채취된 난자와 정자는 5일 전에 수정되어 별이가 되었지. 그리고 5일 동안 인큐베이터 안에서 부지런히 자라서 지금쯤 포배기에 접어들었을 거야. 체외 수정을 하게 되면 보통 3일에서 5일 후에 엄마의 자궁에 이식하게 되는데, 엄마는 5일 이식을 하게 되었으니 오늘이 별이와 엄마가 만나는 첫날이 되는 거지.

아직 별이와 엄마는 만나지도 못했는데 엄마의 배는 평소 사이즈에서 8인치(약 20㎝)나 불어나서 거동하기가 힘들었어. 복수가 전혀 빠지지 않고 있었거든. 그래도 별이를 만난다는 기대에 들떠서 오늘 아침은 전보다 덜 힘든 것 같았지. 우리 별이는 지금쯤 얼마나 부지런히 자라고 있을까? 지금쯤 별이의 몸에 일어나고 있는 변화가 어떤 것인지 한 번 알아볼까?

5일 전, 별이는 엄마의 난자와 아빠의 정자가 만나서 수정되면서 생겨났어. 보통의 경우, 수정은 엄마의 몸 속 난관(나팔관)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이지만, 별이는 체외수정이었기 때문에 시험관에서 이 과정이 이루어진 것이 다르지. 자연 임신의 경우, 여성의 질 속으로 배출된 정자들은 부지런히 몸속을 거슬러 올라가 난자가 천천히 내려오고 있는 난관까지 올라가야 하는데, 이 과정은 결코 만만하지 않단다.

가장 큰 난관은 질 내부의 산성도야. 질은 몸의 외부와 연결되는 통로이기 때문에 외부에서 들어올지도 모르는 미생물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 산성을 띠고 있어. 단백질은 산과 만나면 변성되기 때문에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거든. 정자 역시 단백질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많은 수가 질의 산성도를 이기지 못하고 중도하차하고 말지.
▲난자의 투명대 주위에 몰려든 정자의 모습. 투명대를 통과해야 비로소 난자와 결합이 가능하다. ⓒbiology.iupui.edu

요행히 질 입구를 무사히 통과했다고 하더라도 어려움은 아직도 많아. 정자의 길이는 약 60㎛에 불과한데 난자가 있는 곳까지 가려면 질을 지나 자궁을 통과해 난관까지 가는 평균 18㎝의 거리를 오로지 꼬리의 힘만으로 움직여야 하니까. 사람으로 치자면 약 170㎝의 남성이 5㎞ 정도의 거리를 수영하는 것과 같아. 게다가 난관은 질보다 위쪽에 있기 때문에 거슬러 올라가기가 만만치 않지.

그래도 정자는 포기할 수 없지. 정자들은 부지런히 꼬리를 움직여 난자에게로 달려가는데, 정자는 보통 분당 3㎜의 속도로 움직이니까 사정된 지 평균 1시간이 지나면 난자 근처에 도달하게 돼. 하지만 난자와 만나려면 아직도 더 노력해야 해. 난자의 겉면은 투명대(zona pellucida)라고 하는 투명하고 질긴 막으로 둘러싸여 있거든. 이제 정자는 머리 위의 첨체(acrosome)라는 부위에서 애크로신(acrosin), 히알루로니다아제(hyaluronidase) 등의 효소를 방출해서 투명대에 구멍을 뚫기 시작하지. 한참을 애를 쓴 끝에 투명대에 겨우 정자 하나가 통과할 만한 구멍이 생기면 정자는 꼬리를 떼어버리고 머리만 난자 안으로 들어간단다. 그러고는 정자의 핵과 난자의 핵이 하나로 합쳐지는 순간, 장차 새로운 생명체로 발생할 수정란이 생겨나는 거란다.
▲난자의 핵과 정자의 핵이 서로 융합되는 순간. ⓒ
biblia.com/sex/fertilization.html

별이도 5일 전에 이 과정을 거쳐 생겨났단다. 그런데 난자를 둘러싸고 있는 투명대는 정자에게 있어서는 매우 질기고 튼튼한 장벽으로 작용할 때가 있어. 별다른 이유 없이 아기가 생기지 않는 경우, 그 원인 중 하나가 정자가 난자의 투명대를 뚫고 들어가지 못해서인 경우도 있어. 정자가 투명대를 뚫지 못하면 수정이 일어나지 않으니까.

