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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사람은 모든 걸 더 가지려고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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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사람은 모든 걸 더 가지려고만 해"

[손문상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ㆍ<5>] 칠레로 가는 길

끝없이 펼쳐진 평야와 팜파스 지대의 지루한 경치에 길들여진 아르헨티나인들이 휴양지로 자주 찾는다는 산 까를로스 데 바릴로체(San Carlos de Bariloche)는 호수지대라는 명성에 걸맞게 맑은 물과 좋은 공기를 자랑한다.
▲ 아침 일찍 떠나는 여행자에겐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지만, 볼 때마다 다른 느낌을 자아낸다. 아르헨티나 - 칠레를 잇는 호수길로 향하는 출발지였던 바릴로체 터미널의 해돋이. ⓒ손문상

물론 스키장이나 트래킹 코스, 혹은 유람선 따위의 관광 상품들이 눈길을 끌고, 펑크록 페스티벌이나, 땅고 공연을 알리는 포스터가 군데군데 붙어 있긴 하지만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딱 한가지였다. 체가 지나간 흔적을 따라가는 것.
▲ 나우엘 우아삐 호수를 건너기 위해 도착한 이 곳 선착장에서 에르네스또는 작은 바지선에 포데로사와 몸을 실었다. 앞으로 육로와 호수 길을 여러번 반복해야 하는 지루한 여행이 이어지지만, 마음만큼은 지루하지 않았을 것이다. 푸에르또 빠뉴엘로(Pto. Panuelo) 선착장. ⓒ손문상

칠레, 젊은 에르테스또의 첫 외국 여행지

바릴로체에서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현재까지 발견한 에르네스또의 흔적, 그리고 그가 지난 길들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여러 우여곡절도 있고, 그야말로 서바이벌 수준의 스페인어와, 무모한 만용으로 이 곳까지 온 것이다.

슬슬 아르헨티나라는 나라의 문화에 익숙해지려 하고 있지만 우리는 '칠레'라는 완전히 새로운 세계에 발을 디뎌야 한다. 젊은 에르네스또 체 게바라 역시 첫 외국 방문이었고, 우리 역시 칠레는 처음이었다.
▲ 세 번째 호숫길의 출발지가 될 뻬우야(Peulla)는 칠레령이다. 발음부터 다르다., 아르헨티나식으로는 '뻬우쟈'가 되어야 하지만 이곳은 칠레고, 따라서 선착장의 이름은 '뻬우야'다. 프리아스 호수를 지나 입국 수속을 마치고 뻬우야로 향하는 관광객들. ⓒ손문상

영화에도 나온 바 있는 '프리아스 호수'를 비롯해 우리는 세 개의 호수를 배로, 네 개의 육로를 버스로 지나야 했다. 여정은 13시간.

에르네스또는 초라한 바지선에 오토바이를 싣고, 바닥에서 끊임없이 솟아나오는 물을 퍼내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지만, 이제 이 호수지대는 오직 관광용 여객선만 출항할 뿐이다. 55년이라는 시간의 간격은 상당히 큰 것이다.
▲ 강렬한 햇볕만큼이나 이들의 표정은 기대로 가득 차 있다. 칠레 국경을 넘고자 하는 수많은 관광객들. ⓒ손문상

막걸리 빛 호수를 지나서

숨을 한번 깊게 들이마시자. 먼저 우리가 답사할 여정에 대한 간략한 브리핑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준비 되었나?

자, 우리는 먼저 바릴로체 버스 터미널에서 출발한다. 버스를 타고 나우엘 우아삐(Nahuel Huapi) 호수의 서쪽에 자리잡은 뿌에르또 빠뉴엘로(Pto. Panuelo)라는 작은 선착장에 도착, 배를 타고 나우엘 우아삐 호수를 건넌다.

