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당신은 지금 함께 아파하고 있습니까?"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당신은 지금 함께 아파하고 있습니까?"

[화제의 책] 하종강의 <길에서 만난 사람들>

한 사람의 삶을 몇 페이지 안에 다 담을 수 있을까? 더욱이 "많은 사람들이 올라섰다가 내려선 길에 아직도 서 있는 사람"이라면 어떨까?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 소장이 그런 작업을 했다. "일찍이 그 길에서 내려선" 그가 "아직도 그 길 위에 있는 사람들"을 만난 것은 "그렇게 길 위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에게 물 한 잔 떠다 주는 일이라도 성의껏 하며 살자"는 다짐을 지키기 위해서다. 그래서 "최소한 '길을 막는 사람'이 되지는 말자"고 했다.

<한겨레 21>에서 2년 8개월 동안 썼던 연재물이 책으로 묶여 나왔다. '하종강이 만난 진짜 노동자' <길에서 만난 사람들>(후마니타스 펴냄)이 그것이다. 최근 자신의 삶의 기록을 묶은 책 <철들지 않는다는 것>(철수와 영희 펴냄)이 나온 지 불과 석달도 되지 않았다. (☞관련 기사 : "정태인은 청중을 웃기고, 하종강은 울린다")
▲ ⓒ프레시안

이번에는 자신의 삶이 아닌, 다른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매주 그가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한결같은 공통점들을 찾을 수 있다. 그 공통점, 즉 하종강이 사람을 선택한 기준에 대해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 행복을 위해 자신의 손해를 감수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 우리 사회의 모순된 억압 구조를 더욱 공고히 하는데 기여하지 않는 사람, 운동권 안에서조차 중심에 우뚝 서 있지 않은 사람, 투쟁 대열의 끄트머리 쯤에 겨우 참여했다가 전투경찰에 쫓겨 골목에 숨어 두려워 떨던 사람,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고 화려한 조명을 받을 일도 없지만 진정한 우리 사회의 주역인 사람…."

한 마디로 누구나 한번쯤은 올라섰던 길 위에서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않았지만 누구나 그 길에서 내려오는 시대에도 꿋꿋하게 길 위에 있는 사람들의 얘기다.



길 위에 있던 사람들

그가 만난 사람들의 첫 번째 공통점은 "피눈물 나는 일들을 도저히 글로 설명할 자신이 없는" 한 때를 살았던 사람들이다.

기억에도 생생한 동일방직 여공들의 나체 시위와 똥물 사건의 주역 안순애 씨, 구미유학생간첩단 사건 최후의 1인인 강용주 씨, 1978년 일당 1400원 짜리로 '위장취업'했던 인천 5공단의 한 회사에서 프레스에 손가락을 네 개나 잘린 강남규 씨, 철도노조의 민주화를 요구하고 회사의 부당 징계에 항의하기 위해 2000년 여름 용산역 철탑 위에 올라가 40일을 버티고 내려왔던 이종선 씨와 같은 사람들이다.

그들의 그 한 때는 여전히 현재의 삶을 규정하고 있다. 어린 시절 어머니를 도와 기와를 나드라 축구하는 친구들을 한참 서서 구경하던, '사장님'이 꿈이었던 공무원 김정수 씨는 공무원 노조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파면됐다.

"지면 아깝게, 왜 저 같은 놈을 만나기로 하셨습니까?"

그가 만난 사람들의 두 번째 공통점은 한결같이 "도대체 왜 나를 인터뷰하려고?"라고 의아해했다는 것이다.

원풍모방 노조 부지부장, 민주노총 지도위원 등 보통 사람으로는 엄두가 나지 않는 삶을 산 박순희 씨는 "이렇게 사나 저렇게 사나 다 사람이 사는 일인데 힘들고 쉽고가 어디 있나. 그저 내가 즐겁고 좋은 일을 해 왔을 뿐"이라고 말했다. 하종강은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그랬다"고 했다.

