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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로스쿨 밀어붙이기'를 둘러싼 복잡한 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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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로스쿨 밀어붙이기'를 둘러싼 복잡한 셈들

대학들, 일단 유치하고 보자?…시민단체 "민주주의 실종"

교육인적자원부가 30일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인가기준을 발표하며 사실상 '2009년 로스쿨 총입학정원 2000명'은 기정사실화 됐다. 하지만 '3200명 이상'을 주장하는 학계 및 시민사회단체들의 반발이 계속되고 있고, 인가기준에 대한 논란까지 더해져 한동안 논란은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교육부가 이번에 로스쿨 정원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보인 비민주적인 행태는 비난 받아 마땅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로스쿨 정원은 사회에 배출되는 변호사 수를 결정할 만큼 중대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공청회 등의 여론 수렴 과정을 거의 거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반면, '주사위는 던져졌다'고 판단한 일부 대학들이 작전을 '로스쿨 유치 총력전'으로 선회할 분위기가 감지돼, '로스쿨 증원 전선'에도 혼란이 생기고 있어 정원 논란이 길게 가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 왜곡된 통계 산출 방식 고수

2009년 문을 여는 로스쿨 총입학정원을 2000명으로 유지할 경우 사회 전체의 변호사 수가 증가하는 것은 사실이다. 로스쿨 예상 중도탈락률(5%)과 변호사시험 합격률(80%)을 감안하면 첫 로스쿨 졸업 변호사는 1520명이다. 여기서 판‧검사로 임용되는 인원을 250명(현재 수준)으로 고정하면 한 해 사회로 나오는 변호사는 1270명이다. 분명 현재의 사법시험 1000명 합격보다는 높은 수치다.

하지만 교육부가 스스로 주장하는 "2020년 OECD 평균"에 도달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우리나라의 법률서비스 수요나 변호사 공급구조를 계산하지 않은 단순 '평균'을 목표로 삼은 것도 문제지만, 2000명으로는 그마저도 OECD 평균에 도달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 로스쿨 비대위가 계산한 법조인 1명당 인구수 OECD 평균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로스쿨 정원을 계산한 표.

-좌측 '연수원' 항목은 사법시험 합격자 배출 수를 의미한다. 로스쿨 첫 졸업생이 나오는 2012년 이전에는 합격자 1000명을 유지하다, 2010년 이후에는 점진적으로 줄어드는 것으로 계산했다.

-로스쿨 졸업생의 변호사 시헙 합격률을 75%로 설정해 2700명으로 로스쿨 출신 변호사 수를 계산할 때 최소 3600명 이상의 로스쿨 정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교육부의 산출한 OECD 평균은 '변호사 1인당 인구수'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판검사 인원까지 합쳐서 '법조인 수'로 계산하고 있다. '변호사' 수 계산에 판검사까지 은근슬쩍 끼워 넣은 것이다. 로스쿨 비대위는 "총정원 결정과정은 국가적 망신이며 재앙"이라고 비난했고,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생떼쓰기하는 모습에 서글픔마저 느낀다"고 논평했다.(☞관련 기사: 참여연대 "교육부 로스쿨 정원안, 100% 불량품")

■ 법률서비스 수요 제대로 계산이나 해봤나
▲ 김정기 교육인적자원부 차관보가 30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별관 합동브리핑센터에서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인가 대학을 결정하게 될 심사기준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로스쿨 정원 논란은 우리 사회의 변호사 수 증가와 직결되는 문제였기 때문에 대학들 외에도 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이 관심을 갖던 사안이었다. 이에 대해 변호사 단체는 "사법시험 1000명 합격 이후 변호사 수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시장 변화 분석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고, 교육부도 "너무나 급격한 변화를 일으켜서는 안 된다"는 법조계의 주장을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등은 "단순 변호사 1인당 인구수 비교에서도 우리나라의 변호사 수가 턱없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소송 건수 대비 변호사 수를 보면 OECD 국가에서도 한참 떨어진다"며 분석 결과를 공개하기도 했다. 그러나 교육부는 오로지 '법조인 1인당 인구수'만을 기준으로 삼았으며, 그것도 기계적 평균을 내놓고 '목표'라고 설정하기까지 했다.

이에 대해 로스쿨 비대위 관계자는 "공무원 사회에 만연해 있는 '중간만 가면 된다'는 우리 사회의 악질적인 복지부동 정신이 로스쿨 총정원에도 반영된 것 아니냐"고 비꼬기도 했다.

또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변호사 숫자를 국가에서 통제하는 것 자체가 직업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 위헌적 제도라는 주장도 있으나 논의조차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 서울대-연·고대用 인가기준?

