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양국 정부가 29일(한국시간) 새벽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가 협상을 조기에 마무리지었다.
이번 협상은 '번개'처럼 진행돼, 자국의 정치지형 변화를 반영한 이른바 '신통상정책'을 토대로 미국 측이 추가 협상을 공식 요구한 지 2주가 채 걸리지 않았다.
한국과 미국이 추가 협상을 마무리지음에 따라 일단 협정은 양국 행정부의 손을 떠나 의회의 승인이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 추가협상 서둘러 종료…美 의회 고려
미국 의회와 행정부가 노동,환경조항의 강화와 미국 제약자본의 이해를 강하게 대변해온 의약품 관련 조항을 손질한 이른바 '신통상정책'에 합의한 것이 지난 5월 11일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이로부터 한 달이 더 지난 6월 16일에야 한국에 구체적 요구사항을 내밀었다.
신통상정책의 중심인 노동,환경분야의 경우 국제노동기구(ILO) 협약과 7가지 다자간 환경협약의 준수 등을 내걸었지만 실제로는 별도의 절차를 마련하기로 두 달전 합의했던 노동,환경 분쟁해결절차를 특혜관세 중단 등 무역보복이나 보상금 징수가 가능한 일반 분쟁해결절차로 바꾸자는 게 핵심이었다.
4월 2일 협상 타결 발표 뒤 두 달만에 다시 서울을 찾은 웬디 커틀러 미국 수석대표는 "30일 서명식에 올릴 협정문에 추가협상 내용이 반영돼야 한다"고 요구, 시간에 쫓기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우리 측은 이에 대해 "신중하게 검토하겠다. 역제안을 고려하겠다"며 겉으로는 여유있는 모습을 보였지만 상황이 녹록지 않다는 인식은 마찬가지였다.
미국의 '지각제안'을 덥석 받게 되면 비준동의라는 정치절차를 앞둔 상태에서 의원들을 설득할 명분이 서지 않는다.
반면 협상을 조기에 끝내지 못해 미국 의회가 행정부에 부여한 무역촉진권한(TPA) 시한인 30일을 넘기게 되면 이후 협상에는 미국 헌법상 통상협상권을 갖고 있는 의회가 협상 내용에 개입할 가능성이 커지고 협정의 장래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지난 27일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FTA 청문회에서 "이것저것 제기하면 흔히 얘기하는 '판도라의 박스'가 열리게 된다"는 김종훈 수석대표의 언급도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둔 것이다.
정부는 한덕수 국무총리가 29일 주재한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조찬 간담회를 통해 한미FTA 추가 협상 마무리 소식을 전하면서 "미국의 TPA 시한 만료 후 추가 협의 결과에 대한 법적 효력 시비를 차단했다"고 자평해 이 문제가 중요한 고려요인이었음을 인정했다.
아울러 "미 의회가 주도한 '신통상정책'이 반영되지 않으면 미 의회 비준은 사실상 어려울 전망"이라고 밝혀 이번 추가 협상의 조기 마무리가 본협상 후반부터 끊임없이 제기됐던 이른바 '미국 민주당 변수', 즉 민주당이 장악한 미국 의회를 염두에 둔 것이었음을 부인하지 않았다.
◇ 아직 변수 남아…FTA 협정문 추후 개정도 가능
정부는 이번 협상에서 일반 분쟁해결절차 도입 등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는 대신, 분쟁절차에 앞서 정부간 협의를 하도록 하고 노동 및 환경제도가 무역과 투자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입증 요건을 강화해 남용을 막는 장치를 마련했다고 자평했다.
아울러 우리측 역제안의 핵심 요구인 전문직 비자쿼터 문제에 대해 미 행정부의 협조를 약속받았으며 미 의회에서 제기되고 있는 자동차, 개성공단 등에 대한 재협상 요구를 막을 수 있게 됐다는 기대감도 표시했다.
그러나 이번 추가협상으로 모든 변수가 없어졌다고 단언하기는 힘들다. 우선 미국의 요구를 수용한 댓가로 전문직 비자쿼터 확보에서 미국 행정부의 협조 약속을 받았다지만 이 문제는 본질적으로 미 의회의 소관이다.
협상과정에서 의회의 강경한 입장을 대변하는 수준에 그쳤던 미 무역대표부(USTR)가 추후 한국 정부와 미 의회간 협상에서 "호주(1만개) 이상의 쿼터를 확보하겠다"는 우리측 요구를 관철하는 데 영향력을 발휘해줄 수 있을 지 불확실하다.
정부는 '개성공단에 대한 재협상 요구를 막았다'고 자평하지만 미 의회조사국(CRS)은 최근 보고서에서 웬디 커틀러 자국 협상대표의 말을 근거로 "역외가공지역위원회의 결정은 양국 의회의 승인을 받도록 돼있다"고 지적했다.
개성공단의 역외가공지 인정을 논의할 시점이 되면 또다시 협상거리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 대목이다.
무엇보다 추가협상이 마무리됐지만 FTA 자체가 고정 불변의 것이 아니라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할 사안이다.
발효 후에도 한미FTA 협정문은 개정될 수 있으며 이의 근거는 한미 FTA 협정문 22장(제도규정 및 분쟁해결), 24장(최종규정) 등에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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