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노농연대의 질이 달라졌습니다. 두고 보십쇼"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노농연대의 질이 달라졌습니다. 두고 보십쇼"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문경식 전농 의장 좌담

보수진영에서 툭 하면 하는 소리가 있다. '잃어버린 10년.' 정권을 빼앗겨 지내온 지난 10년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그런데 진보진영에서는 '잃어버린 20년'이라는 말도 나온다. 정치적 민주화는 이뤘을지언정 경제적 측면에서 97년 IMF 이후 가속화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으로 인해 양극화가 심화되는 등 경제적 민주화는 더 악화됐다는 의미다.

오는 11월 11일 진보진영에서는 대대적인 집회를 열 계획이다. 지난 겨울 거세게 몰아붙였던 한미FTA 반대 집회 이후 진보진영의 이런 대규모 집회는 거의 처음이다. 특히 대통령 선거를 앞둔 시점의 집회여서 진보진영이 이번 집회를 계기로 확실한 의제를 설정하고 세몰이를 할 수 있을지도 주목된다.

"11월 11일 대회, 민중의 분노·절박함 어떤지 보게 될 것"
▲ 이석행 위원장(왼쪽)과 문경식 의장(오른쪽) ⓒ프레시안

<프레시안>은 진보진영에서 노동자와 농민 조직을 대표한다는 이석행 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과 문경식 전국농민회 의장을 한 자리에서 만났다. 이들은 오는 11일 열릴 '범국민공동행동의 날' 준비 상황에 대한 물음에 그 어느 때보다 "조직 내 분위기가 좋다"고 말했다. 경찰이 원천봉쇄 방침을 밝혔지만 참여 의사가 높아 이미 대회가 열릴 서울 시내 곳곳을 가득 메울 정도로 조직화가 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분위기가 좋은' 것은 역설적으로 그만큼 '절박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노동 유연화에 따른 고용 불안정으로 노동시장의 비정규직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이상 기후로 수확 시기가 늦춰진 농촌은 '철을 지나 여전히 수확 중'이라고 한다. 게다가 농산물 시장 개방으로 인해 농산물 가격이 하락하고 있어 '농심'은 언제나 그렇듯 폭발 직전이다.

하지만 이런 폭발직전의 민심이 '조직적'으로 표출되지 못 하는 한계를 나타내고 있다. 민주노총은 조직율이 낮아지고 있고, 전농도 '농촌의 고령화' 및 '위기의 장기화'로 인해 조직의 활력을 점점 잃어하고 있다. 사회의 위기가 이들 조직의 위기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들은 현장에서 '변화'의 바람이 불며 새로운 활력이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이 위원장은 "제조업 사업장 조직의 고령화가 심각한 문제"라고 했다. 현장에 가보면 제조업 조직의 경우 평균 연령이 42~43세에 이른다는 것이다. 사측이 정규직이 퇴직한 자리에 비정규직을 채우다 보니 정규직 평균 연령이 계속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운동의 물결…비정규직, 非벼농사 농민들"

다만 이 위원장은 지난 여름 현장대장정에서 감동과 함께 희망을 발견했다고 한다. 이 위원장은 "경남 창원에서 청소하시는 분들로 된 조합원 1~2명인 사업장을 조직했는데, 우리가 '잘 될까' 싶었던 작은 사업장으로 이뤄진 '일반노조'라는 조직이었지만, 이 분들이 조직화돼 1주일 동안 파업을 했고 그 파업으로 인해 큰 효과를 봤다"며 "큰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민주노총은 지금까지 대공장 위주의 노조 중심의 조직이었는데, 이제 비정규직 조직 활성화가 조금씩 이뤄지고 있다는 얘기다.

농업 쪽 '투쟁의 전선'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과거 농민운동은 '쌀 개방 반대'에 초점이 맞춰져 벼농사 농가 중심으로 이뤄졌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FTA 등 광범위한 개방의 파고 속에서 과수농가, 축산농가들까지 '투쟁의 전선'에 동참하고 있는 추세다.

