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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랜드 노사 협상 결렬의 진짜 원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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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랜드 노사 협상 결렬의 진짜 원인은?

<기자의 눈>'성실 교섭' 약속만 믿고 점거 해제하라?

"오늘 좋은 결과를 기대했을 조합원들과 국민들에게 죄송합니다." -이랜드일반노조 김경욱 위원장
"어렵게 만들어진 자리인데 노조가 중재안에 대해 모른다고 해 결렬된 것이 안타깝습니다." -오상흔 홈에버 대표

지난 10일 점거 농성 열흘을 넘기고야 처음으로 사측 대표가 참석하는 노사 만남이 열렸지만 끝내 합의를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언론들은 이랜드와 노동부가 노조에게 계약해지된 비정규직 53명의 복직 등을 제안했지만 노조가 이를 거부했다고 보도했다. (☞ 더 많은 기사를 보시려면)

하지만 과연 이날 협상 결렬의 원인이 모든 요구안이 다 받아들여져야만 합의할 수 있다는 노조의 '고집' 때문일까?

노동부와 이랜드가 제시한 안, '진전'된 것인가?

노동부와 이랜드는 이날 노조에게 4가지 항목이 담긴 합의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노조는 끝내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김경욱 이랜드일반노조 위원장은 "내용상으로는 기존의 회사 입장에서 전혀 진전된 것이 아니었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이날 제시된 4가지 조건은 △한달의 평화기간을 두고 집중 교섭을 벌이고 △이 기간 동안 체포영장이 발부된 노조 간부 6명의 신변을 보장하며 △이랜드는 대표이사가 교섭에 성실하게 임하고 △뉴코아에서 계약해지된 53명을 한시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보장한다는 것이었다.

오상흔 홈에버 대표는 협상 결렬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 안을 노조가 거부한 것은 (점거농성을) 장기적으로 끌고 가려는 의도가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노조가 일부러 이 안을 거부했다는 취지의 발언이었다.
▲ 지난 10일 점거 농성 열흘을 넘기고야 처음으로 사측 대표가 참석하는 노사 만남이 열렸지만 끝내 합의를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과연 이날 협상 결렬의 원인이 모든 요구안이 다 받아들여져야만 합의할 수 있다는 노조의 '생떼' 때문일까? 사진은 협상 결렬 후 협상장을 나서는 이랜드일반노조 김경욱 위원장(왼쪽)과 최종양 뉴코아 대표(오른쪽)의 모습. ⓒ연합뉴스

노조는 '농성 풀라'면서 회사는 '성실 교섭'만 약속

하지만 '한 달의 평화기간 동안 집중교섭'하는 것은 '농성을 풀면 대화하겠다'는 기존의 입장과 크게 달라진 것이라고 보기 힘들다. 더욱이 '평화기간'이라고 하면서 이랜드가 노조에 가한 1억 원 손배소송의 취하나 파업 참가자에 대한 징계 등에 대해서는 아무런 양보가 없었다. 이랜드는 "오늘이 아니라 나중에 교섭에서 얘기할 문제"라고만 했다.

'평화'를 위해 노조에게는 점거 농성의 해제를 요구한 반면, 회사는 '대표이사가 교섭에 나오겠다'는 지극히 당연한 약속만을 한 셈이다. 노조 간부 6명의 신변보장을 하겠다고 했지만 이들에게 떨어진 체포영장은 회사의 고발에 따른 것이었다.

이 4가지 조건 가운데 기존의 이랜드 입장에서 크게 변한 것은 "53명의 '한시적인' 복직"을 꼽을 수 있다. 그런데 이마저도 '한시적'이라는 단서가 붙었다. 노조는 일단 뉴코아의 계약해지된 비정규직의 숫자가 더 많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를 제쳐두고서라도 한 달 후에 이들의 '고용'에 대해서는 "그 때가서 얘기해보자"는 말만 회사로부터 들었다.

노조로서는 이같은 말이 "30일 후 다시 계약을 해지하겠다는 말과 다를 바가 없다"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홈에버의 계약해지된 비정규직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조차 없었다.

"노사 신뢰 없는데 무조건 농성부터 풀라니…"
▲ 김경욱 위원장은 "어떻게든 해결해보고 싶었지만 우리가 점거 농성에 들어간 원인이 명백히 회사에 있는데 그건 그대로 놔두고 일단 풀라고 하면, 그리고 돌아갈 곳에 (손배, 징계, 고소고발 등의) 덫을 쳐놓고 오라고 하면 노동자가 들어갈 수 있겠냐"고 말했다.ⓒ프레시안

무엇보다 제일 큰 '함정'은 이같은 조건이 모두 "노조의 점거농성 해제"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점거를 풀어야 한시적으로라도 53명을 근무할 수 있도록 해주고, 점거를 풀어야 대표 이사가 참석하는 교섭도 가능하다는 의미다. 그런 면에서 이랜드는 크게 양보해 '중재안'을 수용하기로 한 것처럼 말했지만, 이는 "일단 점거농성부터 풀어야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 대화가 가능하다"고 했던 지난 6일과 7일의 교섭과 크게 다른 점이 없는 셈이다.

그렇다면 결국 노조가 이 안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한 달의 집중교섭 기간 동안 사태 해결이 가능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원래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이 다른 법"이라는 말을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이랜드의 노사관계는 이번 사태 이전부터도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었다는 데 있다. 평화기간이 끝난 한달 후의 상황을 전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회사의 '대화하겠다'는 말만 믿고 노조가 선뜻 농성장에서 나오기에는 그간에 쌓아 놓은 신뢰가 없는 것이다.

김경욱 이랜드일반노조 위원장은 이날 사측 대표들을 만난 자리에서 "까르푸를 회사가 인수한 이후에 사장님 얼굴을 처음 뵙는다"고 말문을 열었다. 한 기업의 노사 대표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는 말이다. 이는 이랜드 노사관계의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회사는 비정규직 문제 해결할 의지가 있기는 한가"

결국 이랜드와 노동부는 노조가 받아들이기 힘든 안을 들고 와 "노조가 이를 거부했다"고 결렬 선언을 한 꼴이다. 물론 회사는 이 안을 '노동부 중재안'이라고 규정했다. 노동부가 제시한 안을 이랜드는 수용했는데 노조가 거부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미 벼랑 끝으로 몰려 가정도 잠시 뒤로 하고 열흘이 넘도록 농성장에서 밤을 지세우고 있는 여성 비정규 노동자들에게 "일단 점거부터 풀고 말하자"는 것은 "회사가 우리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없는 것 같다"는 인상을 줄 수밖에 없다.

김경욱 위원장은 "어떻게든 해결해보고 싶었지만 우리가 점거 농성에 들어간 원인이 명백히 회사에 있는데 그건 그대로 놔두고 일단 풀라고 하면, 그리고 돌아갈 곳에 (손배, 징계, 고소고발 등) 덫을 쳐놓고 오라고 하면 노동자가 들어갈 수 있겠냐"고 말했다.

정말 이랜드가 사태의 원만한 해결을 바란다면 '농성부터 해제하라'는 조건 없이 지금이라도 비정규직의 계약해지 및 외주화, 해고자 복직 등 노조의 요구안을 놓고 협상을 벌여야 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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