그리고 다시 뿌에르또 블레스뜨(Pto. Blest)에 정박, 버스를 타고 뿌에르또 알레그로(Pto. Alegre)까지 약 3 킬로미터의 거리를 지난다. 뿌에르또 알레그로에서 배로 갈아탄 후, 영화, 모터싸이클 다이어리에 나오는 장면이 담긴 프리아스 호수(Lago Frias)를 지나 뿌에르또 프리아스(Pto. Frias)에 정박한다.
▲ 영화 '모터싸이클 다이어리'의 배경이 되기도 했던 프리아스 호수(Lago Frias). 프리아스 호수의 선착장. ⓒ손문상

▲ 이미 낡아 없어진 이선착장에서 에르네스또와 포데로사를 싣고 바지선은 출발했을 것이다. 프리아스 호수에 있는 옛 선착장의 흔적. ⓒ손문상

▲ 언젠가 물살을 갈랐을 색 바랜 보트가 쓸쓸하게 생을 마감하고 있는 중이다. 프리아스 호수 선착장 중하나인 뿌에르또 프리아스(Pto. Frias) 주변에 있던 낡은 배. ⓒ손문상

청명한 빛깔을 자랑하는 나우엘우아삐와 달리 이 호수의 물 색깔은 '막걸리 빛'을 띤다. '칠레구나'하는 생각이 번쩍 들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르헨티나인 가이드는 제 일을 마치고 칠레인 가이드와 교대한다. 아르헨티나와 칠레 국경지대에 들어선 것이다.

버스로 다시 한 시간여를 달리면 작고 아담한 칠레 출입국 사무소에 도착한다. 수속을 마친 후 다시 뻬우야(Peulla, 아르헨티나 발음으로는 '뻬우쟈'여야 하지만 칠레식 발음으로는 스페인식과 마찬가지로 '뻬우야'가 된다.)라는 작은 선착장에서 배를 탄다.
▲ 뻬우야의 선착장에서. ⓒ손문상

▲ 이들에게 해수욕장은 따로 없다. 그냥 즐기는 거다. 뻬우야의 선착장이 있는 또도스 로스 산또스 호수(Lago Todos Los Santos) ⓒ손문상

▲ 뜨거운 태양도 어린 노동자들을 방해하지 못한다. 뻬우야의 선착장에서 하역하는 소년 노동자들. ⓒ손문상

칠레, 술과 담배에 엄격한 나라

그리고 또 다시 호수 여행. 이쯤 되면 천국의 풍경이라도 질려버릴 지경이다. 뿐띠아구도 산의 억센 기세와 그 위에 모자 씌우듯 얹어진 만년설도 지겨운 표정으로 쳐다볼 것이다.

물 색깔은 '여긴 칠레야' 하는 식으로 바릴로체와 거리를 둔다. 무수한 침엽수로 가득 찬 바릴로체와 달리 칠레쪽 안데스는 활엽수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깐깐한 자존심마저 느껴질 정도로 안데스 동쪽과 서쪽은 그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마지막 정박지는 살또스 델 뻬뜨로우에(Saltos del Petrohue). 드디어 칠레다. 사람들의 생김새도 다르다. 이 곳에서 버스를 타고 뿌에르또 몬뜨(Pto. Montt)까지 가면 여정은 끝이 난다.

숨을 다시 한번 쉬어보자. 호수로 이어진 국경을 넘어 본 기분이 어떠한가? 숨이 찰 정도지만, 눈은 배가 부르다. 기분도 다르다. 칠레 땅을 밟은 것이다. 칠레에서 우리가 느낀 첫 감정은, 당혹감이었다.

어디를 가나, 담배와 술을 진열해 놓는 아르헨티나의 키오스꼬(Kiosco)와 달리 칠레는 향정신성 기호식품에 관대하지 않은 듯 했다. 우리는 "칠레인은 친절하다"라는 가정을 수정해야 할지 잠시 고민해야 했다. 칠레에 관한 이야기는 앞으로 이어질 우리의 여정이 말해줄 것이다.
▲ 갈매기가 길라잡인가? 우리가 길라잡이인가? 다음 목적지인 뿌에르또 블레스트(Pto. Blest)로 가는 길목에 갈매기. ⓒ손문상

