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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字가 싫어!'…6월 14일에 합의된 '6.15공동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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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字가 싫어!'…6월 14일에 합의된 '6.15공동선언'

[정상회담] 이번에는 '10.3선언'될까, '10.4선언'될까?

남북정상회담이 이틀째로 접어들면서 양 정상이 어떤 구체적인 합의문을 만들어낼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지난 2000년 정상회담은 분단 이후 최초로 남북 정상이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감동을 줬지만, 5개항으로 이뤄진 6.15공동선언이라는 성과물이 그 역사적 의미를 한층 더해줬었다.

이번 정상회담은 두 번째일 뿐 아니라 7년이라는 시간이 있었던 만큼 6.15공동선언보다 경제와 평화 측면에서 한층 발전된 형태의 합의문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높다.

3일 오전 한 차례 이뤄지고 오후 이어지는 두 정상의 만남에 시선이 집중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6.15공동선언에 버금가는 새로운 남북의 약속이 나올 수 있을까? 지난 2000년에는 회담 이틀째인 6월 14일에 합의문을 발표했는데 이번에는 언제가 될까?

김정일 "돌아갈 때 개선장군 되시려고?"

지난 2000년 당시 막판 걸림돌은 서명주체였다. 김대중 대통령은 "당신과 내가 서명하자"고 했지만 김정일 위원장이 난색을 표했다. "우리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국가 수반이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은 "김영남 위원장과 김 대통령이 서명하는 것이 좋겠다"는 김정일 위원장의 제안에 "그건 안 된다"고 반대했다.

그러자 김 위원장은 "그러면 상부의 명을 받들어 김용순 아태평화 위원장과 임동원 특보가 하는 것으로 하자"고 말했다. 이에 남측에서는 "두 정상이 직접 만났는데 다른 사람에게 서명하라고 하면 되겠냐"고 거듭 반대하자 김 위원장이 결국 고집을 꺾었다.

남은 것은 서명 시점이었다. 김 위원장은 "문안 준비도 해야 하니 내일 하자"고 했다. 하지만 김 대통령은 "그건 안 된다"고 나왔다. "내일 서명하면 한국에는 다음날 아침(16일)에 조간 신문이 나오기 때문에 우리가 한국에 도착한 다음에 합의 사항이 보도된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에 김 위원장은 "대통령께서 돌아가실 때 개선 장군이 되시고 싶다는 뜻이군요?"라고 물었고 김 대통령은 "당신이 나 개선 장군 만들어 줘서 나쁠 게 뭐 있소"라고 답했다.

이렇게해서 6월 14일 밤 역사적인 공동선언이 탄생하게 됐다.

2000년엔 3시간 50분, 2007년에는 얼마나?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이 탄생하기까지는 14일 하루 3시간 50분에 걸친 마라톤회담이 있었다. 한 차례 휴식 시간을 제외하고는 오로지 회담 뿐이었다.

본격적인 정상회담 전에도 김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13일 평양 순안공항에서부터 백화원 영빈관까지 같은 차를 타고 가며 대화를 나눴고, 같은 날 오전 11시 45분부터 27분 간 환담을 나눴다. 첫날에만 1시간 34분의 만남이었다.
▲ 3일 오전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진행된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상회담 모습. ⓒ청와대 사진기자단

그와 달리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양 정상의 '만남 다운 만남'은 둘째 날인 3일 오전 처음으로 이뤄졌다. 오전 회담 시간은 총 2시간 11분이었다. 이날 오후 속개된 두 번째 정상회담에 이어 저녁으로 예정된 노 대통령의 아리랑 공연 관람장인 능라도 5.1경기장과 노 대통령이 주최하는 북측 인사에 대한 답례만찬에 김 위원장이 참석할지도 아직까지 공개되지 않았다.

6.15공동선언은 두 정상의 합의 이후에도 목란관에서 만찬이 진행 중인 가운데 실무진 선에서 문구 조율이 긴박하게 이뤄졌다.

이번에도 오후에 열리는 공식 정상회담 이후 아리랑 관람과 저녁 만찬 시간에 문구 조율이 이뤄지고 공식 발표는 이날 밤 늦게나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일각에서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협의할 게 많고, 북측이 통일 문제를 적극 제기할 경우 얘기가 길어져 합의문 발표가 4일로 미뤄질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6.14공동선언이 아닌 6.15공동선언 된 까닭은?

2000년 김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6월 14일 밤 11시 30분에 선언문에 친필로 서명을 했다.

양 정상의 서명이 끝나자마자 그 내용이 평양 프레스센터에 전해졌고 이는 바로 국내 언론을 비롯한 외신들에 의해 전세계로 긴급 타전됐다.

그런데 왜 그 역사적 합의의 이름이 6.14가 아닌 '6.15'공동선언이 됐을까?

이는 북측이 4자의 어감 등을 이유로 14일을 피해 15일을 고집했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이번 정상회담도 마지막 날은 숫자 4가 들어가는 10월 4일이다. 때문에 회담 둘째 날인 3일 어떤 형태로든 그 결과물이 나오지 않겠냐는 관측이 많다.

그러나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에도 4자가 들어가지 않았냐는 반론도 있다. 따라서 합의문 도출이 4일로 넘어갈 경우 어떤 이름이 붙여질지 흥미로운 볼거리 가운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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