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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하지만 낯선, 그래서 불편한…'鄭대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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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유명하지만 낯선, 그래서 불편한…'鄭대鄭'

"4년 뒤에도 동작을이 안중에나 있을런지…"

요즘 서울 동작동, 사당동, 상도동, 흑석동 등 국립현충원을 중심으로 퍼져 있는 동작을 선거구 주민들은 '어리둥절' 하다. 정몽준, 정동영 등 '거물급' 정치인들이 서로 "토박이가 되겠다"며 자기들 동네를 누비고 있기 때문이다. 역대 총선에서 이렇게 주목을 받았던 적도 드물다.

"TV에서 많이 보던 양반들이 돌아다니데"

사당동 재래시장에 만난 한 60대 상인은 "이 동네에서 20년을 장사했는데, TV에서 많이 보던 양반들을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몽준 의원에 대해서는 "보던 것처럼 훤칠한게 귀티가 난다"고 말했고, 정동영 전 장관에 대해서는 "역시 말 잘하고 인사 잘하고 전국에서 뛰던 양반이라 그런지 뭔가 달라도 다르더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이렇게 힘 센 양반들이 나와서 다투는데 이제 이 지역도 좀 개발이 될란가"라고 읊조렸다.
▲ 정동영 후보 선거사무소. ⓒ프레시안

동작을은 인물 전쟁이다. 정 전 장관과 정 의원의 공통점을 찾자면 '성이 정(鄭) 씨'라는 썰렁한 농담 말고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모두 대선 주자였다는 점. 정 전 장관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패했지만 지난 대선에서 엄연한 여당 대선후보였다. 정 의원도 2002년 대선에서 출사표를 던졌다가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 후보단일화되고 막판 지지철회 파문을 겪었지만, 엄연한 '대선 주자'였다.

또 한 가지 공통점을 들자면, 토박이 지역구를 던지고 서울에 처음 출마했다는 것. 정 의원은 울산 동구에서만 무소속으로 내리 5선을 했고, 정 전 장관도 15, 16대 전주 지역에서 전국 최다득표를 기록한 재선의원이었다. 모두 동작을에서는 낯선 인물들이다. 솔직히 지금까지는 '대충' 뛰어도 당선은 따 놓은 당상이었다.

따라서 이 거물급 정치인들의 경쟁에서는 '브랜드' 경쟁, 즉 인물값이 총선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아가 이 거물들의 수도권 입성전이 차기 대권 행보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브랜드' 승부는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한 야당 관계자는 "한나라당이 정동영 스토킹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몽준 의원의 배치는 수도권 민주당 남북벨트 대응이라는 측면도 있지만, 대선에서 패배한 정 전 장관에게 치명적인 연타를 날려 재기불능으로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는 얘기다.

반면 여당 관계자는 "정 의원의 재배치는 복잡한 수가 얽혀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정 의원은 필연적으로 한나라당 당권 주자의 한 명인데, 그가 동작을에서 야당 거물급과 정면으로 부딪혀 정치인의 야성을 키우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있지만, "영남에서 밀려났다"는 해석도 존재한다는 것.

결국 두 사람 모두 이번 총선이 정치인생의 중대 전환점이라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 정몽준 후보 선거사무소. ⓒ프레시안

정동영-정몽준의 '브랜드'는?


사실 두 사람 모두 '브랜드'에서 100% 자신 있다고 할 순 없다. 정동영 전 장관은 불과 석달 전 대선에서 패배한 '패배자'의 그림자가 깔려 있다. 정 전 장관은 방송기자 출신으로 정치에 뛰어든 후 대변인과 당 의장 등 '엘리트 정치인' 코스를 밟아왔지만, 2002년 대선경선에서 노무현 후보에게 뒤졌으며, 지난 총선에서 '노인 폄하 발언'으로 총선에 얼굴을 내밀지 못한 적이 있고, 이번 대선에서까지 '최다 득표차 패배'라는 중상을 입었다.

게다가 여당 프리미엄도 기대할 수 없다. 상도시장에서 만난 한 중년 남성은 "대선에서 맞붙었던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에 떡 하니 버티고 있고, 서울시장도 한나라당 사람인데 어디 떡고물이라도 하나 떨어지겠냐"고 부정적으로 말했다.

그렇다고 정몽준 의원에 대한 호감도가 마냥 좋기만 한 것도 아니다. 정 의원은 '국회의원'으로서의 이미지보다는 현대 재벌가 2세로, 대한축구협회 회장으로서의 이미지가 강했다. 2002년 대선에서의 지지철회 파문, 지난 대선 직전 한나라당 입당도 정치인으로서는 그다지 좋은 이미지는 아니다.

