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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역습축구' 킬러 정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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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역습축구' 킬러 정대세

파워ㆍ투치 넘치는 '신세대' 골잡이…한때 日감독이 외면

17일 중국 충칭에서 열린 2008 동아시아 축구 선수권대회에서 북한은 일본과 1-1의 무승부를 기록했다. 일본이 경기 후반 동점골을 넣어 어렵게 무승부를 기록했지만 사실상 북한의 '역습축구'에 진 경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8강 신화 이래 북한 축구의 키워드는 빠른 주력을 바탕으로 하는'역습축구'였다. 하지만 80년대 이후 북한의 '역습축구'는 표류해 왔다.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핵심적 요인은 '킬러의 부재'와 국제대회 경험부족이었다. 이날 경기에서 북한의 이 같은 문제점을 동시에 풀어 줄 해결사 정대세가 등장했다.

정대세는 전반 6분 일본 수비수 3명을 무력화시키며 통렬한 선제골을 뽑아냈다. 이 순간 한때 그를 외면했던 오카다 감독 뿐 아니라 일본 선수들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강한 체력과 투지로 볼 처리가 어려운 순간에도 슛을 터뜨릴 줄 아는 정대세를 잘 알던 가와사키 FC의 팀 동료이자 일본 대표팀 수비수 나카자와는 경기 전 "파워대결로는 정대세를 이길 수 없다. 두뇌 플레이로 그를 저지하겠다"고 했지만 이에 실패했기 때문. 경기장 분위기도 일본에게 더욱 적대적으로 변했다. 경기가 펼쳐진 충칭은 '대학살'로 반일 감정이 강한 곳. 더욱이 최근 '만두파동' 때문에 충칭의 팬들은 경기시작 전 일본의 국가(기미가요)가 흘러 나올 때 야유를 퍼붓기도 했다.
▲ 17일 오후 중국 충칭 올림픽 스포츠센터에서 진행된 2008 동아시아축구대회 일본과의 경기에서 선취골을 터뜨린 북한 '역습축구'의 킬러 정대세(左).ⓒ뉴시스

재일동포 3세인 정대세는 일본 조선대 시절 현 일본 축구 대표팀 감독인 오카다가 지휘봉을 잡고 있던 요코하마의 연습훈련에 두 번이나 참가했지만 그의 부름을 끝내 받지 못해 2006년 가와사키 FC에 입단했다. 그는 J 리그에 입문한 뒤 팀 동료인 나카자와의 '왕(王)'자가 새겨있는 듯한 탄력있는 복근을 보고 어금니를 깨물었다. "프로는 뭔가 달라야 한다. 그 핵심은 체력이다"는 깨달음이었다. 일본 전에서 골을 넣은 뒤 터져 나온 탄력넘치는 '덤블링 세리머니'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힘이 넘친다. 역습 시에 보여지는 정확한 위치선정과 빠른 돌파도 뛰어나지만 수세 시에는 웨인 루니(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연상시킬 정도로 적극적인 수비가담을 펼친다.

20일 한국은 정대세가 버티고 있는 북한과 격돌한다. 다음 달 펼쳐지는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예선전의 리허설 성격을 띠고 있는 이 경기에서 한국은 정대세 봉쇄에 역점을 쏟을 전망이다. 허정무 대표팀 감독이 "볼을 찰 줄 아는 선수"로 칭찬한 정대세의 기세를 꺾어야 북한의 돌풍을 잠재울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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