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정 의원이 달걀을 맞았으니 개인적으로 통쾌함을 느끼면서 달걀세례는 분명히 그간의 냉전적인 행보와 관련해 진보적인 민중단체, 특히 통일관련 단체로부터 받은 것이라고 지레 짐작했다.
그러나 사진 설명을 읽어보자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정 의원이 주도해서 만든 '한반도 평화비전'이라는 한나라당의 새로운 대북정책을 설명하러 재향군인회를 찾았다가 "배신자"라며 냉전적 보수세력의 달걀세례를 받은 것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정형근 의원이 냉전적 보수세력로부터 "빨갱이가 다 됐다"며 달걀세례를 받다니, 이 얼마나 기가 막한 해프닝인가?
평화코드가 시대정신이던 시대는 지나
그러나 이번 사건은 단순한 해프닝 이상의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는 그동안 한나라당이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제기해온 색깔론과 시비에도 불구하고 햇볕정책은 시대적 대세이며 한나라당도 큰 틀에서는 기본적으로 그 같은 정책노선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실 이는 필자가 여러 지면에서 이미 지적해 온 것이 현실화된 것이다. 필자뿐아니라 김대중 전 대통령도 "한나라당이 집권하더라도 햇볕정책을 계승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발언 등을 통해 비슷한 주장을 해 왔다.
물론 일부에서는 이 같은 한나라당의 변신이 진정한 정책적 변화가 아니라 대선용 포장에 불과하다고 그 의미를 과소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설사 그것이 맞다 하더라도 한나라당조차 대선을 의식해서 이같이 포장을 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바로 햇볕정책의 기조가 시대적 대세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관련, 중요한 문제가 남아 있다. 그것은 정 의원에게 달걀을 던진 재향군인회 회원들 못지않게 열린우리당과 범여권으로 대변되는 자유주의세력 내지 개혁세력, 정확히 표현해 '개혁적 보수세력'(일반적 용법과 달리 민주노동당 등이 '진보'세력이고 신자유주의 지지 등이 보여주듯이 범여권은 '진보'도 아니고 한나라당식의 '냉전적 보수'세력도 아닌 '개혁적 보수'세력인데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손호철, <해방 60년의 한국정치>, 365-367쪽을 참조할 것)이 이 같은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헛다리를 짚고 있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범여권의 대권주자들, 나아가 이들을 지지하는 개혁(적 보수)세력 중 상당수는 아직도 '평화'라는 코드, 내지 '수구 대 개혁'이라는 코드로 오는 대선에서 한나라당과 차별화를 하고 민심을 끌어 올 생각을 하고 있다.
그 중 한 예가 천정배 의원의 '짝뚱 한나라당'이라는 비판이 보여주듯이 과연 범여권후보로 보아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범여권에 위장취업한 한나라당 후보인지 헷갈리기는 하지만 지지도에선 비(非)한나라당 후보 중 선두를 달리고 있는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이다. 그는 그동안 자신이 몸담아 추진해온 한나라당의 냉전적 노선을 비판하며 '선진평화포럼'이라는 조직을 조직하고 나섬으로써 '평화'라는 코드로 한나라당과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위장취업자'인 손 전 지사와 달리 범여권의 적자 중 선두를 달리고 있는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도 마찬가지다. 그는 개성공단에서 대규모 대선 출정식을 갖는 등 손 전 지사 이상으로 평화와 통일문제를 핵심 대선 전략으로 삼고 있다. 이처럼 범여권은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남북관계가 파탄 나 전쟁이 올 것처럼 겁을 줘 국민에게 전쟁이냐 평화냐 중 하나를 택하라고 윽박지르려 하고 있다.
물론 지난 2002년 대선의 경우 미선, 효순 여중생 사건 등과 관련해 민족문제, 그리고 '냉전 대 탈냉전'의 문제가 대선의 핵심적인 쟁점으로 부상했다. 그리고 촛불시위 등이 보여주듯이 탈냉전이라는 시대정신이 노무현의 승리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그러나 지금은 평화라는 코드가 대선의 핵심적인 시대정신과 코드가 될 수 있는 정세가 결코 아니다.
부시 미 대통령의 정신분열적인 강경노선과 북한의 핵실험 사태가 정면충돌했던 때라면 그것이 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 같은 정세는 이미 지나갔다. 물론 갑자기 돌발적 사태가 벌어져 한반도가 다시 전쟁 상황으로 변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나아가 북한이 한나라당의 집권을 저지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대선국면에서 한반도를 긴장으로 몰고 갈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정세의 변화, 나아가 부시정부와 한나라당의 대북정책 노선의 변화가 보여주듯이 이제 전쟁이냐 평화냐는 담론이 결정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국면이 결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여권과 개혁적 자유주의 세력은 시대정신이 어디에 있으며 국민들의 정치적 성감대가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 헛다리를 짚고 이번에도 냉전적 수구세력 대 개혁적 평화세력이라는 담론으로 대선을 이끌어가려 하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올 대선의 '진짜 의제'를 직시해야
"멍청하긴, 문제는 (전쟁이 아니라) 경제야(It's the economy, stupid)." 현재 진행 중인 '아들 부시'(조지 W. 부시)의 이라크 전쟁이 아니라 '아버지 부시'(조지 부시)가 이라크전(걸프전)에서 놀라운 승전보를 올려 재선이 당연시되던 1992년 대선에서 무명의 아칸소 주지사 빌 클린턴 민주당 후보가 들고 나온 선거구호였다(아버지에 이어 아들까지, 아니 아들은 한 술 더 떠 전쟁게임에 몰두하니 '조지'고 '부시'는 이름이 문제인가?) 미국이 안고 있는 진짜 문제는 걸프전이라는 전쟁이 아니라 경제라는 주장이었다. 그리고 이는 당시의 미국 국민들의 마음을 정확히 읽은 것으로, 예상을 깨고 클린턴에게 승리를 가져다 줬다.
마찬가지로 2007년 대선에서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을 진짜 의제와 시대정신은 평화냐 전쟁이냐는 담론이 아니다. 오히려 경제만의 문제라는 식으로 잘못 정의되고 있는 사회적 양극화 등 생존권의 문제, 즉 시장만능의 신자유주의의 문제이다. 다시 말해, 경제문제이되 한나라당이나 재계가 주장하듯이 현재의 문제를 저성장의 문제로 보고 추가성장을 해법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따른 양극화의 문제로 보는 것이다.
20대와 대학생들은 절대다수가 탈냉전적 인식을 갖고 있고 바로 그 같은 이유 때문에 지난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에 몰표를 던졌다. 그러나 그들까지도 청년실업과 아파트값 폭등에 따른 내 집 마련 꿈의 실종과 관련해 지금은 40% 이상이 한나라당을 지지하고 있다. 나아가 최근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고 있는 이랜드 사태가 보여주듯이 비정규직의 문제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이다. 이 모두는 올 대선의 진짜 의제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시대의 성감대를 잘못 읽고 헛다리를 짚고 있는 범여권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그것은 바로 15년 전 클린턴민주당 후보가 아버지 부시에게 던졌던 비판이다. "멍청하긴, 문제는 (전쟁이냐 평화냐가 아니라) 경제(즉 신자유주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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