문 의장은 "이제 오리, 돼지, 한우 등의 축산 농가들이 적극적으로 원정 투쟁에 나서고 있고, FTA 반대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농민 단체가 40여 개에 이른다"며 폭발직전의 농심을 전했다. 농민들은 '경영인'의 정체성도 갖고 있기 때문에 민중 운동에 적극적이지 않았으나, 지난 20년 동안 상황은 변했다.

문 의장은 이어 "그동안 반대만 외쳤는데, 이제 적극적으로 우리의 대안을 제시하며 '국민과 함께 하는 농업' 쪽으로 투쟁 방향을 가꾸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농촌과 농업의 문제를 끊임없이 얘기했지만, 국민들의 동참을 효과적으로 이끌어내지 못 했다는 것이다.

문 의장은 "농업과 농촌 문제를 경제 논리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알려내고 농업계뿐만 아니라 언론, 예술, 시민사회단체 등이 모두 참여하는 포럼을 꾸리겠다"고 말했다.

"민노당, 노무현 실망표를 흡수할 수 있는 희망 제시해야"
▲ ⓒ프레시안

이런 '위기'와 '변화의 바람' 속에 있는 이 두 조직이 대선에 임하는 각오도 남다를 수밖에 없다. 이 위원장과 문 의장은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 선본의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참여하고 있다.

우선 '반성'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이 위원장은 "사실 그동안 노동자들이 자신의 계급성에 따라 투료를 한 것이 아니라 지역색으로 나뉘어져 투표를 했었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그러나 "지금은 '철밥통'이라 불리던 직장들조차 고용불안을 느끼고 있다"며 "현장 대장정을 다녀보니 '그래도 DJ인데', '그래도 노무현이 낫겠지'라는 생각이 민중들의 삶에 도움이 안 되는 것을 경험했다"고 말했다.

문 의장도 "전농은 지난 대선 때 조직 차원에서의 입장이 없었다"며 "과거에는 '반 한나라당' 전선이었지만, 지금 반성해보면 한나라당이나 범여권이나 농민들이 얻어내고자 하는 정책에 동의해주지 않고 있기 때문에 많은 농민드이 갈등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 반성 하에 민주노동당에 대한 비판과 각성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지난 5년 동안의 노무현 정권 실정의 이득을 민노당이 챙겨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권영길 후보는 여전히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2~3%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문 의장은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노무현 정권의 실정으로 '바꿔야 한다'는 정서가 있는데, 이게 모두 한나라당 쪽으로 쏠리고 있는 것 아니냐"며 "민노당이 그동안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지 못해서"라고 말했다.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득표율은 48.9%였는데, 현재 상황에 대입해볼 때 현재 범여권 지지율이 20%선인 점을 감안하면 30% 가까운 표가 왼쪽이 아닌 오른쪽으로 모두 몰려갔다는 의미다.

문 의장은 "아직도 민노당이 농민들에게 '아 이거다'라고 이해될 수 있는 정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고, 이 위원장은 "민노당이 아직까지 대중들에게 개방적이지 않은 점이 아쉽다"고 비판했다.

"노농연대로 농촌에서 민노당 의원 배출하겠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실질적인 연대전선을 구상하고 있다. 그리고 대선을 시작으로 결성된 선거 조직을 내년 총선까지 이어갈 예정이라고 한다.
▲ ⓒ프레시안

이 위원장은 "한미FTA로 인해 '노농(勞農) 연대'의 질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문 의장도 "과거 노농연대는 상대 집회에 대표자 참석해 연대사를 하는 정도였던 게 사실"이라며 "그러나 한미FTA 이후 함께 투쟁하고, 함께 재판받고, 함께 감옥에 가다보니 진짜 동지가 됐다"고 말했다. 이 분위기를 총선으로 몰아갈 생각이다.

이 위원장은 "이번 총선에서 노동자 밀집지역에서 민노당 후보가 당선되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래봐야 노동자 밀집지역은 의석수가 얼마 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이 위원장은 대신 농촌 지역에 주목했다.