"자신을 가리켜 '자랑스럽고 훌륭한 삶을 살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들 '그냥 살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아무 특별한 것도 없다'라고 말한다."

1988년 전남대학교 총학생회장을 지냈고, 전남지역대학생대표자협의회(남대협) 의장을 맡기도 했던, '당시 그 의미가 실로 막강했던' 자리에 있던 최완욱 씨도 "수많은 대중 활동가들 중에서 '총학생회장'이라는 역할을 맡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며 '쓰임새론'을 폈다.

인터뷰 당시 민주노총 서울본부 조직부장이었고 현재는 서울본부 미조직비정규사업국장인 한혁 씨는 마지막으로 할 말을 묻자 "지면 아깝게, 왜 저 같은 놈을 만나기로 하셨습니까?"라고 묻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감히 말하건대', 그 사람이 당시 그 곳에서 활동하지 않았다면 없었을 일을 만들어낸 사람들"이었다. 하종강은 뭇 사람들에게 "겸손이라는 단어는 바로 이럴 때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왜 이렇게 한결같이 어린 시절이 불우한가"

세 번째 공통점은 '불우한 어린시절'이다. 그는 사람들을 만나면 우선 어린 시절 부터 물었다. 글로 다 전하지 못한 그 막막한 얘기들을 들으며 하종강은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왜 이렇게 한결같이 어린 시절이 불우한가. 도대체 왜…'하는 생각으로 가슴이 시려왔다"고 했다.

서울 봉천동 씩씩이 어린이집에서 일하는 박인해 씨는 "<전태일 평전>을 읽다가 '나는 이게 내 생활이었다'고 말했다"고 했고, KT에서 벌어진 직원들을 상대로 한 불법적 상품판매를 세상에 알렸다가 해고된 조태욱 씨도 "등록금을 내지 못한 학생들은 교감 선생님이 운동장에 집합시켜서 벌도 세우고 아이들마다 개별적으로 '너는 언제가지 낼 수 있냐'고 묻는" 일을 당한 "가난했던 기억밖에 없다"고 했다.

그들은 아직도 길 위에 있다

마지막 공통점은 그들은 모두 아직도 길 위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청계피복 노동조합 역사에 관한 자료들을 뒤지다 보면 유난히 자주 보이는 이름" 신순애 씨는 소년원에 있는 아이들을 상대로 성교육을 하는 강사다. 지금은 많은 이들이 "한국노동운동의 커다란 획을 그었다"고 평가하는 동일방직 사건을 세상에 알리고자 몸부림쳤던, '1978년 부활절 여의도 새벽 예배 사건'의 김지선 씨도 "사회주의에서는 여성차별이 없을 것 같아?"라며 여성운동에 한창이다.

장기수들의 누이동생 역할을 하다 한국 전쟁 당시 양민 학살 사건 조사 활동에 참여하고 있던 박영란 씨도 "내가 살았던 이 더러운 세상을 내 자식 세대에게 물려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신발 끈을 야물게 고쳐 매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에게 자신의 삶의 상처들을 되짚어 쏟아낸 사람들은 마음의 몸살을 앓았다고 했다. "오랜 세월 동안 남에게 하지 않았던 어릴 적 이야기를 털어놓은 어떤 사람은 그 뒤 며칠 동안 신열이 올라 끙끙 앓았다 했고, 가슴 속에 담아 두었던 이야기를 모두 끄집어냈던 어떤 사람은 반대로 마음이 감쪽같이 평온해져 마치 무덤 속에 들어앉은 것 같다고 했다."

하종강은 그들을 만나고 난 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아픔에 동참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일이었다"고 회고했다. 이어 그는 "함께 아파하는 것, 우선 그것만이라도 제대로 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그의 책은 이렇게 묻는다. "당신은 평범한 이웃의, 그러나 동시에 평범하지 않은 그들의 삶에 제대로 아파하고 있습니까?"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