한 유권자는 "그 양반이야 울산에서 5선을 했고, 울산이 잘 살게 됐다지만 그게 다 현대중공업, 현대자동차 때문 아니겠느냐"며 "대선 전날 지지를 철회하고, 자기가 만든 당도 책임 못 지고, 대선에서 이명박이 유리하니 한나라당 들어갔고, 울산에서 출마한다고 그러다가 정동영 때문에 느닷없이 동작으로 온 것 아니냐"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는 "현대중공업을 현충원 자리로 옮긴다면 한 번 생각해보겠다"고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 정동영 후보와 부인 민혜경씨가 사당4동 인근 상가를 찾아 시민들과 인사를 하고 있다. ⓒ프레시안

금강산 vs 백두산


'낯선 사람들'인 이들은 불리한 이미지를 지역민 정서 파고들기로 극복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정 전 장관은 연두색 등산자켓 차림으로 하루 종일 지역구를 누비는 강행군을 펼치고 있고, 정 의원도 티셔츠 차림으로 조기축구회 등을 다니며 "내가 동작을에 왔다"를 각인시키고 있다.

특히 이들의 '목욕탕' 민심 잡기는 이미 언론에 주목 받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수행원을 최소화한 채 목욕탕에서 알몸으로 주민들을 만나 등을 밀며 다가가기에 한창이다. 정 전 장관은 새벽 5시 30분에 목욕탕에서 목욕을 한 뒤 수면실에서 사람들 사이에 끼어 칼잠을 자기도 한다. 정 의원도 목욕 후 찜질방에 들러 낯선 사람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건넨다. 정 전 장관이 가는 사우나는 '금강산', 정 의원이 다니는 사우나는 '백두산'이다.

동작을은 서민층과 중산층이 주로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작을의 특성을 소개해달라는 부탁에 한 사당동의 부동산중개소 사장은 "(서초구와) 길 하나 차이로 아파트 값이 배 차이이다", "강남에 출근하지만 강남에 살 형편이 안 되는 사람들이 많다", "강남과 한강을 끼고 있어 지역 격차가 큰 지역이다", "1988년 이후 한 번 빼고 모두 민주당", "인구 15만에 고등학교 2개"라고 요약했다.

동작을에 먼저 깃발을 꽂은 정 전 장관 측은 "재벌이 아닌 내가 바로 서민들을 대변할 수 있는 인물"이라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이에 정 의원은 "정 전 장관이야 말로 방송 기자에 여당 의장까지 한 엘리트"라고 반박하며 "서민 정서는 서민만 대변할 수 있다는 정치적 수사는 이제 통하지 않는다"고 반격하고 있다.

관심은 끌었지만…"진짜 뼈 묻을까?" 반신반의

현재로선 정 의원 측 분위기가 더 좋은 상황이다. 정 전 장관이 민주당 서울 총선 전략의 '남북벨트'의 한 축으로 동작을에 출사표를 던졌을 때는 한나라당 공천자인 이군현 후보를 여론조사에서 앞섰었다. 그러나 화들짝 놀란 한나라당이 황급히 정몽준 의원을 동작을로 재배치하자 지지도는 역전됐다. 지난 대선에서도 동작을에서는 이명박 대통령과 정 전 장관의 지지도 차이가 49.4% 대 26.9%였다. 정 의원의 지난 21일 지역 선거사무소 개소식에는 학계, 연예인, 정치인은 물론 지역 유지급 인사들이 대거 몰려 인기를 실감케 했다.
▲ 정몽준 후보가 흑성동에서 주민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프레시안

특히 뉴타운 개발, 특목고·자사고 유치, 도로확장, 현충원 근린공원화, 주요 도로 확장 등 지역 현안 사업에 관해 여당 프리미엄을 안고 있는 정 의원에 대한 기대감을 무시할 수 없고, 정 의원도 이런 점을 은근히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여론조사 결과가 총선 당일까지 가리라는 보장은 없다. 정 의원이 한나라당 내부 권력 갈등에서 한 발 비켜 있더라도, 총선 분위기가 한나라당에 우호적이지 않은 상태다. 정 의원의 주력 상품인 '견제론'도 무시할 수 없다. 그리고 동작을 지역구가 전통적인 민주당 텃밭이었다는 점도, 무응답 층의 막판 정동영 지지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승부는 그야말로 '투표함 뚜껑을 열어봐야 한다'는 반응이다.

동작을에 낯선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동작을에 뼈를 묻겠다"고 입이 닳도록 말하고 다니고 있다. 다만 상도동의 한 빵집 주인은 이렇게 말했다.

"둘 중에 한 사람은 지면 떠나지 않겠어요? 그리고 남은 사람도 대선이다 뭐다 해서 4년 뒤엔 동작을은 안중에도 없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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