이 위원장은 "도농 복합 지역인 광주 광산구에서는 시의원 6명 중 4명이 민노당 의원"이라며 "농촌지역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농촌에도 전교조, 공무원노조, 사회보험노조, KT노조 등 민주노총 조직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며 "이들이 농민회와 힘을 합쳐 선거운동을 하면 파괴력이 있다"고 덧붙였다.

문 의장도 "이제 농민들도 한나라당이나 범여권 후보들로는 농민들이 삶이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각성하고 있을 것"이라며 "농촌지역 여론조사를 보면 한나라당 다음으로 민노당의 지지율이 높다"며 농촌지역에서의 농민후보, 민노당 후보의 선전을 기대했다.

다음은 좌담 전문이다.

프레시안 : 11월 11일 범국민행동의 날 준비상황은 어떤가?

문경식 : 농민들은 연초부터 계획해 왔기 때문에 준비 잘 되고 있다. 그런데 올해 날씨가 고르지 못해 수확이 늦어지는 바람에 좀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어려움을 무릅쓰고 11월 11일 대회는 농민들이 주장하는 한미FTA 반대, 쌀 생산비 보장, 농가부채 해결을 주목적으로 하는 만큼 농민들의 참여의지가 높다. 국회에서는 쌀값 기준가를 17만80원에서 16만 원대로, 8500원가량을 내리는 안을 상정하고 있고, 여러 가지 농업관계법이 계류돼 있는데, 이번에 농민들의 위력적 힘을 보여주지 않으면 농업 문제 해결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다.

또 어디 농민 문제만 있는가. 전체적으로 보면 신주유주의와 WTO 체제 하에서 체결괴고 있는 한미FTA, 한EU FTA 등으로 축산농가를 비롯해 농가 전체가 어렵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분신하는 위기 상황이기 때문에 11월 11일 대회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지금까지 파악한 바로는 10만 명의 농민들이 대회에 참석할 예정이다.

이석행 : 최근 들어 세 명의 노동자가 분신을 하셨다. 마음이 착잡하고 또 동지들의 유지를 받들어야 할 책무를 느끼고 있다. 그런 상태 속에서 현장 점검을 해봤는데, 지방에서는 농민들과 더불어 바람이 분명히 불고 있다. '가자', '하자', '해야한다'는 바람이다. 수도권을 제외하고 지방에서만 7만5000명이 상경할 예정이다. 당초 3만5000명 정도로 예상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참여율이 높은 것은 그만큼 절박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농민들과 함께 지역에서 조직화되며 상승작용이 일어나고 있다. 농민회는 3만 회원이 10만 명을 모았는데, 우리는 조합원만 80만 명인데, 1/4밖에 못 모아 부끄럽기도 하다. 하지만 이번에 잘 하고 나면 다음부터는 더 큰 힘을 모을 수 있을 것 같다.

프레시안 : 과거에 비해 '노농(노동자-농민)연대'라는 말이 더 자주 들린다. 이번 대회에서 조직 안팎으로 민주노총과 전농이 활동하는 부분은 무엇이 있나?

이석행 : 현재 진보연대를 중심으로 '1농촌 1노조' 자매결연 맺기 운동을 하고 있다. 그런데 자매결연이 된 지역은 확실히 운동의 탄력이 붇고 힘이 생겼다. 그리고 문 의장과 함께 다니며 지역에서 노농연대가 활발히 이뤄지도록 독려하고 있다.

▲ ⓒ프레시안

문경식 :
'노농연대'라는 말은 오래 전부터 나온 말인데, 실질적으로 노농연대가 위력을 발휘하게 된 계기는 한미FTA 반대 투쟁을 함께 하면서부터이다. 과거에는 노농연대라봐야 노동자 대회에 전농 대표가 참석해 연대사를 하고, 농민대회에는 민주노총 대표가 참석해 연대사를 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투쟁을 함께 하면서 연대도 발전했다. 전국 광역 8개 지역에서 민주노총 지역본부와 전농 도연맹이 함께 활동을 하고 있다. 작년 말 한미FTA 반대 집회를 하면서 투쟁도 같이 하고, 재판도 같이 받고, 감옥도 같이 갔다.

