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프로야구 8구단 신임 감독으로 이광환 감독이 선임됐다. 1994년 LG에서 '자율야구'의 꽃을 피웠던 이광환 감독으로서는 또다른 도전이 시작된 셈이다.
이광환 감독의 '자율야구'에 대해 혹자는 'All or nothing' 이라는 표현을 한다. 그가 강조하는 선수들의 자발성이 시너지 효과를 낼 때는 성공의 길로 가지만 자칫 자유를 만끽하다 보면 선수단 분위기가 와해될 수 있기 때문. 하지만 이 감독은 그 때마다 개인적인 면과 단체 경기적인 면을 동시에 갖고 있는 야구의 특성을 통한 설명을 해왔다. 개인훈련은 '자율'이지만 단체훈련은 엄격하게 치러져야 한다는 말이다. 그는 선수들에게 자율적 개인훈련을 맡기지만 얼마나 그 선수가 생각을 갖고 훈련에 임하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여기서부터 '이름값'이 아닌 선수들간의 '경쟁체제'가 시작된다.
그의 자율야구는 선수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코칭스태프에게 많은 권한을 주고 그들의 의견을 경기에 많이 반영시킨다. 자칫 독선적으로 흐를 수 있는 야구 감독의 결정을 막을 수 있는 안전장치인 셈이다. 8구단 수석코치로 선임된 이순철 코치의 역할이 중요한 까닭이다.
허슬 플레이는 94년 '신바람 야구'란 신조어를 낳게 한 LG의 특장점이었다. 과감한 주루 플레이와 도루 등 기동력의 야구가 이광환 감독이 주장하는 허슬 플레이의 핵심이다. 이 부분에서 이 감독은 1987년 메이저리그 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 연수할 시절 기동력과 수비의 야구로 80년대 명장으로 군림했던 화이티 허조그 감독에게 영향을 받았다. 이 감독은 이기는 경기라고 쉽게 '지키는 야구'를 잘 하지 않고, 진다고 해서 일찍 경기를 포기하는 일이 거의 없다. 이광환 감독시절 LG가 관중몰이에 성공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하지만 감독 시절 스트레스가 쌓일 때마다 산행을 즐겼던 이광환 감독의 자율야구의 핵심은 참고 기다리는 것이다. 감독이 흥분하면 선수들은 우왕좌왕대기 마련. 그는 제 궤도에 팀이 진입할 때까지 기다린다. 외부로부터의 '극약처방'보다는 적어도 내부에서의 '긍정적 변화'가 일어날 때까지 선수들에게 신뢰를 보낸다. 마라톤 경기에 비유되는 페넌트 레이스를 운용하는 데에 있어 감독의 순간적 기지는 그리 큰 부분을 차지하지 않는다는 확신이 그에게 있기 때문이다.
1990년대 프로야구계에는 포스트시즌에 나가려면 '관리야구'의 대가인 김성근 현 SK 감독을 모셔오고, 팀 재건과 우승이라는 도박을 하려면 '자율야구'의 신봉자 이광환 감독에게 지휘봉을 줘야 한다는 농담이 있었다. 그만큼 이 감독의 야구는 한 번 정착되면 활화산처럼 불붙지만 그렇지 못하면 실패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2002년을 끝으로 멈췄던 그의 야구 실험은 또 시작됐다. 어쩌면 이광환 감독의 성공여부는 감독 자신의 인내심은 물론 메인 스폰서나 센테니얼의 인내심이 더욱 필요할지 모른다. "한화 시절에는 2년간 선수들 파악을 하는 데 그쳤고, 2003년에 다시 LG 지휘봉을 잡았을 때는 1년만 하고 2군으로 내려갔다. 시간이 모자랐다"는 이 감독의 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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