▲ 크래커를 좇는 나우엘 우아삐의 갈매기. ⓒ손문상





▲ 이미 크래커에 길들여진 갈매기는 간식을 위해서 멋진 비행을 공연했다. 나우엘 우아삐의 갈매기. ⓒ프레시안

"미국과 FTA를 체결한다고요?"
▲ 남편은 목수고, 부인은 이탈리아 국내에서 여행 가이드로 일한다. 한 달여 간의 휴가 일정으로 칠레 남쪽, 빠따고니아 지역을 여행할 계획이라던 이탈리아인 부부. 칠레 국경을 넘는 내내 우리의 말동무가 되어 주었다. ⓒ손문상

13시간 동안, 세 번의 배와 네 번의 버스를 타는 동안 우린 나이 지긋한 아르헨티나 관광객과 통역을 담당해주던 원주민 계통의 한 아주머니, 그리고 한 이탈리아인 부부를 사귀었다.

아르헨티나 관광객은 우리에게 한국의 정치 경제 상황에 관한 뭔가를 자꾸 물었는데, 옆에 있던 아주머니가 영어로 통역을 해 주었다. 우리는 미국과 FTA를 체결한 몇 안되는 나라이며, 그 때문에 양극화가 심해질 것을 우려한다고 했다.

통역을 하던 아주머니는 그 이야기에 흥미를 느꼈는지, 우리에게 다른 것들을 더 물어보았다. 우리는 신자유주의와 미국의 대외정책이 세상에 얼마나 위협이 되는 지에 관해 이야기했고, 아주머니 역시 같은 문제를 아르헨티나도 안고 있다고 말했다.

"지구 반대 편에서도 우리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구나"

짧은 대화였지만 우리는 아르헨티나를 넘어오면서 여러 생각들을 했다. 미국의 대외정책에 많은 불만을 가졌던 부에노스 아이레스, 메모리아 공원의 자원봉사 학생들의 미국에 관한 비판들.

바릴로체에서 선술집에서 만났던 장년의 아저씨들과 나눈 대화 중에 나온 미국을 비하하는 농담들, "미국사람들은 모든 걸 더 가지려고만 해."

그리고 지금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원주민 혈통의 아주머니가 가진 아르헨티나 사회 양극화에 대한 우려들은 모두 다른 이야기가 아니다. 그리고 우리와 다른 고민들도 아니다.

모두가 알고 있고, 누구나 우려하는 것들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세상은 얼마나 비합리적인가? 숫자로 표현되는 모든 비정한 '현실'들 앞에서 우리는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음에도 싸움을 강요받아야 하는 것일 수도 있다.
▲ '젊은이여 일어나라'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대통령 궁 앞 광장에서 체 게바라의 사진을 들고 시위하는 사람들. ⓒ박세열

"왜 불평만 가르치는가"

그 모든 것을 바꿀 수 없다는 절망은 다른 곳을 향한 분노를 낳기도 한다. 내가 고민하고 있는 88만원 세대의 많은 문제점들은 다만 또 다른 분노를 낳기 위한 허울 좋은 경계선뿐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분명히 존재하고 전선은 필요하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소위 '젊은 것들'의 사고방식에 불만을 품고 있는 '덜 젊은 분들'은 '젊은 것들'에게 왜 자신이 믿고 있었던 가치를 가르쳐 주지 않았던가? 사실 우리가 전수받은 것이라고는 '불평'들이다.

그러므로 기성세대여, 당신들의 고민이 젊은 것들과 같다면 부디 불평을 멈추고 가르쳐 주길 바란다. 예컨대 당신의 자식들에게 사교육을 거부하도록 하고, 대학 교육의 불합리성과 낭만적 가치를 앗아가는 못된 것들이 무엇인지 알려 주길 바란다.

우리는 이제 칠레로 넘어간다. 최고의 사회주의 시스템과 최악의 자본주의 가치가 나란히 공존하는 이상한 나라 여행기의 version2다.
▲ 드디어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건너왔다. 13시간의 여정을 끝으로 도착한 칠레의 항구도시 뿌에르또 몬뜨(Pto. Montt) ⓒ손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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