이번 대회 날짜도 사실 올해 추수기가 늦춰져서 전농에서는 11월 20일로 하자고 했는데, 전태일 열사 기일, 민주노총 창립기념일 등을 감안해 전농에서 날짜를 양보해 11일에 하게 됐다. 노농연대의 정신을 살린다는 취지이다.

이석행 : 농민들은 날짜를 양보했고, 대신 민주노총에서는 사전대회 장소를 농민에게 양보했다.

프레시안 : 올해 이상 기후로 인해 농민들이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있다. 노동계도 별반 사정이 좋지 않은 것 같다. 현장 분위기를 전하자면?

이석행 : 지난 여름 현장 대장정을 하면서 가슴이 아팠던 것이 아파트값이 1997년 IMF 이후 5~^배가 올랐는데, 현장 건설 노동자들의 임금은 오히려 떨어졌다. 97년만해도 목수들은 일당으로 15만 원가량을 받았는데, 지금은 12~13만 원을 받고 있다. 현장의 노동자들은 분노하고 있다.

올해 비가 자주 내려, 농민들뿐만 아니라 건설 노동자들도 힘겨운 한 해였다. 이번에 전기 노동자가 분신을 하셨는데, 전기 노동자의 경우 비가 많이 내려서 일을 많이 하지 못 해 피폐화되고 있다. 반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민주노총 차원에서 국가의 골간을 뒤흔드는 투쟁을 하겠다. 그동안 아무리 소리 지르고, 아무리 요구하고, 아무리 좋은 정책을 제시해도 누구 하나 거들떠 보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라면 과연 민주노총이 총파업에 나서면 어떤 상황이 벌어지는지 보여주겠다. 가스, 전기, 발전, 기차, 비행기 모두 민주노총 조직이다. 행동의 시발점은 바로 11월 11일 대회이다. 직접 행동하지 않고서는 돌파할 수가 없다. 다만 우리 힘만으로는 안 된다. 전 민중의 힘이 필요하다.

문경식 : 농민 숫자가 330만이라고 그런다. 그런데 65세 이상이 70%를 차지한다. 농촌은 이미 초초고령 사회이다. 20년 후에는 농업 후계자가 없어서 농촌이 사라질지 모른다. 이미 학교가 문을 닫고 있고 아이 울음소리가 없어진지 10년이 넘는다. 삭막하다. 자연스럽게 노인정이 돼버렸다.

젊은 사람들이 조금 들어와 살지만 그동안의 농정 실패로 인해 부채만 잔뜩졌다. 농업 규모화 정책 때문이다. 하우드 600평만 있어도 먹고 살았는데, 3000평 하라고 빚 내줘 3000평 했더니 빚만 쌓였고, 소 20마리 키워도 되던거 100마리 키우고, 논 1만 평 해도 되는 걸 3만 평 하라고 해서 했더니 다 빚쟁이만 됐다. 규모화 정책에 참여하지 않으면 지원을 받을 수 없어 참여한 결과다.

수입농산물 때문에 농산물 가격이 하락해 수확을 포기하고, 그러면 투자금을 회수 못해 부채만 떠안고, 부채 때문에 농촌을 떠나야 하는데, 이들이 남기고 떠난 부채 때문에 마을이 무너지는 연쇄작용이 일어난다. 민심은 흉흉해지고 전통적인 미풍양속도 모두 파괴되는 것이 지금 농촌의 현실이다.

우리는 식량주권, 식량안보를 주장하고 있는데, OECD 국가들 중 우리나라처럼 농업 무시하는 나라는 없다. 농업이 국가경제의 발목을 잡는 것처럼 대통령이 나서서 발언하는 나라는 없다. 우리나라 농업이 이대로 가면 농촌은 사라지고 현재의 식량자급률 25%도 무너질 것이다. 국제 농산물 가격이 상승하는 추세인데, 나중에 농업을 다시 살리려면 국민 부담이 엄청날 것이다.

