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광주시 초월읍 무갑리에는 기차가 없다.
지하철 2호선 강변역이나 잠실역, 5호선 천호역, 강동역, 분당선 모란역, 중앙선 덕소역이나 양평역, 경부선 수원역에 내려서 여러 번 버스를 갈아타야 무갑리에 갈 수 있다. 광주 시내에서도 한 시간에 한 번꼴로 무갑리행 버스가 다닌다.
철도노동자인 내가 기차역에서 먼 무갑리까지 이사를 간 까닭은 크게 두 가지다. 나는 노동조합에서 선전홍보 일을 꽤 오랫동안 해 왔는데, 어느 날 갑자기 눈이 보이지 않았다. 돋보기를 끼고도 인쇄활자나 모니터 화면을 10분 이상 볼 수 없었다. 내 몸이 시키는 일이니 쉬어야 했다.
활자와 화면이 보이지 않으니 가족이 눈에 보였다. 아이들은 하루하루를 고통스럽게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나는 아이들을 학교로부터 탈출시킬 생각을 했고 아이들은 동의했다.
지금은 경기도 하남시에 있지만, 곧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원당리로 옮길 대안학교 '푸른숲학교'에 아이들은 편입했다. 원당리와 무갑리는 바로 옆 동네이다.
아이들은 쉽게 학교를 옮겼지만, 내가 직장을 옮기는 것은 쉽지 않았다. 십 년 가까이 친형제처럼 지내던 동료들과 헤어지는 게 너무 힘들었다. 슬프고 괴로웠던 일들만 자꾸 생각이 났다.
"나도 좀 쉬어야지…."
말리는 동료들에게 이 말을 하면 더 이상 말이 없었다.
아이들은 학교를 옮기는 데 성공했다. 무엇보다 말 수가 늘었고 얼굴이 활짝 피었다. 학교가 고통을 주기도 하고 행복을 주기도 한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하면서 끔찍했다.
나는 직장을 옮기는 데 실패했다. 노동조합 선전홍보 일을 또다시 하게 됐다. 시력이 회복돼서가 아니라, 눈이 좋은 후배들의 눈을 망가뜨리려는 나쁜 일을 잠시 맡게 됐다. 가을이 오기 전에 나는 무갑리에서 그나마 가까운 기차역으로 직장을 옮길 것이다.
경기도 광주시 초월읍 무갑리에는 기차가 없다.
철도노동자인 내가 기차역에서 먼 무갑리까지 이사를 간 까닭은 크게 두 가지가 아니라, 작게 한 가지다. 벗어나고 싶었다. 도피나 탈출이 아니라, 한 발쯤 비껴서 도대체 나는 누구인지, 무엇을 바라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하고 싶었다.
누구나에게 그런 바람이 있을 것이다. '돌아가야 한다. 내 형제들의 곁으로'가 아니라, '떠나야 한다. 내 형제들의 곁을'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돌아갈 곳도, 떠날 곳도 '내 형제들의 곁'이니 한 발쯤 비껴서기도 어려운 일이다.
집을 옮기고, 학교를 옮기고, 직장을 옮기고, 생각을 바꾸고, 마음을 바꾸고, 자세를 바꾸고, 태도를 바꾸면서 우리는 '내 형제들의 곁'을 맴도는 게 아닌지…. 이사를 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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