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2일은 유엔이 선포한 '세계 물의 날'이다. 또한 '생명을 위한 물 국제행동 10년, 2005-2015(the International Decade for Action 'Water for Life')'이 시작된 지 3년이 되는 날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직 전 세계 30개국에 걸쳐 약 10억 명이 물 부족에 시달리고 있고, '블루 골드'라며 물을 미친 듯이 뽑아 올리고 잔인하게 요금을 인상하는 물 기업들의 착취행위는 오히려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한국의 물 사유화 추진 현황
재앙을 몰고 온 물 사유화 바람에 덩달아 춤추겠다고 나선 이가 있으니 바로 한국 정부다. 정부는 2001년 수도법 개정을 통해 각 지방자치단체가 상수도 사업을 수자원공사 등에 위탁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2006년에는 산업자원부, 건설교통부, 환경부가 상수도 민영화를 핵심목표로 하는 '물산업 육성방안'을 공동으로 발표했고, 그것의 구체적인 단계를 담은 '물산업 육성방안 5개년 세부추진계획'을 2007년에 제출한 상태다. 5개년 세부추진계획에는 △160여개 지자체로 나뉘어져 있는 상하수도 사업을 30개 이내로 광역화해 공사화하고 △현재 지자체와 수자원공사에 부여되어 있는 수도사업자의 지위를 민간 기업에도 부여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정부는 2008년까지 이와 관련한 법제화를 마치겠단다.
이에 발맞춰 현재까지 수도운영자인 164개 지방자치단체 중 11개가 상수도서비스를 수자원공사로 민간위탁했고, 38개 지자체가 수자원공사와 기본협약을 체결했다. 서울시는 지난 해 8월 서울시상수도사업본부를 2012년까지 지방공사화 한다는 계획을 발표했고 인천시는 프랑스계 물 기업 베올리아와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요금 현실화', 물이 필요한 사람들의 현실은 뒷전
민영화 계획과 더불어 정부는 '상하수도 요금 현실화'라는 아리송한 말로 수도요금인상을 공식화했다. 민간자본이 입맛을 다시면서 상하수도 사업에 뛰어들게끔 양념을 쳐놓는 것이다. 이미 경기도는 상수도 노후관 교체비 지원을 중단한다고 발표해 각 지자체가 수도요금을 올릴 수밖에 없도록 수를 쓴 상태다.
현재 수도요금은 지자체별로 차이가 크다. 근처에 강이 있는 지역은 그것을 정수하여 쓰면 되지만 그렇지 못한 지역은 수자원공사에서 원수 혹은 정수를 사다가 써야 하고, 인구밀도가 낮은 지역은 높은 지역에 비해 훨씬 더 긴 수도관과 더 많은 정수장이 필요하니 수돗물의 생산원가가 다르다. 서울의 수돗물 생산원가가 톤당 529.4원인데 반해 강원도 평창군은 2,729원이다. 그러한 생산원가의 차이가 수도요금으로 나타나, 서울의 수도요금은 514.5원이고 평창군의 수도요금은 1,035원이다. 실제로 주민이 내는 수도요금이 생산원가보다 낮고 지역 간 수도요금의 격차를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었던 것은 지자체들이 얼마간 보조해주었기 때문이다. 물이 생명유지에 필수적인 공공재라는 사회적 합의가 어느 정도 작동한 결과다.
하지만 정부의 계획대로 민영화가 진행되면 이마저도 기대하기 힘들다. 수도요금을 생산원가대로 다 받겠다는 '요금 현실화'가 진행되면 상하수도가 기업들의 밥상에 올라가기도 전에 지역에 따라 2배에서 4배까지 수도요금이 오른다. 그만큼 지역 간 요금격차도 벌어질 것이다. 이어 물 자원이 완전히 기업의 돈벌이 밭으로 전락하는 민영화의 본게임에 들어가면 볼리비아에서 그랬던 것처럼 수도꼭지를 틀어막아야 할지도 모른다.
해외 사례로 보는 민영화의 결과
민영화로 물 값이 치솟은 사례는 해외 곳곳에서 보고되고 있다. '물 사유화 저지·사회공공성 강화 공동행동'은 연구보고서를 내 이를 자세히 소개했다. 초국적 물 기업 벡텔과 40년 장기계약을 한 후 물 값이 100%에서 200%까지 올라 최저임금이 100달러도 되지 않는 많은 가구들이 수도요금을 20달러 이상 지불해야 했던 볼리비아 사례가 대표적이다. 필리핀 마닐라 시는 97년에 10년 동안 요금을 4.96페소로 하기로 하고 물 기업(메이닐라드 워터, 마닐라 워터)과 25년 운영계약을 맺었으나, 1년 후 요금인상을 요구해 15.46페소로 올랐다. 기업들은 2002년에 급기야 27페소로 올려달라고 요구했고 규제위원회에서 이를 허락하지 않자 계약을 파기하고 철수해버렸다.
물 값 올리기는 기본기, 물 기업들은 그밖에도 수질악화, 부패, 노동조건 악화 등 다양한 특기들을 부려왔다. 기업들은 각 국의 수질기준을 낮추기 위해 로비도 한다. 1995년에서 2001년까지 푸에르토리코의 상수도를 운영한 프랑스 기업 비방디의 경우, 감사원 보고에서 시민들의 불만에 대한 무 대응, 물 공급 부족, 과다한 요금 청구 등 3,181 건의 관리, 운영, 유지 부실을 지적받았다. 또한 수많은 환경법 위반 사례로 총 620만 달러의 벌금이 부과되었고, 피부질환, 위장염, 결막염, 근육경련 등의 질환도 보고되었다. 영국에서는 앵글리안워터, 노섬브리안워터 등 기업들이 1989년에서 97년 사이에 수돗물 누수에서부터 폐수 불법방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혐의로 128차례나 기소되었다.
물의 날을 앞두고 바라본 한국의 현실
현재 한국의 상수도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농어촌 지역의 37.7%에 불과한 상수도 보급률, 주무부처(환경부와 건교부)의 무분별한 상수도 시설 중복개발 승인이 낳은 낮은 시설 가동률, 낡은 수도관, 지역 간 요금 격차, 빈곤지역 단수 등이 그것이다. 정부의 행정 실패가 낳은 결과다. 일례로 오산의 경우 2004년에서 2005년 사이에만 29% 재정이 증가했음에도, 4년간 1인당 수도예산이 1년 평균 17% 밖에 늘지 않은 등, 지자체들은 지방상수도 문제 해결에 투자를 외면해왔다. 이제 정부는 행정실패가 부른 문제를 민영화로 덮어버리려고 한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것인지만 궁리하며 덤벼드는 기업이 수익률 낮은 농어촌 지역에 상수도를 공급할 리 만무하고, 요금 못 내는 사람이 물을 쓰게 내버려둘 리 없다.
물은 누구나 쓸 수 있는 인권이어야 한다. 또한 물이 고갈되지 않고 깨끗하게 유지되도록 할 의무를 모두가 짊어지고 있다. 정부의 물 민영화 정책은 물에 대한 권리를 빼앗고, 의무를 버리겠다는 꼴이다. 세계 물의 날을 앞두고, 안전한 물을 쓸 수 없어 고통 받는 사람들과 그 뒤에서 돈을 세는 기업, 그리고 그 기업의 주머니를 채워 줄 꿍꿍이를 벌이고 있는 한국정부의 모습이 엇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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