우선 해결해야 할 것이 쌀값 보장이고, FTA 국회 비준을 저지하는 것이다. 농가부채 해결도 시급한 과제다. 농업문제는 그동안 전농이 앞장서서 투쟁해 왔는데, 지난 10여년 쌀개방 반대와 한칠레FTA 반대 운동을 목숨 걸고 해왔지만 큰 발전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농업은 농민만 싸워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노동자들이, 국민들이 함께 해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함을 느꼈다. 민주노총 조합원의 70~80%는 고향이 농촌이다. 민주노총과 함께 연대해 투쟁하겠다. 비정규직 문제 등에 농민들이 참여하겠다. 민중의 문제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 ⓒ프레시안

프레시안 :
그러나 조직의 활력이 떨어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농촌 고령화로 인해 조직 활동가 고령화라는 문제가 있고, 노동계 쪽도 고용불안 등 노동시장 유연화로 인해 노조 조직률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는데.

문경식 : 농촌 고령화 문제는 오늘 내일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장기적으로 많은 국가 예산이 수반돼야 할 문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 귀농을 유도하고 있지만 성공 못 하고 있다. 농업이 구조적으로 수지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국토를 가꾼다는 의미에서 젊은이들이 농촌에 들어가면 먹고 살 수 있게 하는 정책이 선행돼야 한다. 그럴 때 농촌이 살 수 있다. 요즘은 '평생직장'이라는 말이 사라지지 않았나. 40대가 되면 퇴직을 고민해야 한다. 이들이 퇴직 후 과감하게 농촌에 들어가 농사를 지어 큰 돈을 못 벌어도 먹고 살 수 있고, 문화적 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면 농업 후계자들이 많이 생겨나지 않겠나. 국가적 차원에서 나서야 하는데, 지금의 신자유주의적 농업 정책으로는 어림도 없다.

농업과 농촌을 분리해서 보는 시각도 있는데 이 또한 문제가 있다. 농촌에 살면서 소득이 보장되고 전통 문화가 계승 발전 돼야지, 농촌에서 농업을 배제한 채 생활공간으로만 생각한다면 자연 부락은 다 사라지고 군청이나 시청 소재지 중심으로만 사람들이 살게 될 것이다.

농촌에 살면서 땅을 가꾸면서 농업 소득을 향상시켜야 한다. 농업 생산이 국가의 발전에 기여하도록 해야 한다. 노동자들이 아무리 뼈가 빠지게 일해 수출을 많이 한다고 해도 농산물 수입하는데 그 돈을 다 써야 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농업과 농촌의 문제는 국민들이 함께 사는 가치를 공유하면서 해결해야 한다.

이석행 : 진짜 위기라고 느껴지는게 있다. 요즘 제조업 현장에 가보면 조합원의 평균 연령이 42~43세 정도이다. 이들이 정년이 돼 퇴직하면 그 자리를 거의 비정규직으로 채워 넣고 있다. 5년 후에는 정규직률이 더 낮아질 것이다. 내년 총선까지 민주노총이 어느 정도 위기 탈출의 계기를 만들지 못하면 나는 조직 유지 자체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판단한다. 총선 전에 비정규직 법안이나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자성 인정과 같은 과제들을 차분히 해결해 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운동에 더 이상 전망이 없다고 본다.

조직률이 낮아지는 것도 문제지만, 고령화 되는 제조업의 문제는 국가 경제로서도 심각한 문제다. 제조업 공동화에 제조업 고령화가 가속화되면 제조업 자체가 소멸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그런 면에서 비정규직의 조직화가 시급하다.

비정규직을 조직화 하려면 민주노총이 희망을 보여줘야 한다. 민주노총은 희망을 보여줄 수 있는 행동을 관철해 내도록 하겠다.

프레시안 : 조직률은 낮아지고 있지만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형태의 비정규 사업장 조직이 많이 생겨나고 있는 추세이기도 하다.

