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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도 모르는 은밀한 배란, 장점 혹 단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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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자신도 모르는 은밀한 배란, 장점 혹 단점?"

하리하라의 '육아 일기' <3>

별이에게 보내는 세 번째 편지 : 2004년 9월 1일

별아, 어디쯤 오고 있는 거니? 아직 너무 작고 약해서 중간중간 쉬었다 오는 거니? 엄마가 널 기다린 지 벌써 반년이 지나가고 있는데 넌 아직도 소식이 없구나. 네가 언제쯤 와 줄지 모르겠으니, 엄마는 이제 조금씩 초조해지기 시작했어.

별이를 기다리면서부터 엄마는 '배란기 이후 조심스러운 생활'을 시작했어. 아마도 임신을 계획하는 많은 엄마들이라면 공감할 텐데, 배란기가 지나면 임신의 가능성 때문에 매사 조심스럽게 생활해. 엄마도 그랬단다.

배란기가 지나면 혹시 별이가 뱃속에 자리를 잡고 있지나 않을까 해서 몸에서 일어나는 작은 변화에도 신경이 쓰이고, 회식 자리에 참석해도 술을 받아 마시기가 겁나고, 혹시나 감기 증상이 있어도 감기약에 선뜻 손이 가지 않더구나. 물론 임신 5주까지는 아기가 완전히 엄마랑 이어진 것이 아니어서, 술이나 약물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는 알려져 있지만, 막상 그런 상황에 놓이고 보니 조심해서 나쁠 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그런데 이게 생각보다 쉽지가 않더구나. 첫 번째 어려웠던 것은 배란기를 정확하게 예측하기가 힘들다는 것이었어. 보통 배란은 생리 시작 2주 전에 일어난다고 하는데, 생리주기가 정확한 여성이라야 예측이 가능해. 그런데 여성들 중에는 생리주기가 불규칙한 사람도 많고, 평소에 규칙적이다가도 스트레스를 받거나 영양 상태가 나빠지면 불규칙하게 변한단다. 또 하나, 아기를 기다려서 몸에 일어나는 작은 변화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기 시작하면 생리 주기는 점점 늦어지는 경향이 있어. 아기를 기다리며 신체 변화에 신경 쓰는 일 자체가 정신적인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인가 봐.

배란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다른 독특한 특징 중의 하나는 규정된 짝짓기 철이 없다는 것과 여성 스스로도 언제 배란이 되는지 알기 어려울 만큼 배란이 은폐 되어 있다는 거야. 인간의 생식 습성은 다른 동물들이 보기에는 지나치게 비효율적이고 불합리하기 짝이 없어. 성행위는 자손을 번식시키기 위한 중요한 행위인데도, 인간의 그것은 자손 번식에는 지극히 비효율적이거든.

생명체에게 있어 유전자의 존속은 거의 절대적이라고 할 만큼 커다란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그들에게 있어 생식 주기는 매우 규칙적이고, 또 생식 가능성에 대한 표시는 공공연하게 드러나. 많은 생명체들은 짝짓기가 가능한 시간이 연중 어느 때로 규정되어 있어서 짝짓기 철에만 번식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니? 이처럼 정해진 짝짓기 철이 있는 것은 번식에 있어 더 효율적이야. 그래야 다른 시기에는 각자 살면서 에너지를 비축했다가, 짝짓기 철에 쏟아 부을 수 있을 테니까.

또 대부분 생명체들의 배란 시기는 아주 공공연하게 오픈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야. 그래야 효과적으로 번식할 수 있으니까. 번식기의 암나방은 봄비콜이라는 화학물질을 분비해 수나방들을 유혹해. 비비 암컷은 발정기가 되면 특유의 냄새를 풍길 뿐 아니라, 시각적으로 빨갛게 변하고 크게 부풀어 오른 성기를 대놓고 흔들어대며 자신이 발정기에 들어섰음을 주변에 알리지.
▲ 흰 쥐 암컷의 배란 체크. 왼쪽은 보통의 경우, 오른쪽은 발정기에 들어선 상태. 이처럼 동물의 경우 배란이 되면 번식률을 높이기 위해 눈에 띄는 변화가 나타난다. ⓒmeddean.luc.edu

그러고 보니 엄마도 대학 시절, 실험을 배우러 다녔던 연구실에서 실험용 쥐들을 번식시키기 위해 암컷 쥐의 발정기를 체크하라는 과제를 받고 무척 당황스러웠던 일이 떠오르는구나. 실험하는 법을 막 배울 때라 맨손으로 쥐를 만지는 일도 겁이 났는데, 일일이 발정기 체크를 하라니. 정말 울고 싶은 심정이었지.

