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과 발전을 바랄 수 없는 '비정규 공화국'
소모품 취급을 받는 노동자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비정규직 보호법이 2006년 말에 제정되었고, 지난 7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비정규직 노동자는 여전히 보호받지 못하고 있으며, 그 수는 계속 크게 늘어나고 있다. 최근에 발표된 관련 통계에 관한 보도를 보자.
26일 통계청이 발표한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2007년 8월) 결과를 보면, 비정규직 노동자는 570만3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줘 24만6000명(4.5%)이 늘었다. 반면 정규직은 2.9% 증가에 그쳐, 전체 임금 노동자 가운데 비정규직의 비중도 35.5%에서 35.9%로 0.4%포인트 늘었다.
비정규직 가운데 기간제 노동자는 1년 새 19만 명이 줄었지만, 파견 노동자는 13만1000명에서 17만4000명으로, 용역 노동자는 49만9000명에서 59만3000명으로 뚜렷한 증가세를 보였다. 여기에 보험모집인, 골프장 경기보조원 등 '특수형태 근로'가 2.9% 증가했고, 계약기간조차 없는 장기 임시직과 일일근로 노동자의 규모도 각각 12.2%와 15.2%나 늘어나, '더 열악한' 비정규직 노동자가 많아진 것으로 나타났다(<한겨레>, 2007년 10월 26일).
정부의 공식통계에 따르더라도 비정규직 노동자는 1588만6000명에 이르는 전체 노동자의 35.9%인 570만3000명을 차지한다. 4800만 명에 이르는 전체 국민의 12% 정도가 비정규직 노동자로서 가파른 삶을 살고 있다. 그 중에서도 더 열악한 처지에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수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노동운동의 주장에 따르면, 비정규직 노동자는 사실 800만 명을 넘는다고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전체 노동자의 절반을 넘는 것이다.
확실히 우리는 '비정규 공화국'에서 살고 있다. 여기도 비정규직 저기도 비정규직, 도처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있다. 문제는 이들의 대부분이 사실상 소모품 취급을 받는다는 데에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정규직 노동자보다 더 어려운 일을 더 오랫동안 해야 한다. 한국의 정규직 노동자라고 해서 호사를 누리고 사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비정규직 노동자는 정규직에 비해 훨씬 열악한 비정규 인생을 살아야 한다. 임금만 보더라도 비정규직 노동자는 정규직 노동자의 50-60% 정도인 110-120만 원 정도를 받고 있는 실정이다.
언제라도 극한상황으로 내몰릴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에서 안정과 발전을 바란다는 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다. 사회는 사람들의 집합체이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수를 줄이는 것은 물론이고 전체 노동자의 처우를 개선하는 것은 사회의 안정과 발전을 위한 필수적 과제이다. 사회는 재벌이나 부자들의 것이 아니다. 사회가 무너지면 재벌이나 부자들도 존재할 수 없다. 남자와 여자 모두에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사회의 해체라는 관점에서 극히 심각한 문제로 파악되어야 한다.
여전히 한나라당에 필요한 것은? 윤리!
무서운 '비정규 공화국'의 실체가 정부의 공식 통계를 통해 다시금 밝혀지던 것과 같은 날, 한 신문은 일부 국회의원들의 만행을 고발하는 기사를 실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위원장 임인배) 소속 국회의원 6, 7명은 22일 대전에 있는 대덕특구지원본부, 기초기술연구회, 한국천문연구원, 한국한의학연구원, 국가핵융합연구소, 한국과학기술연구원,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등 7개 기관에 대한 국감을 마친 뒤 대전 유성구의 A단란주점에서 피감기관 관계자들에게서 수백만 원어치의 향응을 제공받은 것으로 본보 취재 결과 확인됐다.
특히 룸살롱 방식으로 운영되는 A단란주점에 갔던 국회의원 중 2명은 술자리가 끝난 뒤 여종업원과 함께 '2차'를 나갔다는 주장이 제기됐다(<동아일보>, 2007년 10월 26일).
이 기사는 이른바 '향응 국감' 파동을 불러 일으켰다. 특히 '2차'를 나갔다는 내용이 큰 논란을 빚었다. 만일 이 보도가 사실이었다면, 해당 국회의원 2명은 성매매금지법을 정면으로 위반한 범죄자가 되었을 것이다. 물론 그에 앞서서 해당 국회의원 2명은 그 자질과 품위를 완전히 내팽개친 타락자라는 비판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2차'는 사실이 아니었던 것으로 판명된 것 같다. 그렇다고 해도 문제는 여전히 크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국회의원은 대단히 중요한 존재이다. 사회를 유지하고 운영하는 강제적 규범인 법을 제정하는 직접적 주체가 바로 국회의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나라의 국회의원은 오래 전부터 사실 온갖 비난과 의혹의 대상이었다. 시커먼 색의 커다란 차를 타고 있는 대로 거드름을 피우면서 부패, 향락, 폭력, 사기, 횡령 등 숱한 저질 범죄를 저지르는 개기름 범벅이가 바로 한국 국회의원의 이미지이다.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한나라당은 즉각 대응에 나섰다. 해당 국회의원 2명 중에서 임인배 의원(경북 김천)은 내년 총선에서 공천을 받을 수 없는 징계를 받았고, 김태환 의원(구미 을)은 그보다 훨씬 낮은 '경고'의 징계를 받았다. 과연 이것으로 충분한 것일까? 한나라당이 정말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고 있다면, 결코 이 정도로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다. 2005년 9월의 어느날 밤, 대구에서 일어났던 비슷한 사건을 국민들은 새삼 떠올리고 있다. 문제의 깊이에 비해 한나라당의 조치는 분명히 미온적이다.
한나라당은 윤리강령을 만들었다고 자랑스럽게 선전하고 있지만, 그 배경은 참으로 비윤리적인 사건들이며, 여전히 한나라당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윤리인 것 같다. 이번에 문제가 된 두 명만 보더라도 그렇다. 임인배 의원은 2005년 12월 19일 국회의장실 여성 비서들에게 '뭐하는 년들이야. 싸가지 없는 년들'이라고 욕을 퍼부었고, 김태환 의원은 2004년 9월 12일 골프장에서 술을 마시고 60대 경비원을 폭행했으며, 2007년 6월 1일 술을 마시고 KTX를 타서는 자리를 바꿔달라며 열차문을 발로 차는 등의 행패를 부렸다.
국정감사는 '의정활동의 꽃'이라고 한다. 사실 국정감사는 반독재 민주화의 중대한 성과이다. 박정희가 유신쿠데타와 함께 국정감사를 없앴으며, 전두환 독재가 무너지고서야 국정감사는 부활할 수 있었다. 국정감사는 입법부가 행정부를 감독해서 법을 올바로 집행하도록 하기 위한 핵심적 장치이다. 그런데 오늘날 국정감사는 국회의원이 정략적으로 자기를 과시하거나, 정당이 당리당략을 관철하기 위해 패악질을 해대는 곳으로 악용되고 있다.
문제는 국회의원에게만 있지 않다. 피감기관의 국회의원 접대는 '관행'이라지만 이것은 사실 명백한 '위법'이다. 이번 사건처럼 수백만원 어치의 향응을 제공한 것은 피감기관이 국회의원에게 '뇌물'을 공여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향응 국감은 공공기관이 어떻게 '신의 직장'이 되었는가를 새삼 밝혀준 사건인지도 모른다. 향응 국감과 '신의 직장', 슬픈 비정규 공화국의 엽기적 초상화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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