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이 촛불을 부르고 있다.
고 김선일씨 사망소식이 전해진 첫날인 23일 저녁 광화문 교보문고 앞에는 지난 21일 촛불집회 때의 두배가 넘는 3천5백여 개의 시위 및 추모 촛불이 밝혀졌다. 이날 추모집회는 김선일씨의 죽음을 애도하는 목소리와, 김씨를 구출하지 못한 정부의 무능력함, 부도덕한 침략전쟁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과 이에 동참하려는 한국정부에 대한 성토가 줄을 이었다.
***경찰방해로 시작**
이날 집회 시작 구호는 '폭력경찰 물러가라' 였다. 집회 시작 5분만에 발생한 경찰병력과 추모 참가자들간의 물리적 충돌이 그 원인이었다. 추모행렬을 둘러싸고 있던 경찰 병력 일부가 갑자기 방패를 휘두르며 전진했다.
경찰 관계자는 "우발적이었다"며 사전 지시가 없었음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집회 참가자들의 의견은 전혀 달랐다.
동국대 4학년인 김 모씨는 "경찰이 (집회대오와) 너무 근접해 있어 언제든지 우발적 상황은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파병반대국민행동의 한 관계자는 "집회참가자들의 분노가 극에 달해 있는 상태에서 경찰이 코 앞에 버티고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서로를 자극하기 쉽다"고 말했다.
또 한 집회참가자는 "탄핵무효 촛불집회에는 (촛불을) '보호'까지 하던 경찰이 이번 파병철회 집회에는 강경하게 나오는지 모르겠다"며 "파병철회가 정부 정책에 반하기 때문인가"라고 말했다.
무대 설치를 두고 경찰과의 실강이 끝에 이날 집회는 예정된 시간을 훨씬 넘긴 저녁 7시40분경에 시작했다.
***"386 국회의원, 당신들은 어디에 있는가"**
첫 추모 발언은 정광훈 전국민중연대 상임대표로 시작했다. 정 대표는 "김선일씨의 죽음은 파병정책을 강행한 노무현 대통령과 이라크 학살을 자행한 미국 때문"이라며 김씨의 죽음의 근본 원인을 분명히 했다.
김기식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정부의 파병강행에 아무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386국회의원들을 집중 성토했다.
김 처장은 "노무현 대통령, 열린우리당 등 국민의 의사를 거스르는 모든 세력은 국민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며 "정부는 미국을 선택할 것인가, 국민을 선택할 것인가"라며 단호히 말했다.
또 김 처장은 열린우리당 임종석 의원등을 지목하면서 "386, 전대협 운동을 팔아서 (국회의원) 뺏지를 단 국회의원은 지금 어디에 있느냐"며 "지금 당장 파병철회 대오에 합류하지 않는다면 우리와 함께 어깨 걸었던 동지라 부르지 않겠다"고 말했다. 김 처장은 이어 "그들이 외쳤던 민주와 자주는 어디에 있는가. 당신의 뺏지에는 함께 피와 땀을 흘렸던 민중의 기운이 서려있다"고 덧붙였다.
23일 국회 의안과에 제출된 여야 국회의원 50여명이 서명한 '파병재검토결의안'에는 전대협 출신 국회의원들 대다수가 빠져있다. 열린우리당의 전대협 출신 12명의 의원 중 이인영, 복기왕, 김태년, 정청래만이 서명한 상태. 2, 3기 전대협 의장인 오영식, 임종석 의원은 참여하지 않았다.
전대협 운동을 했다는 김상배씨(35)는 "민족과 자주를 위해 함께 피눈물을 흘리며 싸웠던 전대협 출신 의원들이 이렇게 가슴을 찢어 놓을 줄 몰랐다"며 "동지를 버려야 된다는 사실에 마음이 매우 무겁다"고 말했다. 김씨와 동행한 친구 이상조씨도 "과거 함께 운동했던 전대협 동지들이 국회에 입성할 땐 기존 보수 정치인과는 다른 모습을 기대했는데, 몇 달 만에 보수정치인과 별 다를 바 없는 모습에 비애감을 느낀다"며 망연자실 했다.
***"피랍사실 몰랐다는 것이 말이되나"**
또 정대연 파병반대비상국민행동 기획국장은 "미군과 정부는 김선일씨의 피랍 사실을 정말 몰랐냐"며 "김씨가 피랍된 지 20일이 넘도록 외교부는 도대체 무엇을 했느냐"고 김씨 피랍 사실 은폐의혹을 제기하면서 "국정조사 실시 및 진상을 공개하라"고 주장했다.
회사원인 김성철씨(31)는 "김씨가 피랍된 것이 지난달 30일께라고 하는데, 21일까지 정부가 몰랐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다"며 "정말 몰랐다면 정부의 무능력과 나태함을, 알았다면 파병강행으로 사실 은폐혐의를 벗을 수 없다"면서 정 위원장의 발언에 동조했다.
두 아들을 데리고 온 이명철씨는 "정부는 김선일씨의 부모님을 생각해서라도 진상을 조속히 발표하는 것이 순리"라며 "정부의 (피랍사실을) 몰랐다는 주장을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정부의 공식 발표에 국민들의 불신은 상당한 듯 보였다.
***"팔루자 학살·아부그레이브 수용소 포로학대의 미군은 더 큰 테러리스트"**
김어진 다함께 운영위원은 "이라크 저항세력이 테러리스트라면, 수백여명이 죽은 팔루자 학살, 아부그레이브 수용소의 포로 학대를 한 미군은 도대체 뭐라고 불러야 하냐"며 미국의 국가테러리즘을 강조했다. 또 김 운영위원은 "김선일씨 아버지는 (김씨를) 정부가 죽였다고 말한다"며 "노 대통령은 살인자, 파병동의안을 통과시칸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살인정당이 아닌가"라고 개탄했다.
김 운영위원은 이어 최근 유시민 열린우리당 의원의 '교민이 죽었다고 철군하는 나라가 어디있냐'는 발언에 대해 "유시민 의원은 신문도 보지 않느냐"며 "스페인이 왜 철군했다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고 비판했다.
김 위원의 발언에 '맞아, 맞아'하면서 경청하고 있던 이지영씨(20)는 남자친구가 현재 파병 대기 중인 자이툰 부대 소속 군인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파병 강행론을 주장하는 사람에 대해 "그건 당해보지 않아서 그렇다"며 "김선일씨 사건을 보면서 언제 나의 일이 될지 몰라 하루종일 불안한 마음에 가슴이 두근거렸다"고 말했다.
이날 집회는 시민 자유발언과 함께 노래패 '우리나라', '꽃다지' 등이 참여해 "광야에서“, "함께가자 우리 이 길을", "반격" 등의 노래를 불러 한층 분위기를 북돋았다.
파병반대비상국민행동은 집회 참가자들에게 "김선일씨의 장례식이 있기 전까지 추모기간으로 하자"며 ▲매일 저녁 7시 촛불집회 참여 ▲26일 광화문 범국민 추모대회 참여 ▲김선일씨 추모·파병반대 현수막 걸기 ▲김씨 추모·파병반대 검은 리본 달기 ▲파병철회 청원 서명운동 동참 등 5가지를 제안했다.
이날 집회는 밤 10시30분경 청와대를 향한 함성과 함께 마무리 됐다.
집회를 마치고 돌아가는 김정숙씨(32. 영어강사)는 "정부의 거짓말이 정말 화가 난다"며 "26일 추모대회 때는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 국민의 분노를 똑똑히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선일씨 죽음으로 눈물을 흘렸고, 눈물은 다시 분노로 변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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