인간의 눈으로 보기엔 동물들이 발정기에 보이는 행동들은 무척이나 민망하고 뻔뻔스럽게까지 느껴지곤 하지만, 자연계에서 번식에 성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귀한 기회를 놓치는 일은 하지 않는 게 보통이야. 그런데 유독 인간에게 있어서 배란 은폐 현상이 나타난 이유는 무엇일까?

거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명들이 있단다. 인간에게 배란 은폐가 일어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인간이 '두 발로 걷는 동물'이기 때문이란다. 두 발로 걷는 것과 생식 습성의 차이가 어떻게 이렇게 이어질 수 있느냐고? 그 얘기를 하려면 아주 오래전으로 거슬러 가야 해.

먼 옛날, 어느 순간 유인원들의 공동조상으로부터 갈라져 나온 인간의 조상이 나무에서 내려와 초원 위에 두 발로 직립을 하게 되었어. 직립을 하게 되자 두 눈은 하늘을 볼 수 있게 되었고 두 손은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되었지. 이로 인해 인간의 지능이 발달하기 시작했고, 발달된 지능을 담아둘 뇌도 점점 커지기 시작했지. 그런데 문제는 두 발로 걷는 것과 커다랗게 부풀어 오른 머리, 이 두 가지는 양립하기 힘든 조건이라는데 있었지.

두 발로 걷게 되면서 인간의 골반은 네 발 짐승과는 다른 모습으로 변했어. 직립하게 되면 내장이 중력의 영향을 크게 받기 때문에 아래로 쏠리게 돼. 그래서 골반뼈는 이렇게 아래로 눌리는 창자들을 잘 받쳐 주는 대야 같은 역할을 해야 해. 그러다보니 골반은 상대적으로 앞뒤로 납작하고, 골반 내부의 공간이 작고, 골반 입구가 좁아야 해. 그래야 창자들이 중력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유일한 탈출 공간인 항문으로 삐져나오는 것을 막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이런 해부학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내장은 완벽하게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절반이 넘는 성인들이 '치질'이라고 불리는 '직장의 일탈'로 인해 고통 받고 있으니까 말이야. 치질은 직립하는 동물에게만 주어지는 일종의 대가 같은 것이란다.)

그런데 진화적으로 인간의 골반 입구가 좁아지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인간 태아의 머리 크기는 자꾸만 커지고 있었어. 이는 인간의 번식에 심각한 딜레마가 되었어. 좁은 골반에 머리 큰 태아는 최악의 조건이야. 태아의 머리가 너무 크면 좁은 골반을 통과할 수가 없어서 엄마와 아기 모두가 위험해져. 하지만 태아가 너무 일찍 태어나면 신체 기관이 아직 미숙하기 때문에 생존 능력이 떨어져. 그래서 인간의 아기는 엄마의 신체가 감당할 수 있는 최대한의 한도에 맞춰 가장 기본적인 반사 몇 가지만을 가지고 태어나지.

인간의 아기가 다른 영장류의 새끼들에 비해 더 연약하고 덜 성숙해서 태어나는 것은 이 때문이야. 학자들의 연구로는, 인간 아기가 다른 영장류 새끼들만큼의 발달 수준을 가지고 태어나기 위해서는 엄마 뱃속에서 9개월이 아니라 18개월은 있어야 한다고 해. 18개월짜리 태아라니, 그러면 키는 70cm, 몸무게는 10kg에 육박할 거야. 그 정도 크기의 태아는 여성의 몸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훨씬 넘어선단다.

이렇게 좁은 골반과 머리 큰 태아의 결합은 아기를 덜 성숙한 상태로 태어나게 할 뿐 아니라, 분만 그 자체도 어렵게 만들어. 인간의 분만은 그 어떤 동물보다도 길고 고통스럽다고 알려져 있어. 그러나 분만의 고통보다 더 힘든 건 기나긴 육아 기간이야. 칼 세이건의 말처럼 인간은 '지독하게 느리게 자라는 동물'이야. 긴 유년기는 커다란 인간의 뇌가 많은 것을 배우고 익힐 수 있는 시간을 보장하지만, 그만큼 긴 기간 동안 부모에게 의존해야 함을 의미해.

일반적으로 유인원의 유년기는 다른 동물들에 비해 긴 편이지만, 그 주에서도 인간의 유년기는 유독 길지. 이는 앞서 말한 골반과 머리 크기의 불균형으로 아기가 매우 미성숙한 상태로 태어나기 때문이야. 그래서 인간의 경우, 자손을 낳아 기르는데 매우 많은 시간과 품이 들기 마련이지.

