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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난 아버지 이문식, 사회를 향해 총을 들긴 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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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난 아버지 이문식, 사회를 향해 총을 들긴 했으나...

[뷰포인트] 사회성 강한 드라마, 그러나 어울리지 않는 억지 코미디 코드의 부조화

척 보기에도 느물한 비리형사인 백윤식과 생수통을 맨 김상호, 그리고 특유의 어벙한 표정으로 정면을 향해 웃음짓고 있는 이문식이 있는 포스터에 '어설프게 은행강도로 들어갔는데 뒤이어 또 들어오는 은행강도'라는 설정까지 겹치면, 대충 <자카르타>에 곁다리 구색맞추기로 눈물 찔끔할 얘기를 조금 넣고 대충 썰렁한 웃음으로 버무린 상황 코미디처럼 보인다. 막 <바르게 살자>가 개봉한 직후인지라 '은행 강도'라는 소재는 식상하게도 느껴진다. 그러나 지난 5월에 개봉하려다가 밀리고, 애초 '성난 펭귄'에서 제목을 바꿔달은 <마을금고연쇄습격사건>(이하 '<마을금고...>')의 진짜 정체는, 가난하고 착한 아버지가 하나밖에 없는 어린 딸을 살리기 위해 막다른 끝에서 막다른 선택을 하는 '부정'에 강하게 초점을 맞춘 사회 드라마다. 어설픈 가면을 쓰고 '검은 비닐봉다리'를 들고 마을금고에 간 배기로(이문식)가 은행을 턴 이유는 너무도 명확하다. 일찌감치 아내와 사별하고 어린 딸과 빠듯한 살림을 꾸려가는 가난한 간판쟁이인데, 아이는 3천만 원이 드는 뇌수술을 하루라도 빨리 하지 않으면 목숨이 위태롭다. 병원에선 수술비를 먼저 내지 않으면 수술을 해줄 수 없다고 하고, 사회적 안전망이 취약하기 짝이 없는 대한민국 복지제도가 해줄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고, 그가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곳도 전혀 없다. 마지막 수단으로 신체포기 각서를 쓰고 사채를 빌렸지만 그 돈마저 날치기 당한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합법적인 테두리 내에서는 아무 것도 없다. 미국의 의료보험제를 고발하며 인질극을 벌였던 <존큐>보다는 조금 코미디 코드가 섞였고, 휴머니즘 코드를 '양념'으로 삽입하는 여타의 코미디 영화들보다는 훨씬 더 진지한 문제의식과 감독의 진심이 느껴지는 영화다.
마을금고연쇄습격사건
영화에서 무엇보다도 이문식의 연기는 영화의 모든 단점을 잊고 몰입할 수 있도록 관객을 끌어들인다. 하긴 그렇게 예쁜 딸래미라면 누구나 천사같은 아버지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아이의 소원대로 동물원에 아이를 데려가거나 아이를 목욕시키거나 할 때 아이를 바라보는 이문식의 눈빛과 표정은, 아이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그냥 버릴 수 있을 정도로 그저 애가 너무 예뻐 못 견디겠다는 아버지의 얼굴 그대로다. 다른 은행강도가 마을금고를 덮쳤을 때 공기총 따위는 보이지도 않는다는 듯 (아이의 수술비가 될) 돈에만 집착하거나, 마을금고에서 원치 않게 직원들을 인질로 잡고 아이의 수술을 조건으로 내세우게 됐을 때, 밥도 먹지 않고 바깥을 살피며 이제나 저제나 소식이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경찰에게 속았다고 느꼈을 때 분노를 내지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인질이 된 사람들에게 미안함을 표현하는 이문식의 얼굴은, 배우가 '얼굴' 하나만으로도 이토록이나 다채로운 표정과 스펙터클을 보여줄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상기시켜준다. 카메라 역시 그러한 이문식의 연기에 조응하듯 그의 모습을 웨이스트샷과 바스트샷, 클로즈업으로 가까이서 잡는다. 이미 자신의 삶은 포기한 듯, 아이의 수술만을 염두에 두고 있는 아버지, 언제나 온순하고 착했지만 이 모든 상황에서 '성난' 아버지가 될 수밖에 없는 이문식의 연기를 보는 건 분명 황홀한 경험이다. 그럼에도 <마을금고...>가 아무래도 안타까운 점은, 이문식의 놀랍도록 가슴 저리게 하는 연기와 감독의 진지한 문제의식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많이 헐겁다는 점이다. 너무 진지하게 나가면 관객들이 반응하지 않을 것이라 걱정했는지, 영화는 자연스러운 블랙코미디가 될 수도 있는 지점에서 어색한 코미디 코드를 집어넣어 긴장감을 흐리는 바람에 맥이 빠진다. 게다가 그 코미디 코드는 별로 웃기지도 않고, 영화의 엔딩과 심하게 부조화를 이룬다. 비리를 일삼는 구반장과 범죄에 대한 강경대응을 주장하는 진압반 반장의 대비 속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복지에는 그토록 늑장인 공권력이 은행강도 사건에는 그토록 신속하게 반응하는 것의 대비라던가, 생전 범법과는 담을 쌓고 살았던 이가 막다른 끝에서 선택한 범죄인지라 더욱 어설퍼질 수밖에 없는 점, 그리고 인질로 잡힌 이들이 모두 대규모의 유수 은행이 아닌 지방의 '마을금고' 직원이기에 기로의 사정을 이해하고 오히려 기로를 응원하게 되는 아이러니, 자신의 비리를 감추기 위해 본의 아니게 연희의 수술을 돕게 되는 비리 경찰 구반장의 행보 등은, 조금만 생동감 있게 살렸다면 시니컬한 웃음을 주기에 충분했을 텐데, 아무래도 원치 않은 코미디 코드를 관객을 의식해 억지로 넣은 게 너무 티나 난다. 차라리 웃음기를 싹 거두고 타이트하게 혹은 진지하게 갔다면 훨씬 좋은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싶은 아쉬움이 많이 남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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