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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난임 치료, 인공수정"

하리하라의 '육아 일기' <8>

2006년 6월 25일.

오랜만이네, 별아. 엄마가 너무 오랫동안 소식을 전하지 못했구나. 별이를 잊어서 그런 건 아냐. 그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거든.

1년 전, 자궁난관 조영술 이후에도 별이는 찾아오지 않았지. 엄마와 아빠는 다른 검사를 더 받았고 몇 가지 치료도 받았어. 계속해서 지루한 검사와 치료가 이어졌지만 별이는 아직 엄마를 만나기엔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더구나. 결국 기다리다 지친 엄마는 원래 다니던 병원에서 차트를 복사해서 다른 병원으로 옮겼지.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말이야.

엄마는 별이를 만나기 위해 난임 치료로 유명한 병원 두 군데를 다녔어. 그런데 각 병원마다 장단점이 있더구나. 처음 갔던 병원의 의사는 가능하면 '자연 임신'을 권장하는 사람이었어. 약간 문제가 있더라도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문제점을 해결해서 가능하면 자연적으로 임신이 되도록 기다려보자는 입장이었지. 반면에 두 번째 병원의 의사는 '빠른 임신'을 권유하는 사람이었지. 난임 병원에 다니는 목적은 단 한 가지, 아이를 위해서이니 약간의 무리수를 두더라도 적극적으로 임신을 시도하는 것이 좋겠다는 입장이었어.

임신에 대한 태도가 다르다보니, 각각의 장단점이 있더구나. 첫 번째 의사의 경우, 아기뿐만 아니라 아기를 가지는 엄마도 신경을 쓰기 때문인지, 엄마의 몸에 가해지는 부담이 덜했어. 하지만 '자연스러운 것'은 오랜 시간이 걸려야 하는 경우가 많아서 기다림에 지쳐갔지. 결국 기다림의 지루함을 기다리지 못하고 엄마는 병원을 옮기고 말았단다.

반면에 두 번째 의사의 경우, 성공률을 중시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임신을 위해서라면 모체에 다소 무리가 가더라도 밀어붙이는 성격이었어. 엄마는 결국 두 번째 의사를 만나고 별이를 얻었지만, 그 과정에서 죽을 고비를 넘겼기에 과연 옳은 선택이었는지는 가끔 의심스러워질 때가 있거든.

어쨌든 바뀐 병원의 의사는 차트를 보자마자 체외수정 이야기를 꺼냈어.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체외수정을 해야 한다니 걱정부터 앞서더구나. 여기서 잠깐, 난임 부부를 위한 보조 생식술의 종류에 대해 알아보자. 보조 생식술은 생식세포, 즉 엄마의 난자와 아빠의 정자를 채취 및 조작하는 과정에 속하는 모든 시술을 통칭하는 말로, 크게 인공수정(artificial insemination, AI)과 체외수정(in vitro fertilization-embryo transfer, IVF-ET)으로 나눌 수 있단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이 되는 순간을 묘사한 그림. '인공수정'은 정자를 성관계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여성의 자궁 깊숙이 넣어 수정이 쉽게 일어나도록 하는 방법이다. ⓒnrlc.org

인공수정이란 정자를 성관계가 아닌 다른 방법을 이용해 여성의 자궁 깊숙이 직접 넣어주어 수정이 좀 더 쉽게 일어나도록 유도하는 것이고, 체외수정이란 난자와 정자를 모두 채취하여 체외에서 수정시킨 뒤, 수정이 일어난 수정란이나 배아를 자궁에 이식하는 방법이야. 쉽게 말하자면 난자와 정자가 만나는 곳이 엄마의 몸속이면 인공수정, 몸 밖의 시험관이면 체외수정이라고 생각하면 돼.

인공수정의 경우 정자만 채취하면 되지만, 체외수정은 정자와 난자를 모두 채취해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시술과 비용이 더 많고 복잡하단다. 체외수정은 시험관 속에서 수정이 일어나기 때문에 흔히 '시험관 아기(test tube baby)'로 불리곤 하지. 그래, 별이는 바로 시험관 아기로 태어났어.