그래서 이런 경우, 인위적으로 난자의 투명대에 가느다란 유리관으로 구멍을 뚫은 뒤, 정자를 직접 넣어주는 세포질 내 정자 주입술(Intracytoplasmic sperm injection, ICSI)을 실시하기도 해. 세포질 내 정자주입술은 정자를 하나하나 잡아서 직접 난자에 넣어주기 때문에, 정자가 투명대를 뚫지 못하는 이유 외에도 정자가 아주 적거나 거의 없어서 자연 수정이 불가능할 때에도 많이 사용되는 유용한 기술이야.

수정란은 이후 바쁜 발달과정을 거치는데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난할(cleavage)이라고 하는 세포 분열이야. 수정란은 단 하나의 세포로 이루어졌지만, 한 명의 인간은 수십 조 개에 달하는 세포들로 이루어져 있거든. 그러니 별이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세포분열을 통해 세포의 숫자를 늘리는 일이야.
세포질 내 정자 주입술의 문제점

세포질 내 정자 주입술(ICSI)의 경우, 특히 남성의 원인이 되는 난임 문제 해결에 많은 기여를 한 기술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ICSI로 인해 수정된 배아에서 평균보다 높은 수준의 기형이 발생됨이 관찰되었다. ICSI로 인해 수정에 성공한 태아 중 약 5.1%에서 염색체 이상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자연임신에서 발생되는 염색체 이상 비율 0.4%에 비해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ICSI로 인해 이렇게 염색체 이상이 증가하는 이유는, 정자를 난자에 직접 주입함으로 인해서 건강한 정자의 자연선택이 이루어지지 않았거나, 난자에 구멍을 뚫는 과정 중 난자가 손상을 많이 받았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자연상태에서 수정은 난자에 동시에 도달한 수많은 정자 중 가장 힘세고 빠른 정자에게 선택권을 주지만, ICSI에서는 그러지 못하기 때문이다.
▲세포질 내 정자 주입술. ⓒconceive.ca/index.php

그리고 아무리 가는 유리관을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난자의 입장에서는 커다란 유리 막대에 찔린 것과 마찬가지여서 그 충격으로 난자가 손상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ICSI를 시술받은 경우, 태아 염색체 검사를 받도록 권유하는 병원이 많다.


자, 이렇게 수정된 별이는 이제 부지런히 자랄 준비를 해야지.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세포 분열이라고 그랬지? 그런데 보통의 세포 분열과 발생 초기의 세포분열은 조금 달라. 일반적인 세포 분열의 경우, 세포가 하나에서 둘로 나누어지면 전체적인 크기가 반으로 줄어들기 때문에, 다음 번 분열할 때까지는 휴식기를 가져야 해. 이 휴식기 동안 세포는 원래의 크기로 커지는 거지. 만약 이 과정이 없이 세포 분열만 되풀이 된다면, 분열이 거듭될수록 세포의 크기는 점점 작아질 거야. 그런데 발생 초기에는 이런 형태의 세포 분열이 일어난단다. 그래서 수정란 발생 초기에는 세포 분열이 일어나면 일어날수록 세포의 크기는 점점 더 작아지지. 이러한 형태의 세포 분열을 난할이라고 해. 마치 케이크를 계속해서 잘게 쪼개듯이 세포수는 늘어나지만 세포의 크기는 점점 더 작아지지.

이제 별이는 투명대가 좁아서 더 이상 분열할 수 없을 때까지 난할을 거듭할 거야. 이렇게 투명대 안에 작은 세포들로 가득 차게 된 형태를 '상실배(桑實胚, morula)'라고 불러. 말 그대로 오디, 즉 뽕나무 열매(桑實)처럼 세포들이 빼곡하게 들어찼다는 소리야. 상실배 상태에 다다르면 그 때까지는 모두 동일했던 세포들이 약간은 다른 차이를 가지게 돼.

이 차이를 일으키는 가장 중요한 것은 세포가 처한 위치야. 즉, 어느 위치에 줄을 서느냐에 따라 향후 세포의 운명이 달라진다는 거지. 줄을 잘 서야 한다는 것은 인생 초기부터 아주 중요한 교훈(?)이란다. 각설하고, 분열 초기에는 별다른 차이가 없던 세포들이 상실배 시기가 되면 어느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그 환경에 차이가 나. 상실배 표면 쪽에 있는 세포들은 양 옆과 중심쪽 세포들의 영향만 받지만, 상실배 중앙에 있는 세포들은 전후좌우상하 할 것 없이 모두 세포들로 둘러싸여 있어서 그만큼 많은 상호작용을 하기 때문이야.

