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연정'과 '대통합'. 주목할 차이가 두 가지 있다. 대연정은 한나라당을 향한 '평화' 공세요, 대통합은 '전쟁' 선포다. 평화공세는 무안으로 끝났지만 전쟁선포는 치욕으로 끝날 수도 있다. 이 점이 중요한 차이다.
보다 중요한 차이가 있다. '대연정'이 노무현 대통령의 작품이라면 '대통합'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총지휘를 맡았다는 점이다. 놓쳐선 안 될 점은 누가 주역이냐가 아니라 이 과정에서 두 사람의 갈등이 얼마나 해묵은 것인지를 새삼 확인한 것이다. 대연정은 김대중 전 대통령을 경악시켰고, 대통합은 노무현 대통령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세계관(?)이 다른 두 지도자가 통 크게 전면적으로 손을 잡지 않는 한 대통합도 대연정과 마찬가지로 명분과 동력, 지도력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 곳에 감동이 있을 리 없다. 그러면 결과는 뻔하다. 비전과 원칙이 없는 대통합은 대연정이 그랬던 것처럼 서로에 대한 불신만 키운 뒤 맥없이 주저앉을 공산이 크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격인 범여권 지리멸렬의 배후에는 두 사람의 역사적 갈등이 자리 잡고 있다는 얘기다. 협력 중에 갈등하고 갈등 중에 협력했던 두 지도자의 행보가 주목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DJ-盧 애증의 역사 여기서 잠깐 두 지도자의 역사적 관계를 돌아보자. 노무현 대통령은 88년 13대 총선에서 YS가 이끌던 통일민주당의 공천을 받아 부산 동구에서 민정당의 허삼수를 꺾고 당선된다. 그 뒤 노무현은 YS가 90년 3당 합당을 결행하자 '야합'이라고 비난하며 합류하지 않다가 92년 총선을 앞두고 김대중과 이기택이 합당을 하자 자연스럽게 민주당에서 DJ와 한 배를 탔다. 92년 14대 총선에서 민주당의 노무현은 같은 지역구에서 민자당의 허삼수에게 패배한다. 생각해보면 이 패배가 DJ의 책임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88년 총선에서 민정당 후보였던 허삼수가 92년에는 훨씬 강력한 정당인 민자당으로 출마한 것은 노무현에겐 불운이었다. 88년 초 총선을 코앞에 두고 선거구제가 한 선거구에서 한 명을 뽑는 소선거구제로 변경됐기 때문이다. 92년 대선에서 DJ의 당선을 위해 동분서주했던 노무현은 DJ가 대선 패배 후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영국으로 간 후 이기택이 이끌던 민주당의 공천으로 95년 부산시장 선거에 출마한다. 민자당의 문정수에 맞서 선전하던 노무현은 그러나 불행하게도 '지역등권론'의 유탄을 맞는다. 지역등권론은 DJP의 지역연합을 위한 논리였다. 때문에 민자당의 아성인 부산은 순식간에 문정수 지지로 돌아섰다. DJ에 대한 노무현의 분노는 아마도 이 때 부터였을 것이다. 노무현을 더욱 화나게 한 것은 지방선거 승리의 여세를 몰아 DJ가 민주당을 깨고 95년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한 사건이었다. 노무현은 분노했다. DJ의 정계복귀와 창당은 명분이 적었다. 이로 인해 김원기를 비롯한 호남 인사들도 신당에 참여하지 않았다. 야당의 분열로 96년 총선에서 민주당은 참패했고 노무현 본인도 종로에서 이명박, 이종찬에 이어 3위로 낙선한다. 이 총선에서 노무현은 자신의 낙선뿐만 아니라 자신과 정치적 운명을 같이하는 이른바 '통추' 맴버들이 거의 다 떨어진 사실이 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7년 대선을 앞두고 이기택, 조순, 이부영, 제정구, 박계동 등이 한나라당의 전신인 신한국당으로 갈 때, 노무현은 부산의 김정길과 더불어 DJ의 국민회의로 갔다. 