보조 생식술의 도움을 받아 별이를 만나기로 마음먹고 병원에 갔었지만, 그 때까지만 해도 체외수정을 하게 될 지는 생각조차 못 했단다. 처음에는 인공수정부터 시작할 줄 알았거든. 그래서 인공수정에 대해 자료를 찾아보았지.

사람들이 인공수정을 하기 시작한 것은 놀랍게도 2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단다. 또한 동물을 대상으로 하는 초보적인 형태의 인공수정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지. 예전 사람들은 유전의 원리를 알지 못했지만, 좋은 형질을 가진 동물들을 교배시키면 역시 좋은 형질을 가진 새끼가 태어난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기에 오래전부터 이를 이용하여 품종 개량을 해 왔지.

여기서 사람들이 주목한 것은 수컷의 정액이었어. 수컷의 정액을 암컷의 몸속에 넣어주기만 하면, 굳이 교미하지 않아도 새끼가 태어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거지. 그래서 14세기 아라비아에서는 암말의 질 속에 솜을 넣어두고 수말과 교미를 시켰다가, 이 솜을 꺼내 다른 암말의 질 속에 넣어 수정을 유도하는 초보적인 형태의 인공수정 방법이 도입되기도 했대.

그러나 정확한 기록으로 확인된 동물의 인공수정은 1780년 스팔란차니(Spallanzani)가 개의 정액을 이용해 강아지를 탄생시킨 것이 처음이야. 이후 동물의 인공수정은 경제적이고 간편하게 좋은 품종의 가축을 육종하는 방식으로 받아들여 널리 쓰이게 되었고, 개뿐만 아니라 소·말·돼지·양 등 다른 가축에게도 널리 사용되게 되었지. 이때까지만 해도 신선한 상태의 정액을 이용한 인공수정만이 가능했지만, 1952년 폴지(Polge)와 로손(Rowson)은 부동액을 이용해 정액을 냉동보존하면, 이를 해동하여도 인공수정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아내어 새로운 인공수정 시대를 열게 되었어.

동결 정액의 활용은 수컷을 이동시킬 필요가 없고, 암컷의 발정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적은 수의 수컷을 이용해 더 많은 암컷을 수태시킬 수 있어. 실제로 소의 경우, 종우 한 마리가 자연교미로 수태시킬 수 있는 암컷은 1년에 50여 마리에 불과하지만, 동결 정액을 이용한 인공수정의 경우 수만 마리까지도 가능하거든. 이처럼 동결 정액을 이용한 인공수정 방법은 저비용으로 고효율을 보장하기 때문에, 현재 많은 나라에서는 세심하게 선별되고 특수하게 관리된 종우·종마·종돈 등을 이용해 가축을 번식시키는 방법을 자연교미법보다 더 널리 사용하고 있어.

우리나라에서는 1954년 처음 이용빈에 의해 인공수정 기술이 도입된 이후, 1955년 중앙축산기술원에서 돼지의 인공수정이 실시되었지. 이후 국가적인 차원에서 가축의 개량을 목적으로 인공수정은 널리 보급되고 장려되었는데, 현재는 농업중앙회에 젖소개량부와 한우계량부가 있어서 우수한 종우(種牛)들의 동결 정액을 전국적으로 보급하고 있지. 특히나 소의 경우, 현재 자연적인 교미로 인한 번식은 거의 사라진 상태로, 인공수정으로 인한 번식이 100%에 달할 정도로 널리 보급되었어. 소를 키우는 목축업자에게 인공수정은 아주 일상적인 일이 된 거지.

인공수정이 동물에게서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를 하니, 인간의 아기를 가지는데 인공수정 방법을 이용한다는 것이 좀 꺼림칙하게 느껴질 수도 있어. 하지만 인간 역시 포유류에 속하기 때문에 동물에게서 이용된 방법이 사람에게 이용되지 말라는 법은 없지. 그리고 1677년 네덜란드의 레벤후크가 자신이 만든 현미경을 통해 처음 정액 속에 든 정자의 존재를 관찰한 뒤, 올챙이처럼 생긴 정자 속에 아주 작은 인간이 들어 있을 것이고, 이 '정자 인간'이 여성의 자궁 속으로 들어가 아이로 자라난다고 믿음은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었거든.

