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여권의 통합논의는 일단은 '대통합'이라는 명분으로 모아지는 흐름이다. 지금까지 범여권 통합논의 속으로 들어오지 않고 제3지대를 맴돌던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대통합에 적극적인 자세로 돌아선 것은 이런 흐름을 반영한다. 하지만 지금 단계에서는 대통합이라는 추상적 가닥이 잡힌 것 이상의 의미는 없다. 그 내부에는 경로, 방법, 조건을 둘러싸고 제 정파들이 양립할 수 없는 수준의 이해 갈등과 이견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범여권 내부의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대통합이라는 담론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것은 대통합이 현재 범여권이 직면하고 있는 총체적 위기를 타개하는 진정한 구원의 길인가 하는 질문으로 바꿔 던져볼 수 있다. 즉 대통합 담론이 신기루는 아닌가 하는 의문이다.
사실 여권이 직면하고 있는 위기와 통합 논의는 어떤 면에서는 뜬금없는 조합이다. 여권의 위기는 근본적으로는 세력의 분열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정체성의 부재와 국정개혁의 실패로 인한 국민들의 총체적 불신에서 생겨난 것이다. 따라서 여권인사들이 대통합을 이루어내기라도 하면 마치 올 대선에서 51 대 49의 싸움이 될 것처럼 주술을 거는 모습을 보면 위기의 본질을 은폐하고 호도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는 것이다.
먼저 이는 산술적으로는 분명하게 똑 떨어지는 사실이다. 최근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6월24~25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정당지지율에서 한나라당이 41.2%, 범여권 제 정파 지지율의 총합이 13.6%에 지나지 않는다. 대선 주자 지지도는 더 참담하다. 한나라당 주자들의 지지율 합이 64%가량이고 범여권 주자들의 그것은 16%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만 보아도 대통합 자체가 구원의 길이 아니다. 대통합에 의한 시너지효과를 감안하더라도 이런 격차를 극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당지지도 30%의 격차를 메우기 위해서는 대통합 이상의 무엇이 나와 줘야 한다. 그런데도 대통합으로 51 대 49의 게임이 만들어진다고 주장하는 데에는 순진해서이거나 아니면 다른 흑막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통합 담론은 전적으로 허구이거나 기만에 불과한 것인가? 세상사라는 것이 늘 복잡하고 양면성을 가지고 있듯이 꼭 그렇지만은 않다. 무엇보다 여권이 갈기갈기 찢기고 파편화되어 가는 이 국면을 타개하지 못하면 선거 자체가 불가능하거나 무의미해 질 수도 있는 상황에서 대통합은 위기 극복의 최소 조건이자 리더십의 중요한 실험대이다. 따라서 대통합 이상의 그 무엇을 만드는 일도 대통합을 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하지만 대통합이 기성 정치권을 그대로 복원하는 것만으로 위기 극복의 필요충분조건이 되지는 못한다는 사실 또한 자명하다. 따라서 대통합은 새로운 정치, 곧 미래비전을 만드는 과정과 밀접하게 융합된다. 이를 다른 각도로 돌려 생각해 보면 새로운 정치를 통하지 않고서는 대통합을 이루어낼 수 없다는 말로도 전화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대통합 담론은 유의미성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
정동영-손학규-김근태, '불안한' 대통합 공조
그렇다면 대통합은 가능한가, 가능하다면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현실적 검토 사항으로 남는다. 그리고 대통합은 어떤 방식으로 여권세력의 구원에 기여하게 되는가의 문제도 검토를 요한다.
지금 범여권 제 세력들은 대통합을 소리 높여 합창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통합의 미래는 매우 불투명하고 난삽하기 짝이 없다. 특히 직접적으로는 열린우리당과 통합민주당의 적대적 관계가 최대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통합민주당은 열린우리당의 해체를 요구하고 있는데 반해 열린우리당(친노그룹)은 그 존재성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것에 대해서는 공멸을 각오하고 싸우겠다는 태세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비노(非盧)이지만 지역당에 대해서도 선을 긋고 있는 여러 탈당파 그룹들의 존재도 판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이처럼 여권 상황에 혼돈이 쉽게 종료되지 않는 이유는 한마디로 구심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통합논의를 둘러싼 제 세력 간의 갈등과 경쟁은 구심으로 부상하기 위한 치열한 권력투쟁의 과정이기도 하다.
범여권 구심 형성에 맨 먼저 시동을 건 것은 정동영-손학규-김근태의 공조체제였다. 이들은 범여권 내에서 가장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 유력 후보군이라는 조건을 바탕으로 대통합의 공간을 창출하고자 한 것이다. 즉 유력후보중심의 통합을 제시한 것이다. 이를 통해 힘의 쏠림을 만들고 이 속에 양 옆의 열린우리당과 통합민주당을 쓸어 담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손-GT(김근태)의 공조체제가 갖는 한계 또한 분명해 보인다. 양쪽의 적대관계를 쓸어 담기에는 이들의 여력이 크게 부족해 보인다. 무엇보다 이들은 여권 전체를 움직일 수 있는 뚜렷한 지지기반을 결여하고 있다. 이들은 전통적인 호남지지층을 움직여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개혁적 지지층을 움직여 낼 수도 없다. 이들이 대선예비주자들로서는 가장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그 지지층이란 응집성이 약하고 조직화되어 있지 않은 중도성향의 유권자들이 주류이다. 게다가 손학규 전 경기지사는 여전히 한나라당을 이탈한 한나라당 성향의 정치인에 불과한 채로 남아 있어서 언제든지 정체성 논쟁의 덫에 걸리게 되어 있다.