그는 이것을 일종의 '투항'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깊은 내상을 입은 것이다. 그를 더욱 힘들게 했던 건 90년 3당 합당을 그렇게도 비판했음에도 97년 대선을 앞두고 DJ와 JP의 연합을 속절없이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DJ에 대한 노무현의 불신이 더욱 깊어진 것은 아마도 신한국당 대선 경선 불복 후 국민신당으로 대선에 출마했던 이인제를 국민회의가 영입한 사건일 것이다. 이처럼 DJ와 노무현은 대선에선 늘 협력했고, 특히 노무현은 김대중 정부에서 장관을 지낸 뒤 수시로 DJ에 대한 존경심을 표하긴 했다. 그러나 DJ와 연관된 노무현의 정치적 역정을 면밀히 살펴보면 DJ에 대한 복잡한 그의 심정의 실마리가 풀린다. 이러한 과거가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을 앞두고 논의되고 있는 대통합의 방향을 예측하는 데도 적지 않은 도움이 될 수 있다. |
누구나 대통합을 말하지만…
DJ가 이끄는 대통합은 이뤄질 것인가? 절대 시간이 부족한 상황에서 범여권은 DJ의 채근대로 국민들을 양당 싸움으로 끌고 갈 수 있을 것인가? 만일 대통합이 된다면 범여권의 희망처럼 51 대 49의 싸움이 될 수 있는가? 바둑으로 치면 대마가 죽어 형세는 절망적인데 마지막 초읽기에까지 몰려 있는 형국이다.
범여권은 '대통합'이라는 원칙(?)만 정해졌지 앞으로 갈 길이 첩첩산중, 오리무중이다. 모두가 대통합을 이야기하지만 명분도, 동력도, 지도력도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방법을 둘러싸고도 우왕좌왕이다. 지금 범여권에는 후보들은 안 보이고 DJ만 보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애당초 정치적 발언은 안 하겠다던 김 전 대통령이 연일 발언의 수위를 높여가며 사실상 대통합을 이끌고 있는 형국이다. 상황의 절박감 때문인지 평소의 그답지 않은 거칠고 직설적인 표현도 자주 등장한다. 발언 내용만 놓고 보면 마치 김영삼 전 대통령의 말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그는 정동영 전 의장을 만나 강한 어조로 "대통합에 헌신하라. 대통합에 걸림돌이 되거나 대통합을 실패하게 하는 지도자는 내년 총선에서도 실패할 것"이라고 강력하게 경고했다. 더 나아가 범여권의 후보는 "누가 제일 대통합에 헌신했느냐가 기준이 될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천정배 의원을 만난 자리에선 톤을 더 높여 "시간이 없다. 목소리를 높일 때가 아니고 실천에 나설 때로 사명감을 갖고 빨리 뭉쳐야 한다"고 하는 한편 "정책부분은 열린우리당이나 민주당이 해왔던 대로 하면 되고…"라고까지 했다. 신중하고 완곡한 표현을 즐겨 쓰던 그로서는 대단히 파격적인 발언이었다.
연일 쏟아진 그의 강경 발언 탓(덕?)에 정당 중심이냐, 후보 중심이냐 하는 논쟁과 선(先) 정치세력 결성, 후(後) 후보 단일화 같은 방안들은 일거에 잠잠해지고 호기롭게 '단일정당, 단일후보, 원샷 대통합' 같은 듣기만 해도 시원한(?) 방안이 순식간에 합의됐다. 이제 범여권의 어느 누구도 대통합을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
친노의 핵심이라 불리는 의원들은 물론 심지어 유시민의원조차 대통합을 반대하지 않는다. 후보단일화가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생각하는 노무현 대통령도 "대통합 후보가 나온다면 지지하겠다"며 공식적(?)으로는 대통합을 대세로 인정했다.