▲ ⓒ프레시안

이석행 :
현장 대장정을 하면서 단일한 장소에서 근무하는 사업장 노조가 아닌 '일반노조'가 잘 될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경남 지역에 가서 진짜 큰 감동을 받았다. 20~30만 원 활동비 받는 활동가들이 청소하시는 분들, 쓰레기 분리수거 하시는 분들 등 1~2명으로 된 사업장의 노동자들을 조직해 냈다. 작은 조직이어서 우리가 거들떠보지도 않았는데, 이 분들이 1주일 파업을 하고 많은 성과를 얻었다고 한다. 조직의 형태에서도 비정규직이면 하청이니 큰 덩어리만 생각했는데, 일반노조 보면서 노동운동의 새로운 희망라고 생각되더라. 그들의 활동이 경의로웠다.

프레시안 : 이번에 전농에서는 대선정책으로 중소농, 친환경 재배농가 육성을 주요 정책으로 내놓았다.

문경식 : 지금까지 개방농정 반대만 외쳐왔는데, 우리의 대안을 제시하면서 반대하자는 논의를 꾸준히 해왔고, 그 결과가 지금 나오고 있다. 농업은 경제논리로만 풀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설득하고자 한다. 농업이 사회 다양한 분야에 주는 긍정적 효과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이에 맞는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중소농이 살아야 하고 이들이 협업을 통해 농업을 지키는 방법이 대안이다. 농기계를 서로 공유하도록 하는 제도도 개발해야 할 것이다. 농민들도 변하고 농업 정책을 통째로 바꿔야 한다. 그리고 이런 흐름에 예술계, 언론계, 소비자, 시민사회단체 등 다양한 계층을 동참시켜야 한다. 도시농업도 고민하고 도시인들이 농촌을 이해할 수 있는 체험 정책도 만들어야 하며, 식량주권에 대한 확실한 의식도 심어야 한다.

프레시안 : 민주노총에서 새로운 형태의 조직이 생겨나고 있다고 하는데, 농업계에서도 그동안 벼농사 농가 중심의 운동과 달리 다양한 작목의 농가들이 참여하고 있다고 하던데.

문경식 : 사실 각 품목 조직은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 바빴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한미FTA에 이어 한EU FTA까지 추진이 되자 오리, 양돈, 한우, 이런 축산 품목의 조합들이 원정투쟁까지 가고 있다. 작목별로 보면 포도, 사과, 배, 등이 위기 느끼고 투쟁에 참여하고 있다. FTA 반대에 역사 이래 최대의 농민들이 동참하고 있다. 40여 개 농민 단체가 함께 하고 있다.

프레시안 : 흔히들 보수 세력에서는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한다. 하지만 진보진영에서는 잃어버린 20년이라고도 한다. 제도적 민주화를 이뤘고,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는 등 진전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국가보안법이 그대로 남아있고, 특히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 심화되면서 양극화 등 경제적 민주주의는 후퇴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이석행 : 반성해야 할 점이 있다. 그동안 사실 노동자들이 자신의 계급성이나 노동자의 미래를 위해 투표를 한 것이 아니라 지역색으로 나뉘어져 투표를 했었다. 지난 대선에서 권 후보의 표가 적었던 것도 그렇게 지역색, 혈연, 학연으로 나뉘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철밥통이라고 여겨졌던 직장들조차도 고용불안을 많이 느끼고 있다. 현대차, 기아차, 증권회사 다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이런 불안함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이 어떻게 희망을 제시해 줄 것인지가 중요하다. 제대로 희망의 메시지만 던져줄 수 있으면 과거와 달리 계급투표가 이뤄질 수 있다고 확신한다.

현장 대장정을 다니며 그런 고민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눴다. 사실 이런 얘기 잘 안 했었는데, 직접 얘기를 하니 속이 후련했다. 과거에는 '한나라당이 집권하는 것은 막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분위기가 강했다. 특히 지난 대선에서 정몽준 씨가 노무현 후보 지지철회를 하며 (민노당 표)가 노무현 구하기로 빨려들어갔던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제는 DJ, 노무현 경험해오며 '보수 정치세력'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났다. 그런 점에서 노동자들이 자각하고 있다고 봐진다. 내년 총선에서 민노당이 범여권과 연정을 통해 원내 교섭단체라도 꾸려지는 전망을 할 수 없다면 과거에 대한 철저한 반성을 통해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 '그래도 김대중인데', '그래도 노무현이 낫지 않겠나'하는 얘기는 민중의 삶에는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경험하지 않았나. 철저히 반성해야 한다.

