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절시인 기형도가 남긴 대중 가요 노랫말이 20년 만에 햇빛을 봤다.
기형도 시인이 사망하기 2년 전 1987년에 가사를 쓴 왈츠풍 노래 '시월'이 가수 심수봉의 최근 음반에 수록된 것.
'시월'은 당시 중앙일보 기자로 활동하던 기형도 시인이 동료 기자이자 대학가요제 출신의 작곡가 박광주(51) 씨의 곡에 가사를 붙이며 완성됐으나 그동안 노래로 만들어지지 못했다.
박광주 씨에 따르면 곡이 완성된 직후 친분이 있던 심수봉 씨에게 한 번 불러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지만 가사가 너무 시적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해 음반에 실리지 못했다.
그 후 잊혀졌던 이 노래는 2년 전 한 가요 프로그램을 통해 오랜만에 심수봉을 만난 박 씨가 다시 제안하며 빛을 보게 됐다.
문학 애호가인 심수봉 씨는 "지금 보니 가사가 너무 마음에 와닿는다"며 이 노래를 지난달 발표한 11집의 13번째 곡으로 실었다.
'시월'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저기 어두운 나무 어둔 길 스치는 바람 속에서/말없이 서있는 추억 있어 나 여기 떠날 수 없네/이제 다시는 갈 수 없고 다시 이제는 오지 못할 꿈이여 시간들이여/나는 왜 잊지 못하나 길은 또 끊어지는데/흐르리 밤이여 숲이여 멈추리"
박광주 씨는 "기형도가 대중에게 많이 불리길 소망하며 써준 가사인데 그동안 묻혀있어 너무 안타까웠다"면서 "20년 만에 약속을 지키게 된 것 같아 뿌듯하다"고 밝혔다.
박 씨는 역시 자신이 작곡하고 기형도가 노랫말을 붙인 트로트풍의 노래 '내 마음 낙엽'도 심수봉의 11집에 실릴 계획이었으나 다른 노래들에 밀려 빠진 것 같다며 아쉬움을 표현했다.
1989년 29세의 나이로 요절한 기형도는 사망한 지 약 20년이 지났지만 유고 시집 '입 속의 검은 잎' 등으로 여전히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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