정자 속에 인간의 씨앗이 들어있다면, 이는 성관계를 하지 않더라도 정자를 자궁 속으로 넣어주기만 하면 임신이 가능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게 만들었지. 실제로 이에 착안하여 1790년대 영국의 존 헌터는 질의 이상으로 인해 정상적인 성교가 불가능한 부인에게 남편의 정자를 인위적으로 주입하는 초보적인 인공수정을 실시했지. 그러니 인공수정의 역사는 매우 오래된 편이야.

이처럼 인공수정은 배란기에 맞추어 정자를 가는 관을 이용해 자궁 속 깊숙이 넣어주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비교적 간단하고 그에 비하면 효과도 좋은 편이란다. 자연적인 성관계를 하게 되면 정자는 여성의 질을 거슬러 올라가 자궁을 지나 난관까지 가는 오랜 여행을 해야 하는데, 이때 산성(酸性)을 띠는 질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정자들이 죽기 때문에 질을 지나 자궁 속으로 직접 넣어주는 것은 임신을 위한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어.

더군다나 1953년 셔먼(Shemen)이 인간의 정자 역시 동물의 것과 마찬가지로 동결 후에도 생식력이 보존되는 것을 밝혀낸 이후 인공수정은 급속도로 퍼지기 시작했어. 1963년 국제유전학자회의는 냉동 정자를 통해 정상아의 출산이 가능함을 공표했고, 이때부터 정액을 냉동하여 보관하는 정자은행이 설립되었고 이를 이용해 출생하는 아이는 점점 늘어나게 되었단다.

그러나 정자은행을 이용한 출산은 남편이 미리 보관해둔 정자를 이용하기보다는 대개 남편 쪽에 문제가 있어서 아이를 낳지 못하는 경우에 대안으로 이용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남편과 비슷한 특성의 유전자를 지닌 정액을 '선택'할 수 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어. 정자를 고를 수 있는 정자은행의 특성은 남편과 닮은 아이를 출산하고자 하는 욕망을 넘어 '더 나은 아이'를 가지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면서, 문제를 발생시키기도 했단다.
한 백만장자의 허무한 프로젝트 : 천재 공장

1980년 2월 29일, 로버트 K. 그레이엄은 정자은행을 설립하여 남편의 정자에 문제가 있어 아이를 낳지 못하는 불임부부들에게 정자를 제공하는 사업을 시작하였다. 자수성가한 백만장자였던 그레이엄은 세상이 잘못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세상에는 기초 상식 수준의 사고조차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바보'들이 너무도 많다고 여겨졌다. 이대로 가다가는 인류가 스스로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자멸할지도 모른다는 '범인류적인 걱정'에 불안해진 그레이엄은 엉뚱하게도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이 세상이 '열등한 것'들에 대해 너무 관대하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가 생각하기에 복지정책의 발달이나 식량생산의 증대는 자연상태라면 도태되는 것이 당연한 '열등한 유전자'를 존속시켰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고귀한 인간 정신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일수록 오히려 짐승처럼 번식력 하나만은 탁월해 세상을 온통 바보들로 들끓게 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여겨졌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좀더 지성적이고 현명한 인간들이 세상에 많이 퍼져야 인류의 미래가 밝을텐데 오히려 엘리트들의 출산율은 떨어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히틀러처럼 인종 청소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레이엄의 걱정은 깊어만 갔다.

결국 그레이엄의 생각이 귀결된 것이 바로 '노벨상 정자은행'이었다. 열등한 종족을 없앨 수 없다면, 좀더 우수한 형질의 유전자를 널리 퍼뜨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레이엄은 천재의 아이들은 천재가 될 것으로 굳게 믿었고, 이들의 유전자가 널리 퍼지면 인류의 미래도 안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그레이엄은 이런 위험한 생각을 현실로 옮길 돈과 의지가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는 결국 노벨상 수상자 세 사람의 정자를 얻어 '우편배달 주문 아기'를 생산하는 업무를 시작했다. 이 정자은행은 1999년까지 약 20년 동안 216명의 아기들의 탄생을 도운 초라한 성적을 낸 뒤 문을 닫았다. 이 숫자는 현재 가장 유명한 정자은행인 캘리포니아 정자은행이 한 달에 태어나게 하는 아이의 숫자보다 적은 수이다. 이는 그레이엄이 그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을 정자제공자로 고집했기 때문이다. 이들 대부분은 이미 노년기에 접어든 사람들이어서 그들의 정자는 질이 떨어졌고, 이에 따라 수정 능력도 현저히 저하되어 있어 세상을 정화시킬 만큼 유전자를 퍼뜨리기에는 무리였던 것이다.