정-손-GT의 공조체제는 양대 세력의 절묘한 균형 위에 서있어야 한다. 어느 한쪽으로 쏠리면 그 순간 바로 볼모가 된다. 통합민주당으로 쏠리면 지역당과의 야합이라는 비난과 함께 정체성, 도덕성 논쟁에 휘말리게 된다. 역으로 열린우리당에 쏠리게 되면 도로 열린우리당이라는 비난을 받게 될 뿐만 아니라 통합민주당 내지 호남의 지원을 동원할 수 없게 된다. 여권 내부의 국민경선구도에서 안정적 우위 또한 장담할 수 없게 된다는 뜻이다.
정-손-GT의 공조체제에 의한 대통합이 실패로 돌아가면 김근태 전 의장의 경우 설 자리가 없이 공중에 떠버리고, 정-손은 양분된 구도의 한쪽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아마도 이해관계의 구조상 이들은 통합민주당 쪽으로 기울 확률이 크다. 그 과정에서 정-손 간에는 통합민주당 기반을 선점하기 위한 경쟁이 벌어질 수도 있다.
열린우리당 및 친노세력 또한 구심이 되기는 난망해 보인다. 이들은 친노세력이라는 일정한 지지기반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여권의 개혁적 지지층을 포괄하기에는 턱없이 역부족이다. 게다가 국정실패세력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광범위한 반대세력에 둘러 쌓여있다. 이들은 여권내 지역당 세력이나 중도보수 세력을 비토 할 수 있는 일정한 힘을 가지고는 있으나 그들을 제압할 수 있는 힘은 없다. 이것이 바로 2002년 대선 및 2004년 총선 때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기도 하다.
이렇게 보면 앞으로 범여권의 진로는 대통합보다는 양분구도로 갈 가능성이 현실적으로 더 크고, 경우에 따라서는 삼분 혹은 사분구도로 핵분열 하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다시 말해서 기성정치권의 틀 내에서는 어떤 식으로 이해관계의 조합을 해봐도 제 세력들 간의 차이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참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결국 대통합을 가능케 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세력연합 이상의 그 무엇이 나와 줘야 한다는 앞서의 가설로 회귀한다. 우선 그것은 세력의 조합이 아닌 '정치적' 통합이 되어야 한다. '정치적'이어야 한다는 의미는 대통합의 프로세스 속에 '세력과 노선의 대충돌'이 조직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쓰러질 것은 쓰러지고 흡수될 것은 흡수되면서 정치적 통일이 역동적으로 이루어져 나가야 하는 것이다. 대통합은 역동의 정치를 연출하는 공간을 제공하는 수단이어야 한다.
'플러스 알파'는 있는가?
모든 세력의 차이를 쓸어 담아 대통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국민적 지지의 흐름을 만들어 내야 한다. 국민의 지지라는 장강(長江)의 큰 물살을 만들어 자잘한 샛강들을 합류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통합의 틀 속에서 '새로운 정치'의 요소들이 많이 출현해야 한다. 새로운 정치를 통해 '미래'를 보여줄 수 있어야 국민들의 마음이 움직인다.
새로운 정치가 나타나기 위해서는 기성정치권이 엄청난 수준으로 기득권을 포기하고 획기적으로 문호를 개방해야 한다. 그리하여 새로운 세력과 사람들이 희망과 기대감을 가지고 들어와서 창조적 융합을 일으키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기성정치권은 여전히 기득권 게임에 몰두하고 있으니 그들 자력으로 '미래'를 만들기는 참으로 난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다음으로는 새로운 미래세력이 나타나서 역할을 해줘야 한다. 참고로 짚고 가자면 적어도 논리적으로는 '새로운'이라는 의미가 정치권 내부-외부의 구별은 아니다. 문제는 정치방식의 새로움이다. 그런데 미래는 단순히 좋은 이념, 정책, 목소리가 아니다. 미래는 좋은 이념, 정책과 동시에 '힘'을 갖추어야 나오는 것이다. 정책도 좋고 말도 잘하는데 판을 움직이는 수단이 없기 때문에 뜨지 못하는 비근한 예가 바로 한나라당 홍준표의원이다.
힘의 기초는 '포지션'이다. 미래세력은 기성정치판도를 향해 작더라도 강력한 영향을 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그 공간의 조직은 이념적 좌표와 정책노선, 지지기반의 중심축, 정치현안에 대한 태도 등을 포괄한다. 그리하여 기성정치권의 교착된 구도를 흔들 수 있는 급소를 포착해야 한다. 2002년 민주당 경선에서 노무현 후보는 개혁세력을 결집시킴과 동시에 한나라당 기반 잠식의 가능성을 보여줌으로써 기성 판도를 일거에 뒤흔들어 버린 사례이다.
통합논의와 관련해서도 급소를 찾아야 한다. 그리하여 기득권을 포기하는 경쟁이 일어나도록 해야 한다.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는 세력과 사람이 심각한 상처를 입도록 판을 짜야 한다. 그것의 세밀한 방법은 비평가들이 아닌, 현장의 정치인들이 찾아야 할 숙제다. 대통합에 대한 국민들은 무관심은 대통합이라는 정치인들의 수사 너머에 뒤따라야 할 행동으로 그 의지와 진정성을 가늠하려는 '보류된 선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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