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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난 체하지 마라, "옌틀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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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난 체하지 마라, "옌틀로운"

[덴마크에서 살아보니ㆍ<3>] 매사에 시큰둥한 사람들

덴마크에는 '옌틀로운'이라는 단어가 있다. '옌트의 법칙'이라는 뜻이다. 모세의 십계명을 본뜬 이 법칙은 다음과 같다.

1. 네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믿지 말라
2. 네가 다른 사람보다 더 가치 있다고 믿지 말라
3. 네가 다른 사람보다 더 현명하다고 믿지 말라
4. 네가 다른 사람보다 잘났다고 믿지 말라
5. 네가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안다고 믿지 말라
6. 네가 다른 사람보다 위대하다고 믿지 말라
7. 네가 무엇을 잘한다고 믿지 말라
8. 다른 사람을 비웃지 말라
9. 누가 혹시라도 너에게 관심을 갖는다고 믿지 말라
10. 네가 행여나 누구를 가르칠 수 있다고 믿지 말라


덴마크인들의 마음 속에 오래 전부터 잠재돼 내려오는 정서를 나타낸 것이라고 하는데, 정작 이 '옌트의 법칙'이라는 말 자체는 1933년 악셀 산드모스라는 덴마크의 작가가 쓴 작품 속에 처음 나온다고 한다.

이 괴짜 작가는 덴마크의 한 시골에서 살다가 염증이 나서 노르웨이로 이주한 후 '옌트'라는 가상의 덴마크 마을을 설정하여 작품을 썼다. '옌틀로운'은 바로 '옌트'마을을 다스리는 법칙이다.

"남보다 잘난 체하지 마라"는 것을 되풀이해서 강조하는 이 법칙은 서로를 빤히 잘 알고 비슷하게 살아가는 마을에서 누구 하나가 특출나거나 남보다 잘난 체했다가는 주위에서 은근히 제재를 가하는 덴마크의 시골의 눈에 보이지 않는 행동규범과 정서를 풍자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현대의 덴마크인들은 '옌틀로운'이란 옛 말이라고,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평등을 강조하는 새로운 '옌틀로운'을 누군가 지어냈는데 다음과 같다.

1.모든 사람이 특별하다고 믿어야 한다.
2.모든 사람이 똑같이 중요하다고 믿어야 한다.
3.네가 다른 사람보다 영리할지는 몰라도 더 좋을 사람일 수는 없다.
4.모든 사람이 너만큼은 잘한다고 믿어야 한다.
5.모든 사람이 알아야 할 것들은 알고 있다고 믿어야 한다.
6.모든 사람이 너와 동등하다고 믿어야 한다.
7.모든 사람이 각자 잘하는 것이 있다고 믿어야 한다.
8.다른 사람을 비웃어서는 안된다.
9.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믿어야 한다.
10.누구한테서나 무언가 배울 점이 있다.


▲ 덴마크에서는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시민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경제적 여유가 있어도, 굳이 큰 차를 몰고 다니지 않는 배경에는 '잘난 체'를 유독 싫어하는 문화도 한몫하지 않을까. ⓒ김영희

옛 '옌틀로운'이나 새 '옌틀로운'이나 다 같이 덴마크인의 특성을 단적으로 나타낸다 하겠다.

그러나 덴마크 인을 관찰한 외국인은 덴마크인의 심성 속에 옛 '옌틀로운'이 여전히 살아있다고 말한다.

가령 동네에서 누군가 열심히 일한 덕에 돈을 많이 벌어 눈에 번쩍 띄는 차를 사서 집 앞에 세워놓으면, 사람들은 '저거 회사 차겠지.' '중고차를 산 거 아냐?' '어디서 유산이 좀 생긴 거로군' 하는 식으로 말한다는 것이다.

덴마크 학교에는 시상제도가 없다. 그리고 공부 잘하는 아이를 특별히 칭찬하지 않는다. 모든 아이들이 다르고 존중해야 한다는 뜻도 있지만 옌틀로운의 영향도 없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덴마크에서는 크게 자랑할거리가 생겨도 곧이 곧대로 떠벌리면 안 되고 그저 대수롭지 않은 듯, 마지못해서 한마디 하는 듯 하는 것이 상식이다.

이처럼 좋은 일도 시큰둥하게 말하는 옌틀로운의 정신으로 인해 덴마크 인의 화법은 우리와는 상당히 다르다.

예를 들어 '우리 아이가 시험에 합격 했어' 하고 희색이 만면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우리아이가 어쩌다 보니 시험에 겨우 붙기는 했나봐' 하고 덤덤하게 말한다는 것이다.

덴마크 팝송 중에 "커피만 있으면 인생이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야"라는 가사가 있다. 우리 같으면 "커피만 있으면 인생이 짱이야"라고 표현했을 것이다.

필자 이메일 : kumbikumbi2@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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