누구와 대통합을 할 것인가
남은 문제는 대통합의 범위다. 통합민주당의 지도부가 주장하는 당대당 통합 반대나 열린우리당 해체는 사실상 '배제론'이 핵심이다. 열린우리당 탈당 그룹 중에서도 박 대표와 같은 생각을 하는 의원들이 있다.
배제론자들의 논거는 대략 두 가지다. 하나는 노무현 대통령을 당선시킨 멀쩡한 민주당을 아무 이유 없이 깨고 나간 책임을 물음으로써 통합을 주도하는 정통성이 어디에 있는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국정 실패의 책임을 질 희생양이 있어야 대선에서 자유롭게 싸울 수 있다는 것이다. 실리나 명분에서 배제론이 실익이 있다는 계산이다.
반면 이런 주장에 대해 배제론의 직접 대상이 되는 핵심 친노 그룹은 물론이고 대통합파 다수도 동의하지 않는다. 이들의 논거도 대략 두 가지다. 하나는 끝까지 특정 세력을 배제한다면 사실상 대통합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친(親)노무현' 핵심 그룹을 배제하면서 정권재창출이나 범여권 대통합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은 논리적으로도 모순이고 도덕적으로도 옳지 못하다는 것이다. 실리로 보거나 명분으로 보거나 배제론이 실익이 없다는 주장이다.
이런 견해를 종합하면 대통합에 관한 두 가지 정의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친노 핵심들만 배제하고 모두 합쳐지면 대통합으로 볼 수 있다는 견해와 배제 없는 대통합만이 진정한 대통합이라고 보는 견해다.
하지만 결국 범여권의 대통합은 정치적으로 보면 노무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손을 잡고 같은 후보를 본선에서 지지하느냐 아니냐의 문제다. 범여권 갈등의 본질이 사실상 친노냐 반노냐 혹은 친DJ냐 반DJ냐의 문제이므로 그것이 해소될 수 있는 상황이 연출되면 나머지 문제는 지엽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통합민주당이 '이질세력'의 범위를 아무리 좁혀서 극단적으로 유시민 한 사람만 남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사실상 노무현이 남는 것이다. 유시민 의원이 "한나라당에서 14년간 국회의원, 장관, 도지사 한 사람도 동질세력이고 노 대통령을 탄핵했던 분들도 동질세력인데 탄핵에 가담한 적도, 한나라당에 몸을 담은 적도 없는 저는 당원이 주인 되는 당을 원했는데 이질 세력이냐"라고 했다. 이 말은 사실 노무현 대통령이 했다면 더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다.
유시민 의원은 "7월말이나 8월초에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이 오전에 당대당으로 결합하고 오후에 시민사회 창당대회 때 결합하는 '원샷 대통합'을 만드는 게 바람직하다"며 "저도 당에 남아 있다면 자연스럽게 합류하지 않겠느냐"라면서 "다만 탈당하고 오라면 저는 못 간다는 것이다"라고 했지만 그런 논리로 유시민이 통합신당에 못가면 노무현도 못가는 것이다.
더군다나 열린우리당 해체 반대는 유시민만의 주장도 아니다. 김두관, 신기남, 한명숙, 심지어는 이해찬조차도 "열린우리당을 해체하라는 것은 배제론으로 아주 교만하고 건방진 주장"이라며 "누구, 누구는 빼고 간다면 나도 갈 수 없다"고 했다. 이들의 말은 한마디도 빼지 않고 노무현 대통령의 말로 들린다.
더 나아가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이병완 참여정부 평가포럼 대표는 "이번 대선은 결국 친노 대 반노의 대결이 될 것"이라며 "이번 대선은 참여정부 노선을 계승 발전시키는 집권세력과 그것을 부정하는 교체세력 간의 싸움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면서 오히려 "범여권 안에도 정권교체를 주장하는 사람과 세력이 있다"면서 "탄핵, 기회주의, 지역주의 세력이 먼저 사과를 해야 한다"고 역공을 취했다.
