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양일 감독의 잔혹 하드보일드 <수>가 부산 관객 앞에 섰다. 최양일 감독이 함께였으면 더 좋았겠지만, 오늘 무대 인사에는 주연배우 문성근, 지진희, 강성연이 나왔다. 바로 며칠전 노무현 대통령을 따라 정상회담을 수행하고 돌아온 문성근은, 대기실에서 누군가와 전화통화를 하며 수행 성과를 설명하느라 분주했다. "그쪽에 있는 영화 우리한테 좀 빌려주고, 우리도 그쪽에 없는 영화가 있으면 줄 수 있다고 했어." 슬쩍 "어땠냐"고 했더니 "술에 쩔어서 내려왔다"고 농담을 한다. 그렇다면 부산에 더 있는 게 여독과 술독을 푸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할 터. 연극에도 출연 중이라 무대 인사가 끝나고 곧바로 서울로 가야 할 정도로, 여전히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공사가 다망하니 흰머리도 제법 늘었다.
지진희는 내가 미리 "질문 내용을 알려드릴까요?" 하자 손사래를 친다. "미리 알면 잼 없잖아요." 그다운 태도다. 실제로 그는 그 수더분하고 잘생긴 인상에 걸맞게 성격도 호탕했다. CF에서 구축된 반듯한 이미지가 오히려 핸디캡이 될 수도 있을 터. 그래서 더 그다지 '정상적이지 않은' 영화만 찍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부터 <오래된 정원><수> 등 하나 같이 녹록치 않은 작품들에 녹록치 않은 캐릭터였다. 그의 표현을 빌면, 이미지를 배신하려는 도전이다. <왕의 남자> 이후 예상과 다른 영화 행보를 보이고 있는 강성연은, 야무진 말투와 인상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처절한 폭력신으로 점철된 이번 영화 <수>에서 몸 고생이 많은지라 촬영 끝내고 안 아픈 곳이 없더라는 후일담을 전해줬다. 그 역시 도전이라는 단어를 썼다. 내가 보기에 그가 최양일 감독의 영화에 출연하기로 한 건, 산행 초보자가 에베레스트에 도전한 것이나 다름 없어 보인다. 하지만 썩 잘해냈다.
흥행 라운드를 끝낸 영화의 재조명, 영화제에서나 나눌 수 있는 복기가 이어졌다. 야외무대도 이렇게만 진행되면 참 알차진다. <수>의 세 배우처럼 생각 많고 말 잘하는 영화인들이라면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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