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으로선 곤혹스럽게 됐다. 이재오-이상득 두 사람의 권력투쟁이 잠잠해지기도 전에 또 한 번의 물고물리는 당내 싸움을 맞이해야 할 운명이다.
김택기 전 의원의 돈다발 파문은 결국 책임론으로 귀착될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당 지지율이 빠지는 판에 한나라당엔 천형과도 같은 차떼기 이미지를 부활시키는 폭거를 저질렀으니 가만히 있을 수 없다.
돈다발 파문이 특정 지역구의 판세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면 또 모를까 전체 선거판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기에 묵과할 수 없다. 전혀 의외의 인물이 저지른 비리행위라면 또 모를까 이미 철새행각과 비리행각(1993년 국회 노동위 돈봉투 살포사건)으로 윤리위원장이 공천 배제를 주장하고 최고위원회가 재심을 요청했던 인물이 저지른 비리이니 '무대포 공천'에 대한 책임론을 덮을 수 없다.
이미 시작된 삿대질, 그러나…
먼 훗날의 얘기가 아니다. 이미 삿대질은 시작됐다. 당내 일각에서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다. 인명진 윤리위원장 같은 이는 이방호 사무총장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대놓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삿대질이 무한궤도 위에서 극렬하게 전개될 것 같지는 않다. 몇 가지 사유가 있다.
이방호 사무총장을 향한 책임론의 성격이 모호하다. 그것이 선거실무 책임자에 대한 당위적 비판인지, 아니면 특정계파 대리인에 대한 정치적 공격인지가 불분명하다. 이 얘기는 '무대포 공천'의 배후 주범이 누구인지 아직 확실치가 않다는 얘기로 연결된다. 그래서 전선을 잡기가 애매하다.
당 안팎에서 김택기 전 의원을 민 게 누구라더라는 식의 '카더라 관측'이 나오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사실관계가 정리된 '혐의'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 기껏해야 연고와 정황에 기댄 막연한 의심에 머물고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무대포 공천'의 주범이 딱 잡아떼도 달리 대응할 묘수가 없다. 이재오-이상득 권력투쟁 과정에서도 나타나지 않았는가. 서로가 서로를 향해 공천에 개입했다고 주장하는데 정작 당사자들은 공천에 개입한 적이 없다고 강변했다.
'무대포 공천'의 주범이 밝혀진다 해도 당장 확전으로 가기는 힘들다. 시간 때문이다. 총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제 보름도 남지 않았다. 이런 시기에 집안에서 삿대질을 하면 야당이 공세무기로 삼는 '차떼기' 이미지만 확대재생산 되고 그에 비례해서 표의 낙하속도가 빨라진다.
어차피 본게임은 총선 후로 미뤄질 수밖에 없다. 이재오 의원의 출마 소식을 접한 정두언 의원이 그랬고, 공천자 55명이 그랬다. "소장파의 충정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은 총선 후에 평가 받을 것"이라고 했다. 이들 만이 아니다. 박근혜 전 대표도 무원칙 공천을 맹비난하면서 "당을 바로잡겠다"고 했다.
갈등 수위는 표가 좌우한다
사정이 이렇다. 수도권 소장파는 '무대포 공천'의 역풍을 온 몸으로 맞아야 하는 사람들이다. 박근혜 전 대표는 당내 비주류로 '무대포 공천'의 피해자에 해당하는 사람이다. 이 두 세력이 총선 후에 '무대포 공천'에 대한 책임론을 제기할 동기와 사유는 충분하다. 당을 바로 잡기 위해서도 그렇고, 자신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도 그렇다.
관건은 결과다. 박근혜 전 대표가 공언했듯이 한나라당의 과반 의석 달성이 필연적으로 실패하게 된다면 책임을 둘러싼 갈등은 극한적인 양상으로 전개될 공산이 크다. '김택기 리스크'의 가치가 그에 비례해서 올라갈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의 결과, 즉 과반 의석 달성에 성공한다면 책임 공방은 김빠진 사이다마냥 밍밍하게 끝날 가능성이 크다. '무대포 공천'의 배후 주범이 누구이든, '김택기 리스크'의 파괴력이 어느 정도이든 공천 그 자체는 무난 또는 성공으로 평가되고 그에 맞춰서 이전의 모든 과정은 불문에 부쳐질 것이기 때문이다.
* 이 글은 김종배의 뉴스블로그 '토씨(www.tosee.kr)'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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