DJ와 盧가 손 잡으면 탄탄대로?
결국 통합민주당이 열린우리당 해체론을 조건 없이 철회하거나 통합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의 동시 해체만이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이 손을 잡을 수 있는 '배제 없는' 대통합의 필요조건인 셈이다. 만약 그렇게 결의된다면 대통합은 순풍에 돛단 듯 순항하게 될까? 그렇게 된다고 해도 해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무엇보다 대통합이 되려면 세 가지 확신이 있어야 한다.
첫째, 어차피 반(反)한나라당을 위한 대통합이 명분은 잃었지만(왜냐하면 애초에 민주당을 깨고 나갈 때 했던 말들을 모두 주워 담아야 하고, 열린우리당을 깨고 나갈 때, 어떤 사람들은 열린우리당이 한나라당처럼 해서 망했다고 한 반면, 또 어떤 사람들은 민노당처럼 해서 망했다고 했는데 이제 와서 무조건 다시 합치자고 하니) 이렇게라도 연합을 하면 이긴다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이러고도 진다면 명분과 실리 모두를 잃게 되기 때문에 총선 치를 밑천마저 바닥나 버린다.
둘째, 대통합에 참여하는 모든 정치세력의 이해관계를 조정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열린우리당, 통합민주당, 손학규의 선진평화연대, 시민사회세력, 이렇게만 해도 네 그룹이다. 각 세력 내에서도 목소리가 다양하고 대선 후보 또한 여럿이라 복잡한 이해관계가 엇갈린다. 대선이 끝난 직후 치러질 총선의 수요 공급이 이미 무너진 상황이라는 얘기다. 이에 따라 대통합이 되려면 대선 후보 단일화보다 백배는 힘든 상황을 정리할 정치력이 발휘될 수 있다는 확신이 서야 가능하다.
셋째, 만약 대통합이 된다고 해도 지난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을 찍었던 사람들과, 97년 DJ를 찍었던 사람들 중 지금은 한나라당 후보들에게 눈길을 주고 있는 유권자들이 돌아와 다시 한 번 찍어줄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셋 다 확신이 쉽지 않다. 하나씩 살펴보자. 통합 민주당 지도부가 원칙 없는 통합을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그렇게 해도(혹은 하면) 이길 가능성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박상천 대표는 "무조건 대통합은 선거용 급조 정당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 식이라면 아예 당명을 '반(反)한나라당'으로 해야 맞다. 그래서는 대선에서 승리할 수 없다"고 했다. 한마디로 말해 묻지마 대통합은 승산이 없다는 것이다.
사실 지난 2002년 대선 환경과 비교해 보면 지금의 범여권 상황이 얼마나 나빠졌는지 알 수 있다. 우선 투표율이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 2004년 총선의 투표율이 2000년 총선보다 상승했고, 2006 지방선거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최근 3~4년 간 세계 각국의 선거 투표율이 거의 대부분 상승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대선 투표율은 지난 대선의 70.8%라는 낮은 투표율보다 틀림없이 상승할 것이다. 새롭게 투표권을 갖게 된 젊은 층이 범여권에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는 점도 고민거리다.
요컨대 범여권의 후보가 누가 되든지 간에 호남에서는 노무현과 김대중의 지지보다 한 표라도 적으면 적었지 더 많기는 힘들 것이다. 2002년 대선 때 이회창의 고향인 예산을 빼고는 전 지역을 노무현이 이겼던 충청권도 그리 우호적 상황이 아니다. 지난 대선에서는 부산 출신의 노무현이 영남, 특히 부산-경남에서 적지 않은 득표를 했으나 지금은 이를 기대할 처지가 못 된다. 게다가 97년 선거에서 19%라는 높은 지지로 이회창의 표를 분산한 이인제 같은 존재가 이번 선거에선 아직까지 보이지 않는다.