▲ ⓒ프레시안

문경식 :
전농은 지난 대선 때 조직 차원에서의 입장이 없었다. 2003년에 민노당과 함께 하겠다는 합의를 도출했고, 2004년 총선에서 선거를 같이 했지만, 지난 대선 때는 '반 한나라당' 전선이 유력한 대안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권영길 후보 지지에 적극적이지 않았고, 오히려 노무현 대통령에게 많은 표를 던졌다. 그런데 지금 반성해보면, 한나라당은 농민들에게 도움이 안 되고, 그렇다고 범여권을 지지하자니 범여권 역시 농민들이 얻어내고자 하는 정책 내용에 동의해주지 않고 있다. 그래서 많은 농민들이 현재 갈등을 하고 있다.

반면 권영길 후보가 당선 가능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권 후보가 농민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대안을 보여주는 것도 아직 눈에 띄지 않는다. 우리의 힘을 키우고 계속 싸워 노동자나 농민, 민중이 집권하는 쪽으로 가야한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과거에는 강력한 양자 구도가 있어 그 쪽으로 표가 쏠리는 경향이 있었다. 민주노동당이 당 지지율에 비해 대선에서의 후보 지지율이 낮은 것도 사실이다. 사표 심리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범여권 후보의 지지율이 낮은 이번 대선 정국에서도 권영길 후보는 지지율이 2~3%대에 머물고 있다. 그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이석행 : 민노당도 반성하 것은 반성하고 문호를 열어야 할 것은 열어야 한다. 민중경선제 얘기했지만 문을 닫아놓고 하니까 결과적으로 문국현이 지금 민노당의 지지율을 다 뺏아가고 있다. 민중의 정치세력을 위해 수십 년을 고생해 온 권 후보와 올해 대선에서 등장한 권 후보가 어떻게 단순 비교가 되나. 그렇지만 시민사회단체 및 양심적인 지식인들 상당수가 문 후보 쪽으로 가고 있지 않나. 그들의 그런 태도에 대해서는 문제제기를 해야 하지만, 그렇게 갈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던 민노당의 폐쇄적인 자세도 다시 거듭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열어야 한다. 활짝 열고 대중정당으로 거듭나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집안잔치가 되게 해서는 안 된다. 국민들로부터 인정과 신뢰를 받는 희망이 있는 메시지를 아직 못 내놓고 있는 것 아닌가. 이런 맥락에서 민중경선제 주장했던 것이다. 통합신당도 선거인단 투표율은 저조했다. 우리가 민중경선을 했으면 조합원 80만 명 중 절반은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붐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지금 다 떠나가고 있다. 그동안 민노당에 우호적이었던 사람들이 많이 떠났다. 그렇게 문 후보 쪽으로 빠져나가도록 만든 것이 아닌가 민노당이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프레시안 : 전농 쪽에서도 민노당의 농업정책에 대해 불만이 있다고 했는데.

문경식 :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민노당의 정책 등에 대해 이해를 하지만, 일반 농민들은 이해를 하지 못 하고 있는 형편이다. '아, 이거네' 하는 공약을 보여주지 못 하고 있다. 공약집을 보니 '경제살리기'에 농업이 포함돼 있는 형식이더라. 사실 농업 인구는 전체 인구의 7%도 안 되기 때문에 소수가 된 것이 사실이다. 민노당 내에서도 소수 취급을 받는 것 같은 소외감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농민들이 단결하면 민노당 표로 끌어 올 수 있는 강한 집단이다. 왜냐하면 가장 소외돼 있고 가장 고생하는 조직 아닌가. 그래서 농민들의 지지도 여론조사를 보면 한나라당 다음이 민노당이다.

또 중요한 것은 민노당을 '우리 당'이라는 사명감을 갖느 것이다. 민주노총과 전농이 민노당에 적극 참여해 개혁 작업을 해야한다고 본다. 그래도 우리가 희망이자 대안이라고 한다면 민노당 중심으로 뭉쳐야 하지 않겠나. 민노당이 이들을 포용할 수 있는 안을 내놓아야 한다.

