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최근 치러진 서울시 7,9급 공무원 시험에는 9만 명이 넘는 수험생이 몰렸다. 당시 경쟁률은 53대 1에 달했고, 전국에서 모인 응시생들로 서울역과 고속버스터미널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공무원을 꿈꾸는 젊은이들…"도전정신 없다"는 어른들
이처럼 젊은이들이 교사, 공무원, 공기업 직원 등 고용 안정이 보장된 직종이나 변호사, 의사 등 자영업이 가능한 직업으로 쏠리는 현상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을 지켜보는 언론, 그리고 기성세대의 시각은 대체로 싸늘하다. 특히 과거 고도성장기에 젊은 시절을 보냈던 이들은 "요즘 젊은이들은 도전정신이 없어. 너무 안정만 추구해"라며 혀를 차곤 한다.
이런 불만은 일견 타당하다. 이런 '안정 중시'의 세태는 문화예술 창작, 인문학 및 과학기술 연구 등 높은 창의성과 지적 능력이 필요하지만, 안정적인 생활을 무조건 보장해주지는 않는 분야로 진출하는 젊은이들이 줄어드는 결과를 낳았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한국 경제의 성장을 위해서나, 문화의 성숙을 위해서나 바람직하지 않다.
보수 언론과 정치인들이 "잃어버린 기업가 정신을 살리자"라고 주장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다들 '안정'만 추구하다보니, '창조적 파괴'와 '혁신'을 추구하는 기업가 정신이 위축되고 있다는 뜻이다.
'평생 직장' 믿었던 '회사 인간'의 퇴출을 이미 봤는데….
그런데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인 기업가 정신이 흐려진 게 정말 청년들을 '공시족'으로 몰아가는 이유의 전부일까. 물론 아니다. 가장 흔히 제기되는 해석은 "1997년 IMF 구제금융 사태 당시의 경험 때문"이라는 것이다.
당시 10대 청소년이었던 현재의 20대 젊은이들이 멀쩡하게 다니던 직장에서 쫒겨나는 부모를 보며, "안정이 최고"라는 생각을 품게 됐다는 해석이다.
일본식 연공서열 문화와 평생직장 개념이 당연한 것으로 통하던 당시 한국 사회에서 갑작스레 들이닥친 구조조정의 충격은 컸다.
한국 경제의 고도성장을 가능하게 했던 '회사 인간'들이 대거 거리로 내몰렸다. 따로 자기계발에 힘을 쏟아 '몸값'을 높이기보다, 회사에서 인정받는 데 주력했던 그들이었다.
구조조정의 칼날 앞에서는 긴 가방끈도 소용없었다. 대덕 연구단지의 과학자부터 공고만 나와 평생 용접봉만 잡았던 기능공까지, 고액 연봉을 받았던 증권사의 애널리스트부터 말단 은행원까지 퇴출의 칼날은 비켜가는 법이 없었다.
어차피 소모품인데, 누가 '기업의 미래' 걱정하겠나
청소년 시절 이런 경험을 한 이들이 성년이 됐을 때 '혁신'보다는 '안정'을 더 선호하게 되리라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연구 인력의 태부족, 해외 인재들의 국내 기피"(20일자 <조선일보> 칼럼 "삼성의 진짜 고민, '먹고 살 게 없다'")를 한탄하는 것은 부질없다.
경제 위기가 닥치자, 기업의 경영진이나 대주주, 혹은 이들을 지원했던 정부 관료보다 직장 업무에 인생을 걸었던 '회사 인간'들이 제일 먼저 희생되는 것을 지켜봤던 세대가 "먹고 살 게 없다"는 '삼성의 진짜 고민' 따위에 공감할 리 만무하다.
그리고 "언제든 쓰다 버릴 수 있는 소모품 취급당하는 회사원보다 공무원이나 전문직 자영업이 최고"라는 생각을 갖는 게 당연하다.
"경쟁력 있으니, 나는 괜찮다?"…"글쎄"
이런 상황에서 20일 오전, 정부는 "월급 80만 원도 좋으니 계속 일만 할 수 있게 해 달라"며 버티던 이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물리력을 동원해 강제로 내쫒았다.
10년 전, 자신의 아버지 혹은 삼촌이 평생직장이라 믿었던 일터에서 갑자기 쫒겨나는 것을 지켜봤던 젊은이들은 이날 어머니 혹은 이모뻘되는 이랜드 매장 계산원들이 흘리는 눈물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그분들은 나이도 많고, 또 많이 배우지도 못 했을 거야. 나는 영어도 잘 하고, 대학도 나왔으니 괜찮아"라고 생각할까.
그럴 리 없다. 10년 전, 구조조정의 칼날을 휘두르는 경영자 앞에서는 외국 유명 대학에서 학위를 받은 박사급 연구원이건, 고졸 기능공이건 똑같은 '소모품'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생생히 깨달았던 그들이다.
"결론은 공무원이다"라고 외치는 젊은이들
오히려 "회사원으로 살아가는 것은 점점 힘들어지겠구나. 지금이라도 '공시족'에 뛰어 들어야겠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더 흔하다. 실제로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온라인 게시판에서 형성된 여론도 이렇다. "그래 결론은 공무원이야"라는 것.
이미 청년의 절반을 차지한 '공시족'은 이제 더 늘어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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