이날 로스쿨 인가 평가 기준이 발표에는 대학가를 술렁이게 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여러 가지 평가 기준 분야 중 '학생 영역'(125점/총점 1000점)의 세부항목으로 '법조인 배출실적'(20점)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체 배점으로 보면 그리 큰 비중은 아니지만, 치열한 경쟁이 벌어질 경우 나머지 항목에서 큰 점수 차이가 나지 않을 때 후천적 노력에 의해 극복할 수 없는 '법조인 배출 실적'으로 로스쿨 유치 여부가 결절될 수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청솔학원이 집계한 바에 따르면 2002~2006년 각 대학 법조인 배출 수를 보면 서울대가 1685명, 고려대가 832명, 연세대가 548명이었고, 성균관대(289명), 한양대(282명), 이화여대(206명) 순이었다.

또 '대학경쟁력'(대학경쟁력 및 사회적 책무성: 48점)을 포함시킨 것도 논란거리다. '경쟁력'을 객관화할 지표를 선정하는 것 자체도 논란거리일 뿐만 아니라, 통상적인 대학 선호도 순으로 점수가 매겨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과거 로스쿨 도입의 토대를 마련했던 대법원 산하 사법개혁위원회에 참여했던 한 인사는 "사실 로스쿨 도입이 '사법개혁' 과제로 추진됐던 이유 중 하나는 법학교육 정상화 외에도 기존 명문대 출신 중심의 법조인 연고주의를 깨고자 했던 것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취지에서 서울대가 로스쿨을 설치 안 한다고 했을 때 환영을 했는데, 서울대도 로스쿨 유치에 뛰어들고, 사시 합격자 배출을 평가기준으로 삼으면 법조계의 '학벌주의'는 깨지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 수도권 대학에 불리해?
▲ 손병두 한국사립대총장협의회 회장(서강대 총장)이 29일 오전 서울 마포 가든호텔에서 교육인적자원부의 법학전문대학원 총정원안과 관련해 긴급회의를 가진 후 회의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시 합격자 배출 경력'이 수도권 대학에 유리한 기준이라면 반대로 '지역 안배'는 지방 대학들에게 유리한 기준이다.

대학들의 '정원 확충'의 강고한 연대 전선에서 가장 먼지 이탈한 경북대, 전남대, 충남대 등 지방 국립대들이 로스쿨 유치 전선에 유리한 전선을 선점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인가기준에는 로스쿨을 '5대 권역'으로 배정하기로 돼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청와대가 "지역 안배"로 대학들을 회유했다고 비판하기도 하지만, '지역 안배'는 사개위에서부터 논의되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논의의 배경을 잘 살펴봐야 한다. "지방에 변호사가 너무 적다"는 비판 때문에 이런 지역 안배 논의가 생긴 것이다.

따라서 지방대 배정 로스쿨 변호사는 일정 기간 동안 지역에서만 변호사 업무를 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직업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논란이 있어 명시화 되지 않았다. 또 '지역 안배'의 효과를 지방 국립대만 누리는 것은 곤란하다는 지적도 있다.

■ 총소리가 나면 일단 뛴다

그동안 로스쿨 정원 논란에서는 총정원 확대를 주장하는 대학들과 변호사 수 확충을 주장하는 시민사회단체들 사이에 공동 연대전선이 형성되며 힘 있는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사회적 법률 서비스 확대'라는 명분과 '법조인들의 직역 이기주의'라는 비난이 어느 정도 먹혀들어간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막상 교육부가 총정원에 "더 이상 조정은 없다"고 선언하고 인가기준까지 발표해버리자 대학들은 일단 "신청서는 작성하고 보자"는 분위기이다. 한 대학 관계자는 "로스쿨 인가 준비는 이번 총정원 논란과 상관없이 수년간 해왔던 것"이라며 "총정원 확대를 위한 사회적 논의는 계속 요구하겠지만, 일단 한 쪽에선 교육부의 인가기준에 맞추어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지난 17일 "입학정원 1500명"이라는 교육부의 발표가 있었을 때 보여줬던 '집단 보이콧' 등의 움직임의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이미 주요 지방 국립대들이 전선에서 이탈한 상태다.

이를 두고 한 시민단체 인사는 "출발선에서 경기 방식을 두고 항의하던 육상 선수들이 출발 총소리가 나자 반사적으로 뛰어나가는 모습을 보는 것 같다"며 "교육부도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밀어 붙인 것 아니겠냐"고 씁쓸해 했다.

■ 로스쿨 논란 어디까지 갈까

교육부는 오는 11월 30일까지 대학들의 로스쿨 신청을 받은 뒤 1월말 '합격 로스쿨'을 발표할 예정이다. 당초 2008년 개교를 목적으로 했으나 국회에서 법안 통과가 늦어지는 바람에 1년이 늦어진 상황에서 정원 논란으로 더 이상 늦출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신속한 의사결정'에 앞서 기본적인 의견수렴 절차조차 거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이해관계가 얽혀 있거나 자기 주장이 확실한 단체들이 연구 보고서나 토론회를 연 적이 있지만, 공신력 있는 중립적 기관에서 공청회를 연 적이 없기 때문이다.

참여연대와 로스쿨 비대위는 "국회 교육위원들이 다시 한 번 교육부의 보고서를 따져보라"고 촉구하는 동시에 "공청회를 개최할 것"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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