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민노당은 '이분법적 주술' 넘어서야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민노당은 '이분법적 주술' 넘어서야

[2007 대선이야기]'안티'의 덫과 대선 방정식

오늘은 민주노동당에 대해 얘기해 보고자 한다. 필자는 민노당의 내밀한 문제들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는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는 일반적인 눈높이에서 말하려 한다. 그것이 때로는 숲 안에서 관찰하는 것보다 숲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게 해 줄 테니까 말이다.
  
  올 대통령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의 가능성은 어느 정도일까? 지난 1년간 여론조사 상에 나타난 민노당 지지율은 평균적으로 5~6%가량이다. 작년 하반기에 6~7% 수준이었던 지지율이 올해 3월 초 4% 초반까지 하락했다가 최근 한미 FTA 정국을 계기로 5% 후반까지 회복됐다.
  
  지금까지 단 한 번의 반전도 없이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여 온 열린우리당에 비하면 민노당의 성적은 그리 나쁘지 않다. 최근에는 민노당 당원 수가 10만 명을 돌파했다는 낭보도 있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요즘 민노당의 표정은 고무돼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민노당이 과연 생존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과 회의가 확산되던 것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이다. 이는 노무현 정권의 한미 FTA 추진과정에서 민노당이 반대세력의 중심으로서의 위치를 굳건하게 한 데에 기인한 것이다. 이를 계기로 앞으로도 민노당은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전선을 더욱 강화시킴으로써 안티(anti)세력의 중심으로서의 입지를 구축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확실히 이것은 민노당이 현실정치 세력으로서 생존할 수 있는 하나의 경로를 보여준다. 그러나 여기에는 자칫 민노당에게 치명적 독이 될 수 있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이런 식의 민노당의 생존은 거의 전적으로 열린우리당을 비롯한 중도개혁세력의 몰락과 지리멸렬, 그리고 우경화 덕분에 가능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민노당의 생존이 중도개혁세력에 실망한 진보개혁 성향의 이탈층을 흡수함으로써 얻는 반사이익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열린우리당의 괴멸로 민노당이 얻게 되는 정치적 이득이란 아주 소소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현재의 조건에서 민노당이 열린우리당으로부터 흡수해 갈 수 있는 지지층이란 소위 '이념적 진보' 성향의 유권자들인데, 이들은 열린우리당과 민노당 사이 점이지대에 놓인 층으로서 전체 유권자의 10% 미만으로 추정된다. 이는 열린우리당을 이탈한 유권자들 중에서도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훨씬 압도적 다수는 열린우리당을 이탈해 '진보적 이탈부동층'(약 15%가량)으로 남거나 한나라당 진영으로 옮겨간 층이다.
  
  이것은 역설적으로 현재 방식으로 갈 경우 민노당이 올 대선에서 얻을 수 있는 득표율의 최대치가 대략 10% 안팎이라는 것을 시사한다. 더 이상의 확장가능성은 없다고 단언해도 좋다. 민노당이 당장 중도개혁세력을 대체하는 대안세력으로서 성장하기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게다가 최대치 10% 지지율은 열린우리당 등 중도개혁세력이 계속해서 죽을 쒀줘야 가능한 수치이다. 만일 올 대선 안에 범여권 내에 꽤 의미 있는 대안이 만들어지기라도 하면 거대 보수체제의 등장을 우려하는 지지층의 견제심리가 작동하게 돼 그 동안 쌓아올린 성과가 한 순간에 썰물처럼 빠져나가 버릴 수도 있다.
  
  또 하나 심각한 것은 그동안 민노당은 열린우리당으로부터의 이탈층을 흡수하고도 기존 지지율에다 플러스 알파를 거의 만들지 못했다는 것이다. 열린우리당과의 동반하락을 피하지 못함으로써 결국 열린우리당 이탈층 흡수효과는 상쇄되고 말았던 것이다. 플러스 알파를 만들어 온 세력은 결국 한나라당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같은 정황들은 민노당의 안티전략이 갖는 근본적 한계를 시사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찬반 구조의 함정
  
  따라서 민노당이 진정 한국사회의 대안적 세력으로 성장하고자 한다면 안티전략이 갖는 무서운 함정을 하루 빨리 간파하고 거기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파적 생존이라는 협소한 시야를 벗어나 전선 전체를 판독하면서 진보주의적 가치와 정신이 사회 전반에 확산되도록 하는 새로운 전략적 시야를 확보해야 한다.
  