또한 지난 3~4년간 세계 각국의 선거를 보면 투표율이 상승한 것과 함께 주목할 만한 또 하나의 특징이 있는데 부동층이 급격히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예컨대 2004년 미국 대선의 경우 민주당의 존 케리가 후보로 확정되던 시점의 부동층은 7~8%에 불과했다. 우리도 지금 전보다 부동층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이것은 냉전이 끝나고 세계화, 정보화가 시작되던 90년대만 하더라도 새로운 정치 노선에 대한 판단을 유보했던 유권자들이 2000년대 들면서 보수적 선택의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
이런 현상은 정치적 주장에 따른 유동폭이 상당히 줄어든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대선이 단기간의 단판 승부로 가름되는 속성에 따라 전력과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 해도 범여권의 잠재적 흡수층인 부동층이 감소한 점은 범여권에 그리 좋은 징후가 아니다.
대통합 동상이몽
이보다 더 어려운 장벽은 정치적 이해관계의 조정일 것이다. 친노세력에게는 다음 총선이 매우 중요하다. 모두가 알다시피 노무현 대통령과 그 측근들은 지역주의와 맞서 싸워온 것을 가장 큰 자산으로 여긴다. 자신들의 존재 이유가 거기에 있다고 믿는 세력이다. 비교적 짧은 정치이력과 보잘 것 없는 세력이었지만 놀랍게도 대통령을 만들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꿈은 아직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자신들의 이름을 걸고 자신들의 노선으로 당당히 의미있는 정치세력으로 자리 잡아야 비로소 꿈이 이루어진다.
자신들의 정치적 지도자인 노 대통령의 국민적 지지가 낮은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큰 정치적 환경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개헌이나 선거구제 개편 같은 돌파구가 마련되지 않으면 후일을 위해서 어쩌면 이번 대선에서 백기투항 해야 할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지금 당장의 일은 아니다. 오히려 열린우리당을 사수하고 버티면 국고보조금 등 현실적 선물도 적지 않다.
때문에 경선환경이 승산이 있으면 대통합의 장에서 승부를 결행할 것이고 만약 여의치 않다면 그런대로 괜찮은 후보들 면면을 믿고 자체 경선 후 후보 단일화를 꾀할 수도 있다. 다른 정치세력과는 달리 이들은 노무현 대통령과의 관계를 가장 중요하게 고려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빠른 행보를 기대하긴 힘들다. 더욱이 노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관계를 고려할 때, 시간이 촉박하다는 김 전 대통령의 채근대로만 움직이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잘못하다간 오히려 역효과 날 수도 있다.
통합민주당의 지도부는 소통합을 할 때부터 대선보다는 총선에 더 관심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아왔다. 김 전 대통령의 경고와 채근에도 불구하고, 또 일부 의원들의 탈당 위협에도 불구하고 지도부가 여유를 부리는 것은 시간이 자신들의 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애초에 정치세력을 먼저 만들고 후보단일화라도 하는 게 좋다는 입장이었던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어찌 보면 통합민주당은 그런 논리를 가장 충실하게 옮기고 있는 세력이다. 무엇보다 그 당은 DJ의 아들을 온갖 비난에도 불구하고 챙겨준 당이다. 그런 점이 민주당의 목소리를 가라앉히기 힘든 이유도 될 테지만 어쩌면 현실 정치를 누구보다 잘 아는 김 전 대통령이 대통합의 가능성이 높지 않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후보단일화를 말하는 것인 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노무현 대통령의 현실 인식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다만 두 사람의 정치적 기질을 반영한 표현의 차이가 아닐까하는 의심도 든다.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의 경우는 대통합에 원칙적으로 동의하고 후보자 연석회의에도 참석했지만 유리한 경선 환경을 위해서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는 시간을 벌면서 선진평화연대를 통해 조직을 확대하는 한편, 한나라당의 경선 결과도 지켜봐야할 입장이다. 2차 민심대장정은 그런 측면에서 필요했는지 모른다.
