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정 스캔들이 역사를 바꿨다? 영화 <천일의 스캔들>을 보면 대충 맞는 말 같다. 영화 속에서는 "너 때문에 많은 피를 뿌렸다'는 말로 속성처리되긴 하지만, 어쨌든 한 여자에 대한 군주의 욕정이 국교를 바꿔버리는 사태로까지 이어진 것처럼 보이니까 말이다. 여차저차 그렇긴 했다만, 16세기 영국 종교 개혁의 배경이 단지 그것 뿐이었을까? 케네스 모건이 엮은 '옥스포드 영국사'(한울 아카데미)는 당시의 정황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헨리 8세는 왕권에 대한 기존의 '봉건적' 의미에 '제국적' 개념을 부가시켰다. 그는 '왕과 황제'란 단어에 로마제국 이래 눈에 띄지 않았던 의미를 첨가하려 노력하였다.(중략) 그는 교황권의 우위가 왕과 황제에게서 그들의 법적 유산을 박탈하기 위해 인간이 만들어낸 가짜임에 틀림없다고 믿게 되었다." |
이런 야심을 가진 헨리 8세에게 영국 왕실의 우위에서 사실상 내정을 간섭해온 로마 교황권은 걸림돌이자 눈에 가시처럼 여겨졌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사실상 파산 상태였던 헨리 8세는 종교 개혁 이후 잠재적 저항 세력인 수도원을 해산하고 이들의 재산을 왕실에 귀속시킴으로써 든든한 재정적 뒷받침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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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의 스캔들 |
이 과정에 헨리 8세를 사로 잡은 앤 볼린이 하나의 계기로 작용한 것이긴 하되, 돌이켜 보면 그녀는 헨리 8세의 정치적 야심에 이용당한 또 한명의 여성에 불과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헨리 8세를 미치고 팔짝 뛰게 만들 정도로 매력적이었지만, 앤 볼린은 엘리자베스 1세를 낳은 뒤 가진 두번째 아이를 유산하고 근친상간 혐의를 뒤집어쓴 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형의 아내, 즉 형수를 아내로 맞았다가 이혼한 뒤 앤을 취했던 헨리 8세는, 이후 제인 시무어와 또 다른 앤, 캐더린 하워드, 캐더린 파 등과 차례로 결혼했다. 이 가운데 제인 시무어는 출산 중 사망했고, 캐더린 하워드는 간통죄로 처형당했다. 6명의 아내 중 세 명이 비명횡사했으니, 그는 한마디로 '여자 잡아 먹는 귀신'이었던 셈이다. 영화 <천일의 스캔들>에서 이같은 역사적인 배경이나 전후 맥락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 원경으로 처리돼 있다. 왕을 둘러싼 두 자매의 애욕과 배신의 드라마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배경만 왕실이지 사실상 메리와 앤으로 대표되는 여성적 관능의 두 측면을 고찰하는 듯 보인다. 영화 속 헨리 8세는 에릭 바나의 외모적 아우라에 힘입어 사랑 이면에 도사린 여자들의 탐욕에 치를 떠는 가려한 남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실 봉권 권력의 정점에서 입맛대로 여자들을 쥐락펴락했던 헨리 8세야말로, 가장 극악하게 변덕맞은 수컷의 상징이 아니던가. 영국 역사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이 영화를 본 뒤 케이트 블랑쉐가 대영제국의 기틀을 마련한 엘리자베스 1세 여왕으로 분한 <엘리자베스>(1998)와 <골든 에이지>(2007)를 함께 챙겨 본다면, 더욱 흥미로울 것 같다. 말하자면 <천일의 스캔들>은 처녀 여왕 '엘리자베스 1세'의 탄생 비화이자, 권력과 욕정에 사로잡힌 그 부모들의 처연한 발광극인 셈이다.
초상화를 통해 보는 실제 헨리 8세의 생김새는, 내 눈엔 그다지 매력적이진 않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과 금력은 남자의 (세속적인) 매력을 형성하는 가장 강력한 요소인 것일까? 어쨌든 <천일의 스캔들>의 에릭 바나는 명백히 헨리 8세에 대한 외모적 역사 왜곡이 아닐 수 없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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