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8부(재판장 권택수 부장판사)는 21일 고 우홍선 씨 유족 등 인혁당 재건위 희생자 유가족 46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국가는 희생자별로 27억~33억 원씩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시국사건 국가 배상액으론 사상 최대
재판부는 "국가는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해 국민 개개인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할 임무가 있는데도 오히려 국가권력을 이용해 사회 불순세력으로 몰아 소중한 생명을 빼앗음으로써 희생자 8명 및 그 가족들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엄청난 고통을 줬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중정 수사관들이 희생자들을 체포·구속할 당시 적법절차를 지키지 않았고, 고문 등 가혹행위를 통해 허위자백을 받는 등 증거를 조작했으며, 증거부족에도 불구하고 사형을 확정했다"며 나아가 "바로 다음날 형을 집행해 재심을 통한 구명기회조차 원천봉쇄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유가족의 고통에 대해서도 "지난 30여년 간 유족들이 사회적 냉대와 신분상 불이익, 이에 따른 경제적 궁핍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한 것을 알 수 있다"며 "피해자 본인에게는 각 10억 원, 처나 부모에게는 6억 원, 자녀들에게는 각 4억 원 등으로 위자료를 정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또 '국가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권 시효가 소멸됐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유족들이 과거의 판단이 오판이었음을 인정받기 전에는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을 구하는 소송을 내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소멸시효를 주장해 불법행위에 대한 책임을 면하려고 하는 것은 구차하다"며 '소멸 시효' 주장을 일축했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은 재심을 통해 올해 초에야 무죄가 선고됐는데, 그 전까지는 사실상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어, 청구권 시효가 정지돼 있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는 판단이다.
만약 피고인 정부가 항소를 하지 않아 이번 판결이 확정되면 유족을 제외한 본인에 대한 배상금 10억 원과 총 배상액 245억 원은 시국 사건과 관련한 국가 배상액 중 최고액으로 기록되게 된다. 당초 유족 측은 340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었는데, 항소를 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정부 측에서는 항소 여부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들, "반인권적 국가범죄에 대해선 시효 배제해야"
한편 유족들은 이번 재판부의 배상 판결에 환영의 뜻을 나타내면서도 국가(정부)가 민사상의 소멸시효를 주장하며, 재판을 길게 끌어가려고 했던 것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비판했다.
유족들은 "지난 1월 재심 무죄 선고에 이어 배상 판결로 인혁당 재건위 사건과 민청학련 사건에 대한 사법적 명예회복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오늘의 판결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유족들은 그러나 "국가가 재심 무죄판결 이후 '민사상의 소멸시효'를 주장했던 것은 참으로 부끄럽고 안타까운 일"이라며 "배상하지 않겠다고 억지를 쓸 것이 아니라, 정부가 먼저 유족들을 위로하고, 그 눈물을 닦아주는 일에 앞장섰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유족들은 이어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반인권적국가범죄대한 시효배제특별법'을 오는 9월 정기국회에서 반드시 통과시켜, 인력과 시간을 낭비하는 이와 같은 일들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유족 단체 성명서 전문 보기:
박정희 유신정권에 의한 사법살인 '이른바 인혁당 재건위 사건' 8인 열사,국가배상판결을 환영한다 !
사건 경과 1974. 4. 3 민청학련 시위관련 박정희 특별담화 발표 후, '긴급조치 4호' 선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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