한나라당을 탈당한 핸디캡을 안고 있는 그로서는 호남의 지지를 얻기 위해 김대중 전 대통령의 후원이 절대 필요하지만 그 점을 너무 의식하다간 자기만의 색깔을 잃어버리고 경쟁력이 급락할 수도 있다. 경선 룰이 어떻게 결정되는 지도 그로서는 대단히 중요하다.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 그 자신이나 지지층을 위해서도 범여권에게 절실한 통 크고 빠른 행보는 쉽지 않을 것이다.
또한 시민사회세력 역시 열린우리당 탈당파가 내놓은 범여권 통합 로드맵에 대해 정치인들의 기득권을 수호하기 위한 로드맵에는 동의하기 힘들다고 분명한 입장을 보였다. 최열 미래창조연대 대표는 7월 6일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정치인들이 개별적으로 이쪽에 들어오는 것이지 당이나 세력으로서 참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정치인들이 당이나 세력으로서 참여하면 새로움을 나타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DJ 정치력도, 盧 선동력도 없는 마당에…
결국 가능성은 두 가지다. 시간이 없으니 일단 모두가 양보해서 대통합 신당을 출범시키는 게 하나다. 그렇게 되면 범여권(DJ)의 뜻대로 단일 정당, 단일 후보, 원샷 대통합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시간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동력이 되는 셈이다.
하지만 정말 문제는 단일 정당에서 단일 후보를 뽑았을 때, 과연 과거에 김대중과 노무현을 찍었던 유권자들이 '그렇다면 다시 한 번'하고 돌아와 줄까? 대통합이 이뤄졌는데도 유권자들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실리와 명분 모두 잃게 된다.
다른 하나는 그런 합의를 끌어내기 어려울 정도로 시간이 촉박한 관계로 제3지대에 통합민주당의 일부와, 열린우리당 탈당그룹과 그리고 시민사회 세력이 먼저 신당을 만들고 순차적으로 양당을 끌어들이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럴 경우 시간상으로는 모든 세력이 모인 후에 경선을 치러야 한다. 유력대선 후보들이 일단 제3지대로 나와 경선을 먼저 치른 후 국민적 지지를 바탕으로 두 당을 흡수하면 좋겠지만 친노그룹의 유력주자들은 열린우리당 내에서 경선을 치르고 나중에 후보 단일화를 모색할 수도 있다. 자칫하다간 대선은 제대로 치러보지도 못하고 바로 총선 국면으로 들어갈 가능성도 배제 못한다. 쉽지 않은 형국이다.
97년 대선의 경우 승산이 없던 게임을 DJ는 특유의 정치력으로 이겨냈다. 대중적 지지가 미미했던 JP에게 권력의 반을 내주었다. 2002년 노무현은 특유의 선동력으로 반한나라당 유권자들을 총결집시켰다. 그 때와 비교한다면 지금은 DJ의 정치력도, 노무현의 선동력도 없는 상황이다.
범여권이 간과하면 안 될 지점은 한나라당의 정당 지지도가 온갖 악재에도 불구하고 수년 간 요지부동이라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대통합 당의 후보가 나오더라도 빠른 시간 안에 양자구도를 못 만들면 민노당의 입지만 넓혀주게 될 가능성이 크다. 범여권에 승산이 없다면 '차라리 진보정당이나 찍자'라는 심리가 작동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최근 여론조사에서 주목할 흐름이 있다. 민노당의 권영길, 노회찬 두 대선 후보가 만만치 않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중도개혁대통합이 성공하면 그런대로 계가를 맞출 수 있지만 잘못하다간 보수의 한나라당과 진보의 민노당 사이에서 힘도 제대로 못써보고 무너질 수 있다.
무엇보다 대통합의 걸음이 무거워 보이는 것은 목숨도 같이 하는 '동지'들의 결사가 아니라 이해에 따라 언제든 갈라설 수 있는 '동업'의 위태한 동반이거나 어떤 때는 잠시 같이 기거하는 '동거'로 보일 때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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