어쨌든 그레이엄의 '천재공장' 프로젝트는 실패로 돌아갔다. 태어난 아이들의 대부분은 천재라기보다는 평균 성적을 조금 웃도는 정도였는데, 이는 오랫동안 불임으로 아이를 간절히 원했고, 천재들의 정자를 기꺼이 자신의 자궁에 심기를 희망했던 엄마들의 열성적인 교육열과 자식사랑을 생각한다면 당연한 결과였다. 그레이엄의 발상은 유전자 결정론과 우생학이 충분한 자본과 내 아이만큼은 일류로 키우고 싶다는 부모(특히 엄마)의 이기심이 결합되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시나리오였다.

우리나라에서는 1960년대부터 인공수정 기술이 도입되었고, 1985년 이후부터는 냉동 정자를 이용한 인공수정도 널리 실시되고 있어. 인공수정은 방법이 간단하여 산부인과 시설을 갖춘 병원이라면 어디서든 실시할 수 있기 때문에 개인 산부인과에서도 충분히 시술이 가능해.

보통 인공수정은 여성의 자연 배란 주기에 맞춰 실시하곤 했지만, 요즘에는 임신 확률을 높이기 위해 클로미펜 등의 먹는 배란 유도제나 자궁내막의 증식과 임신을 유지시키는 프로게스테론을 이용해 인위적으로 과배란과 자궁내막 증식을 유도한 뒤 실시하여 성공률을 높이려고 시도하고 있어. 인공수정은 정자의 수나 활동성이 부족하거나 여성의 점액질이 정자의 생존에 불리한 경우 등의 가벼운 이상으로 인해 임신이 성립되지 않은 경우에 효과가 있으며 성공률은 약 25~30% 정도로 알려져 있어. 생각보다 높지 않은 확률이지만, 자연 임신의 성공률이 15%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에 비하면 높은 편이지. 실제로 임신은 생각만큼 쉽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어서 많은 수의 수정란이 아직 임신임을 자각하기에는 이른 시기에 자궁벽에서 떨어지거나 아예 자궁벽에 착상조차 못하고 도태되는 경우가 많다고 해. 이처럼 수정은 일어났는데 임신은 되지 않는 것을 '화학적 임신'이라고 하는데, 이는 임신의 횟수로 계산하지 않는단다.

어쨌든 인공수정은 체외수정에 비해 시술 과정이 짧고 수월하며, 비용도 덜 들기 때문에 보조생식술을 시도하는 경우 먼저 실시되곤 해. 하지만 의사는 엄마에게 체외수정을 권유하더구나. 엄마와 아빠의 경우 인공수정은 성공확률이 떨어진대. 어차피 아이를 원한다면 과정이 조금 힘들더라도 더 성공률이 높은 방법을 택하는 게 좋다더구나. 엄마는 망설였지만, 결국에는 의사의 제안대로 시작하기로 했어. 지금까지 3년을 기다렸으니, 이제 더 이상 기다릴 자신이 없었어. 결국 엄마는 체외 수정을 시작하기로 하고, 이제부터 맞아야 할 주사약인 슈퍼팍트가 든 병과 주사기를 가득 안고 집으로 돌아왔단다. 드디어 별이를 만나기 위한 본격적인 시작인 거야.

참고 문헌

박숙자 외, <가족과 성의 사회학>, 나남출판, 1995.

임경순 외, <포유동물 생식세포학>, 서울대학교출판부, 2001.

데이비드 플로츠, <천재공장>, 이경식 옮김, 북@북스, 2005.

구병삼, '인공수정과 체외수정', <과학동아>, 1993년 3월호.

김석현, '보조생식술의 현재와 미래', <대한산부인과학회연수강좌>,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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