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음식점에 가서 소고기를 먹어 본 적이 없다. 물론 한우 얘기다. 1인분에 3만원이 넘는 것은 그래도 싼 편이고 4만원,5만원까지 하는 데가 적지않다. 우리 같은 서민들, 한우는 언감생심 꿈도 못꿀 일이다. 줄창 삼겹살이나 먹거나, 의식있는 분들에게는 미안한 일이겠으나 한미 FTA로 미국산 소고기가 들어 오기만을 기다릴 뿐이다. 근데 정작 미국 소고기는 아마도 맛이 없어서 먹지를 않을 것이다. 그럼 캐나다産? 호주産은 어떨까? 신문사의 데스크로 일하고 있는 한 선배는 애들이 셋이다. 그것도 남자 아이들로만. 셋 다 고등학생, 중학생의 고만고만한 나이 대들이다. 그만할 때면 늘, 돌아서면 배고플 나이라는 걸 모두들 잘 알 것이다. 그래서일까. 요즘 이 선배의 소원은 아이 셋에게 실컷 고기 한번 먹이는 일이다. 주방에서 부인과 열심히 고기를 구워서 식탁에 올려 놓고 애들에게 먹게 한 후 또 다음 고기를 굽다가 슬쩍 뒤를 돌아 보면 이미 오래 전에 한 접시 슥삭 해치운 애들 셋이 젓가락을 빨며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이 눔의 새끼들 증말 엄청나게 먹거든. 근데 그런 얘기를 하는 선배의 목소리엔 약간의 슬픔과 자조가 섞여 있다. 자식에게 실컷 고기 한번 먹이지 못할 때 그 부모가 느끼는, 세상에 대한 열등감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는 아는 사람들만이 안다. 그런 상황인데 한우는 왜 이리도 비싼지. 뼈가 붙었든, 맛이 어떻든, 싸구려 미국산 소고기 수입은 왜 그리도 반대하는지. 알쏭달쏭, 머리 나쁜 사람은 이해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다 그눔의 유통때문이다. 축산 농가는 축산 농가대로 죽고, 소비자는 소비자대로 죽고. 산지에서는 제값 못받고, 소비지에서는 너무 비싸서 부르주아들이나 먹을 수 있는 이 황당한 시츄에이션을 어느 누가 나서서 좀 고쳐줄 수는 없을까? 세상에 먹는 것 때문에 계급의식을 느끼는 것 만큼 원초적이고 치사한 것은 없을 것이다. 세상사 모든 게 다 연결돼 있다고, 생산과 소비의 과정에서 한우 고기가 겪는 이 엄청난 괴리가 DVD의 생산과 판매 과정에서도 동일한 패턴으로 나타난다고 하면, 이 사람 참 말을 빙빙돌려 가면서 한다고 욕먹을까. 나도 모르겠다. 오늘 하고싶은 얘기가 한우 얘긴지 아니면 DVD 얘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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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시즌에는 볼만한 외화의 경우 죄다 DVD숍으로 직행하기가 십상이다. 정말 좋은 영화가 많이 나온다. 포리스트 휘태커가 아카데미 주연상을 받은 <라스트 킹>같은 영화를 비롯해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또 한편의 걸작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와, 배리 레빈슨 감독의 위대한 정치코미디 <맨 오브 더 이어>, 그리고 반드시 동명소설을 먼저 읽은 후에 비교 감상하는 게 좋은 <러닝 위드 시져스> 등등, 정말 주옥 같은 작품들이 많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작품들을 DVD숍에서 쉽게 구할 수 없다는 점에 있다.어찌된 상황인지를 알아볼 요량으로 출시사에 직접 전화를 걸어 본 적이 있다. 여기도 한우처럼, 황당한 시츄에이션이 벌어지고 있었다. 제작사 창고에는 재고가 쌓여있고, 이용자들은 해당 작품을 찾고 있는데 정작 유통창구인 DVD숍에서 이를 사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여 횟수가 얼마 안되는 작품들, 공연히 사서 비치해 놓은들 수지가 안맞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계속 반복되다 보니 제작사는 제작사대로 이용자들은 이용자들 대로 손해를 보고있는 것이다. 자 그러니 오늘의 결론은? 한우 고기 좀 싸게 먹을 수 있는 방법과 DVD를 자유롭고 손쉽게 빌려 볼 수 있는 방법이 사실은 한통속안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근데 그게 뭐냐고? 한번들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 (*이 글은 영화주간지 무비위크 281호에 실린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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