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포백 라인의 약점이 왼쪽 수비에 있다는 점을 간파한 히딩크 감독은 철저하게 오른쪽 공격을 지시했다. 결과는 러시아의 2-1 승리. 이 경기에서 패한 잉글랜드는 결국 유로 2008 본선 진출에 실패했고, 스티브 맥클라렌 감독도 낙마했다. 한때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으로 거론됐던 히딩크에게 당하자 영국 언론은 외국인 감독이 잉글랜드를 맡아야 한다는 여론몰이를 하기도 했다. 2018년 월드컵을 잉글랜드에서 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던 FA(잉글랜드 축구협회)도 결국 잉글랜드 축구의 체질개선을 위해 카펠로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이미 한국의 월드컵 4강 진출과 호주의 16강 진출을 만들어낸 히딩크는 남아공 월드컵이 펼쳐지는 2010년까지 러시아 축구협회와 계약을 2년 더 연장했다. 히딩크의 연봉은 약 200만 유로(한화 약 30억). 이탈리아 출신의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인 파비오 카펠로의 연봉(약 600만 파운드)보다는 작지만 전세계 축구 대표팀 감독 가운데는 2위에 해당하는 연봉이다. 히딩크의 연봉을 지불하는 사람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첼시의 구단주 로만 아브라모비치와 러시아 외교관 세르게이 카르포프로 알려져 있다. 러시아 축구를 유럽 정상권으로 끌어 올리기 위해 석유재벌과 정부관리가 전면에 나선 셈이다.
히딩크 감독이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는 잉글랜드를 택하지 않았던 이유는 단순했다. 잉글랜드가 국제대회에서 적어도 4강 이상의 성적을 내지 못할 경우 감독이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기 때문이다. 왠만큼 잘 해서는 '본전'이라는 의미다. 반면 러시아는 당장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더라도 사실상 크게 잃을 게 없는 상황이었다. 늘 예상치 못한 성적을 냈던 '마법사' 히딩크의 성향과 러시아가 더 잘 어울리는 이유다. 러시아 출신의 축구지도자들이 외국인인 히딩크에 대해 적대감을 보이는 게 흠이기는 하지만 석유재벌 아브라모비치가 든든한 돈줄 역할을 하고 있어 경제적으로도 좋은 대접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그리 나쁜 조건은 아니었다.
히딩크 감독은 유로 2008에서 러시아를 내심 8강 무대에 끌어 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그가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우선 조별 예선 상대인 스페인, 스웨덴과 4년 전 유럽축구선수권을 거머 쥐었던 그리스를 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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