이제 세포들은 투명대 안에서 점차 자리를 잡게 돼. 상실배의 중심 쪽에서부터 빈 공간이 생기게 되는데, 이 시기를 포배기라고 하지. 포배기에는 서로 다른 곳에 자리 잡은 세포의 운명이 결정되는데, 안쪽에 자리 잡은 내부세포괴(inner cell mass)는 훗날 태아가 될 부분이고, 바깥쪽을 둘러싼 영양세포층(trophoplast)은 태아를 지지하는 태반과 탯불이 될 부분이야. 즉, 태반과 탯줄은 엄마가 아니라 아가의 몸에서 만들어지는 것이지.

사람의 경우 수정란이 포배기에 이르기까지는 5일 정도 걸리는데, 포배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난관을 모두 통과해서 자궁으로 들어와 착상을 준비하지. 엄마는 오늘 이식하러 가니 별이도 지금쯤 포배기 상태를 지나고 있을 거야. 포배기를 지나면 세포는 난할 대신 일반적인 세포분열을 통해 세포의 숫자도 늘어날 뿐 아니라, 크기도 점점 커진단다.
▲수정란의 발생. 난할을 통해 세포의 수가 많아질수록 세포의 크기는 점점 작아진다. ⓒcell-research.com

▲포배기의 배아. 투명대 내부에 빈 공간이 생겼고, 세포가 내부세포괴와 영양세포층으로 구분된 것이 보인다. ⓒventurebeat.com

포배기에 도달한 배아는 이제 자궁 내막에 달라붙어 뿌리를 내릴 준비를 해야 해. 엄마의 자궁은 혹시나 찾아올지 모를 아가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내막을 부드럽고 두텁게 만들어 놓은 뒤 기다리고 있었지. 이제 포배기에 도달한 배아는 그동안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투명대를 뚫고 나와 자궁 내벽에 달라붙을 준비를 하지. 이 과정은 마치 병아리가 알껍질을 뚫고 나오는 것과 비슷해서, 이를 '부화'라고 불러. 포배기 배아는 부화 과정을 거쳐야만 자궁에 착상할 수 있는데, 간혹 투명대를 뚫고 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 그런 경우 자궁 내벽에 착상을 하지 못하니까 안 돼. 그래서 최근에는 체외수정의 배아를 포배기까지 키운 뒤, 투명대에 약물 처리를 해서 수정란이 쉽게 부화되기를 도와주는 '보조부화술'이 시도되기도 하지. 보고에 의하면 보조부화술을 실시하면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임신율이 20% 정도 상승한다고 해.

오늘 드디어 엄마는 별이를 만날 거라고 예상하고 들뜬 마음으로 병원을 찾았지만, 결국 엄마는 혼자서 집에 와야만 했어. 엄마의 난소 과자극 증후군이 심해서 도저히 더 이상 과정을 진행시키기 힘들겠다는 진단이 나왔거든. 앞서 말했듯이 임신과 관련된 호르몬인 hCG가 복수가 차게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임신을 하게 되면 체내의 hCG의 농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복수가 점점 더 많이 차게 되거든. 지금도 심각한 상태인데 임신까지 동반하게 되면 자칫 엄마도 아가도 모두 위험해질 수 있대. 그러면서 의사 선생님은 지금 열심히 자라고 있는 별이랑 별이 형제들을 모두 냉동 보관 한 뒤, 나중에 몸이 회복되면 그 때가서 이식을 하는 것이 나을 거라고 말했어.
▲착상을 위해 투명대를 찢고 부화하는 배아의 모습. 왼쪽으로 텅 빈 투명대 껍질이 보이고, 오른 쪽에는 포배기 배아가 보인다. ⓒivf.com/bostonpg2.html

오늘은 정말로 별이를 만날 수 있을 거라 믿었는데. 엄마는 결국 입원실에서 알부민 주사만 더 맞고 혼자 몸으로 집으로 돌아와야 했어. 별이를 만나는 길은 굽이굽이 참 장애물이 많기도 하구나. 언제쯤이야 엄마가 별이를 만날 수 있을까.

참고 문헌

김석현 외, '난자 세포질내 정자 주입술 후 임신의 산과적 결과 및 유전적 위험도에 관한 전향적 추적조사', <대한산부회지> 제42권 6호, 1999.

김홍국 외, '단일 병원에서 시행한 염색체 분석 검사의 고찰', <대한소아과학회지> 제47권 11호, 2004.

이원돈 외, '체외 수정 시술시 포배기 배아이식에 관한 연구', <대한산부회지> 제41권 2호, 1998.

김석현 외, '배아의 자궁 내 이식시 보조부화술을 이용한 자구내막 착상율의 증진에 관한 연구', <대한산부회지> 제40권 2호,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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