프레시안 : 권영길 후보의 선대위원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구체적 활동 계획은?

문경식 : '농선본'이라고 해서 농민 출신 국회의원 두 분과 전여농 등과 함께 11일 대회가 끝나면 선거 체제로 돌입해 농민들이 할 수 있는 선거운동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프레시안 : 대선도 있지만 오늘날의 민노당이 있는데 큰 역할을 한 것이 총선에서의 의석확보였다. 내년 4월에 곧바로 총선이 이어지는데 어떻게 전망하나.

문경식 : 지금 조직이 내년 총선으로 바로 이어지니까 대선이 끝나면 바로 1월에 총선 비례후보 순위결정 투표가 열린다. 그렇게 되면 그 자체로 총선 운동 돌입이 되는 것이다. 민노당은 아무리 지역구에서 인기가 있고 능력이 있어도 낙타가 바늘 구멍 뚫는 것처럼 당선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해서든 선거자금을 많이 모아주려 한다. 해볼만한 싸움도 돈이 없어서 못한 적이 많다. 이미 기존 정당들은 총선 모드로 돌입한 지역도 많다. 강기갑 의원이 의정활동을 위해 서울 근교에 5000만 원짜리 전세 살다가 형편이 어려워 전세를 빼고 짐을 의원회관에 옮겨 놨다고 하더라. 지역구에서의 당선은 인지도도 중요하지만 선거비용이 뒷받침 돼줘야 한다.

프레시안 : 민주노총은 지난 총선에서 노동자 밀집 지역구에서 두 명의 의원을 배출했다. 이번 총선 전망은?

▲ ⓒ프레시안

이석행 :
조금 다르다. 노동자 밀집 지역에서 민노당 후보가 당선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당에 요구했다. 노동자 밀집지역이래봐야 몇 군데 안 되기 때문이다. 대신 정말 중요한 것은 농촌이다. 농촌에도 우리 민주노총 조직이 많이 있다. 전교조, 공무원노조, 사회보험노조, KT노조 등 농촌에도 많은 조합원이 산다. 이런 노조가 군마다 면마다 다 들어가 있다. 그래서 시군 단위의 민중연대, 진보연대 단위를 묶어내는 작업을 하고 거기에 농민회까지 묶으면 금상첨화아니겠는가. 그 작업을 당이 해야 한다. 지금까지 당이 그 역할을 잘 못 했다. 이 작업이 잘 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본다. 도농 복합지역인 광주 광산구에서는 시의원 6명 중 4명이 민노당 아닌가.

프레시안 : 대선 얘기를 좀 하자면, 이명박 후보가 여전히 지지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문경식 : 지난 10년의 책임이 크다. 이명박이 잘 해서가 아니다. 비정규직은 계속 늘고, 서민들은 집값 때문에 계속 시달리는 상황이 계속 반복됐다. 민주화 세력이 집권한 10년 동안 이러헤 됐으니, 한 번 바꿔보자는 생각 가진 사람이 엄청나게 많더라. 민주화 세력들은 이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택시기사들과 얘기해보면 10명 중 8명은 이명박 후보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일단 바꿔보고 잘 안되면 5년 뒤에 또 바꾸면 되는 거 아니냐고 얘기한다.

민노당이나 민주노총 등 진보세력에게도 책임이 있다. 민주노총은 정파간 이해 충돌이 있었고, 당도 정파 다툼에 함몰돼 선거 때마다 후유증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는 누구의 책임이라기 보다 진보진영 전체의 책임이다. 그래서 더욱 돈독한 연대가 필요하다. 투쟁을 통해 희망을 주는 길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이다.

이석행 : 이번 대선에서 내년 총선까지가 향후 민주노총의 운명을 좌우할 결정적 시기라고 본다. 5년 뒤 우리 조합원들 줄어들 것을 생각하면 까마득하다. 농촌만 고령화 위기가 아니다. 사업장 고령화도 심각한 문제다.

프레시안 : 이번 대선과 총선에서의 두 조직의 역할을 기대해보겠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