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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아름다운 건물을 보세요"

[덴마크에서 살아보니ㆍ<18>] 뉘보더

내가 덴마크에 도착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았을 때다. 코펜하겐 시내 한복판을 지나던 차 속에서 덴마크 인이 손짓을 했다.

"저 아름다운 건물을 보세요."
"네?"

나는 가리키는 곳을 봤으나 거기에는 아름답기 커녕 납작하고 초라한 건물들이 오종종하게 서 있었다. 게다가 그 촌스러운 색깔이라니.

'참 이상하다. 이 사람들은 이런 것을 아름다운 건물이라고 부르는구나.'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맘에 들지 않아 하면서도 서울의 높이 솟은 고층 시멘트 건물에 익숙해진 눈에 그 납작한 건물들이 우스꽝스럽게 보인 것이다.

그 후 2년이 흐른 어느 날, 나는 똑같은 곳을 지나가면서 무의식중에 중얼거렸다. '어머나 저 아름다운 건물들'.

그러고는 혼자 실소를 하고 말았다. 2년 사이에 건물이 달라질 리는 없고 내 눈이 달라진 것이었다.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 시내의 한 복판에는 300년이 넘은 해군 병영이 서있다. 서 있을 뿐 아니라 지금도 해군 관계자들을 위한 숙소와 주택으로 쓰이고 있다.
▲ 뉘보더. 작고 초라하지만 옛스러움을 간직하고 있는 이 건물을 덴마크 인들은 자랑스러워 한다. ⓒ프레시안

1631년부터 짓기 시작한 그 해군 병영은 모두 600가구를 수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인데 원래는 1층 건물만 짓다가 1758년에는 2층짜리로 건축했다. 1층짜리의 옛 건물도 지금까지 남아있다. 건물 사이에는 작은 텃밭을 두어 채소를 공급하도록 했는데 지금은 정원이 되어있다.

건물의 통풍, 환기, 채광, 교통의 편리함이 뛰어나서 그 후 건축의 모델이 되었고 지금도 코펜하겐 시내에서 인기 있는 주거공간으로 꼽히는 곳이라고 한다. 현재 이 병영에서 살고 있는 사람은 4000명으로 모두 해군 관계자들이다.

코펜하겐의 대표적인 건축물을 소개하는 안내서에는 이 건물들이 "군인 병사 식으로 좁고 긴 모양인데 단순하고 기능적이다. 그러면서도 건물의 비례나 색감이 아름답다"라고 쓰여 있다.

단순하면서도 기능적인 덴마크 특유의 디자인은 그 때부터 싹이 튼 모양이다.

또 처음에는 이상하게 보였던 그 건물의 색깔이 나중에 알고 보니 그곳의 천연재료에서 나온 색이고 북구의 차가운 기후와 대비되는 따뜻한 색감을 품고 있어서 아닌 게 아니라 나중에는 참으로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그곳은 제일 오래된 동의 집 두 채를 터서 박물관으로 개방하여 옛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박물관이라고 해봤자 우리 시골 초가집의 방 두간 정도 될까. 원래의 건물이 워낙 작고 좁으니 두 집을 텄다 해도 그렇다.

덴마크 사람들도 예전에는 우리 시골집 못지않게 낮고 좁은 집에서 산 것을 알 수 있다. 뉘보더 기념회에서 운영을 하는데 이 박물관을 열기 위해서 개보수한 비용 30억 정도를 덴마크의 가장 큰 기업인 에이피 뮐러 그룹의 펀드에서 지원하였다고 한다.

내가 그곳 박물관을 보러 갔을 때에도 곳곳에서 수리가 한창이었다. 이처럼 오래된 건물은 유지하는 비용이 새 건물 짓는 비용보다 더 많이 든다고 한다.

그런데도 옛 건물의 외관과 골격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내부는 시대에 맞도록 깔끔하게 보수하여 300년이 넘도록 계속 사용하는 그곳 사람들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물관 위치를 물어보던 중 때마침 한 집에서 나오는 그곳의 주민을 만났다. 반바지 차림에 배낭을 메고 있어서 혹시 학생인가 했더니 해군이라고 했다.

다음 주에 그린랜드로 넉 달 동안 간다는데 그곳 석유시굴 팀에 식량 등을 지원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옛날 집에 사는 것이 불편하지 않은가 물어보자 어떤 부분은 머리를 숙여서 지나다녀야 하지만 매우 만족한다고, '이런 집에 사는 것은 특권이나 다름없다'고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 뉘보더. 지금은 새 건물을 짓는 비용보다 유지하는 비용이 더 크다. 하지만 덴마크 사람들은 수백 년 전에 지어진 이 건물을 조심스럽게 보수해가면서 사용하고 있다. ⓒ김영희

1900년 경 이 지구의 건물들을 모두 허물고 새 주택을 짓는다는 계획이 있었으나 다행히 경제 사정상 무산되었다고 한다.

사실 이 거칠고 보잘 것 없는 군인병영 건물이 오늘날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위에서 말한 기능적인 면도 있지만 무엇보다 세월의 더께가 만들어주는 아름다움이 가장 크다.

차가 다니지 못하게 되어있는 그곳에 서있자 시내 한복판인데도 마치 옛날 고즈녁한 어떤 동네 가운데 서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역사를 쉽사리 믿지 못하는 버릇이 있다. 우리처럼 곧잘 옛 것을 쓸어버리고 모든 것이 새로 올라가는 곳에서는 도무지 실감이 안 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뉘보더 같은 오래된 집들 앞에서는 도리 없이 시간의 두께가 만져지고 눈에 보인다. 그리고 삶이란 이렇게 계속 되는구나 하는 실감이 뭉클하게 와 닿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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