인간의 아기는 이처럼 미성숙하기 때문에 아이를 엄마 혼자서 키우기는 정말 힘들어. 아마도 자연에서 살던 시대에는 그 것이 더욱 어려웠을 거야. 그래서 인간의 경우, 아빠의 존재가 양육에 매우 중요했을 거야. 엄마 혼자 아이를 키우는 경우보다, 엄마와 아빠가 힘을 합쳐 아이를 키우는 것이 아이들이 생존하는데 유리했을 테니까. 그런데 인간 여성에게 나타나는 배란 은폐 현상은 아빠를 아이 양육에 매우 효과적이었다고 해. 어떻게 효과적이었냐고?

이에 대한 첫 번째 가설은 '아빠를 집에(DADDY-AT HOME)' 이론이야. 이 이론은 배란의 은폐로 남편은 아내에게서 언제 임신이 가능한지 알 수 없어지니까, 아내를 다른 남자의 접근으로부터 보호하고 태어난 아이가 자신의 핏줄이라는 것을 확신하기를 원하는 남자는 가능한 오랫동안 아내의 곁을 지키게 되고, 결국은 양육에 참여하게 된다는 거야. 만약 인간 여성에게 배란이 은폐되어 있지 않다면, 남편은 배란기에만 아내를 탐하고 힘든 육아의 업무에서는 슬쩍 도망쳐 버릴 가능성이 높다는 거지.

인간의 아기를 키우는 건 엄마 혼자서는 매우 힘든 일이기 때문에 아버지가 없는 아기는 무사히 성장할 가능성이 낮아. 따라서 배란 은폐는 아내를 잠시라도 떠나 있다가는 태어날 아이가 자신의 아이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남편에게 심어주어, 일부일처제를 공고히 하고 아빠가 아이 양육에 참여하도록 유도한다는 거야. 이 경우, 발정기가 없이 언제나 섹스를 할 수 있다는 것은 힘들고 어려운 양육에 참여하는 데 주어지는 일종의 상이라고 할 수 있지.

두 번째 가설은 '여러 아빠(MANY-FATHERS)' 이론이라는 거야. 유인원 사회에서는 유아 살해 현상이 심심찮게 일어나. 고릴라의 경우, 힘겨루기를 통해 새로운 우두머리가 된 수컷은 무리의 암컷들이 지닌 새끼들을 모조리 죽이는 경우가 종종 나타나지. 이는 새로 왕좌에 앉은 수컷은 이 암컷들과 발정기에 관계를 맺지 않았으므로, 암컷들의 자식이 자신의 피를 이어받지 않았다는 것을 너무도 명확히 알기 때문이야. 포유동물의 경우, 젖을 먹이는 동안에는 배란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보통이므로, 언제 또 습격을 받을지 모르는 불안한 왕좌 다툼 속에서, 하루라도 빨리 암컷들에게 자신의 새끼를 임신시키기 위해 원래 있던 새끼들을 모두 죽이는 잔인한 짓도 서슴지 않는 것이지.

하지만 암컷의 입장에서는 우두머리가 바뀔 때마다 제 새끼를 잃는다는 것은 정말 견디기 힘든 일이야. 하지만 배란이 은폐되어 언제가 배란기인지 알지도 못 하고, 그 것과도 상관없이 언제든 관계를 맺을 수 있다면, 새로 태어난 새끼들이 누구의 핏줄인지 알기가 쉽지 않아. 내 아이가 아닐 수도 있지만, 내 아이일수도 있어. 이런 경우, 수컷은 함부로 암컷이 가진 새끼를 죽이기를 망설이게 되지. 사바나 원숭이 암컷의 경우, 이런 전략을 통해 앞으로 유아 살해자가 될 수 있는 수컷들을 다독여 수컷들이 새끼들을 좀더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는 거야.

사실 어느 이론이 맞는지는 정확히는 알 수 없어. 다만 중요한 것은 어느 쪽이든 간에 배란 은폐 현상이 태어날 아이의 생존에 도움이 되었다는 거야. 그러나 배란 은폐는 태어날 아이의 생존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여전히 아이를 갖는 데는 그다지 효율적인 방법은 아니기 때문에, 아이를 원하는 부부들은 기초 체온법, 배란통과 배란출혈의 관찰, 배란 테스트기 이용 등의 방법을 이용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받아들여야 한단다. 배란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다시 하도록 하고 오늘은 이만.

참고 자료

<섹스의 진화>(제러드 다이아몬드 지음, 윤지원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지나 사피엔스>(레너드 쉴레인 지음, 강수아 옮김, 들녘 펴냄)

<에덴의 용>(칼 세이건 지음, 윤지원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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