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만 원작 만화를 토대로 만들어진 영화 <식객>을 언론 시사회를 통해 봤다. 이 영화, 지상의 온갖 산해진미를 펼쳐놓고 늘어가는 뱃살에 고심하는 관객들을 식욕의 나락 속으로 빠뜨리는, 아주 못된 영화다. <식객>은 웃음보 이전에 침샘을 자극하고, 눈물샘 이전에 위장을 직격한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 영화는 끼니를 직전에 두고 봐야 제 맛이다. 비록 입이 아닌 눈만 호강하는 일이지만, 어쨌든 시장이 반찬이라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고 <식객>이 미식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데 그쳤다고 말하면 감독과 배우 섭할 것이다. 명색이 영화다. 아기자기한 이야기가 흐르고 그 안의 대결 구도에서는 좀더 착하고 정직하며 성실한 녀석이 이긴다. 그러니까 대중 영화이며, 착한 영화이다. 게다가 쉬운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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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이라는 건 시기, 색깔, 연륜, 기대, 냄새, 인생관 기타 등등의 수많은 함수를 직감적으로 풀어낸 결정체" - 성석제 산문집 '소풍' 중에서. (사진은 <식객>) |
허영만 만화에 대한 존경심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감독 전윤수가 영화적으로 재창조한 인물들은 다분히 만화적이다. 성찬(김강우)과 봉주(임원희)의 대결 구도도 전형적이다. 이하나와 김상호, 정은표 등이 연기한 조연들의 배치도 그 범위 안에 놓여 있다. 음식을 매개로 한 두 요리사의 치열한 대립을 보여주고 있는 <식객>은, 여기에서 살짝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친일과 애국이 뒤바뀌어 버린 한국 근현대사의 모순을 배경으로 깔며 친절한 플래시백을 통해 관객의 역사적 정의감을 (다소 노골적으로) 부추기는 것이다(그러다보니 러닝타임이 길어졌다. 그래서 약간 늘어지는 느낌이다). 진정한 맛이란 위에 인용한 책에서 성석제가 갈파했듯, 단순히 혀끝을 자극하는 어떤 것이 아니다. 핵심은, 맛을 만들어내는 사람과 그것을 맛보는 사람과의 교감이며, 잔기술이 아닌 정신이다. <식객>은 그 진정한 맛의 달인을 오해와 편견의 감옥에 가뒀다가 다시 복권시키는 가운데, 관객들이 그에게 감읍할 수 있도록 인간적이고도 역사적인 정당화를 선사한다. 거창한 얘기일지 모르지만, 그러므로 이 영화는 갇힌 시대 정신과 전도된 가치의 부활을 욕망하는 판타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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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객 |
시사회가 끝나니 당연하게도 시장기가 몰려왔다. 그리고 한국에서 8천원 짜리 고급 음식으로 둔갑한 베트남 쌀국수를 먹었다.
그래서? 영화가 볼만하다는 얘기야? 허영만 원작을 영화화한 <타짜>에 비해, 물론 원작의 내용이 달라서이겠지만, 훨씬 더 친절하고 쉽게 풀어낸 영화다. 그러다보니 극의 긴장감은 <타짜>에 미치지 못하고, 음식 만드는 과정을 비추는 장면 외에 대단히 매력적이고 인상적인 장면도 많지 않다. 호기롭게 고급 한정식 집에 들어섰다가 특별할인가의 단출한 정식을 먹은 기분이랄까? (하지만 내 경우, 그럭저럭 맛있게 먹었다.^^간이 너무 많이 들어간 게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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