  민노당의 안티전략은 설령 의도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현 집권세력에 대한 공격, 즉 노무현 정권 및 열린우리당과의 차별화에 집중된다. 민노당은 '노동', '분배', '공유제'와 같은 담론으로 표상되는 사회주의(사민주의) 지향의 좌파 정치세력으로서 자유주의 중도개혁세력과는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르다. 따라서 민노당은 마땅히 열린우리당과는 차별화된 독자성을 견지해 나가야 한다.
  
  하지만 열린우리당과 민노당 사이에는 이런 차이점도 있지만 한국의 민주주의를 대표하는 양대 세력이라는 공유점도 있다. 또한 오늘날 한국 민주주의가 직면하고 있는 총체적 위기에 대한 책임을 공유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민노당은 마치 오늘날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가 전적으로 노무현 정권의 문제이고 자신은 그와 무관한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그것을 입증이라도 하려는 듯 더욱 거세게 노무현 정권을 공격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지점에서 불필요한 오해가 초점을 흐리는 일이 없도록 한 마디 해두자. 노무현정권이 민주주의 위기의 최대 제공자임은 더 이상 말해봤자 입만 아프다. 하지만 조금만 구조적 인식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노무현 정권의 일탈이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지각(地殼)수준에서 민주화세력의 총체적 위기가 작동했기 때문에 생겨난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민노당은 이런 인식을 기본적으로 거부하고 있다. 17대 국회 내내 거의 무성과로 일관한 것이나 당 내부의 지독한 정파갈등과 당내민주주의 결핍, '먹고 살만한' 선택받은 계급으로 전락한 민주노총, 꿈을 잃어버린 전교조 등의 문제는 오늘날 민주주의 위기를 구성하는 근본적 요소들이다. 물론 민노당 역시 자신들의 이런 문제들에 대해 종종 비판해 왔다. 그러나 일단 '타자에 대한 비판'의 영역으로 들어가게 되면 민노당의 자기성찰능력은 갑자기 제로상태로 떨어지고 만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그들이 즐겨 사용하는 '신자유주의냐 반(反)신자유주의냐'를 기준으로 현실을 해석하는 이분법적 담론의 마술 때문이다. 즉 항상 신자유주의가 문제이기 때문에 한국사회의 위기나 민주화세력의 위기는 신자유주의를 추종해 온 노무현 정권과 열린우리당의 몫이고 반신자유주의의 태도를 고수해 온 자신은 그 책임에서 제외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비판의 시각(perspective)이 자신의 내적 문제에 대한 성찰을 가로막아 버리는 것이다.
  
  '신자유주의'도, '반신자유주의'도 아닌 개혁적 진보블록을 어찌 할까
  
  민노당은 '반한나라당 전선'을 형성하자는 주장을 자유주의자들의 음모 정도로 치부한다. 민노당은 반한나라당 전선이 '반신자유주의 전선'으로 대체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지나치게 단순화된 접근법이다. 올 대선은 지난 40년간 이어져 온 '민주화세력 대 산업화세력'의 대결구도를 결산하고 새로운 정치구도로 이행해 가는 일종의 대회전기다. 올 대선은 이슈, 세력구조의 측면에서 2002년 대선과 많은 차이를 보일 것이지만 적어도 형식의 측면에서는 과거와 크게 다를 바가 없이 '민주화세력 대 산업화세력의 대결', '영호남 동서세력의 대결', '한나라당과 비한나라당의 대결'이라는 구도로 진행될 것이다.
  
  그런데 민노당은 바로 이 단계를 건너 뛰어 버리려 한다. '반신자유주의'의 전선을 무리하게 도출하려는 과도한 집착이 그것이다. 민노당은 이 시점에서 민주주의적 가치가 가장 완결된 형태로 보존되어 다음의 정치적 단계에서도 신자유주의의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적 시민권(social right)의 과제와 연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민노당은 반한나라당 전선의 형성을 주장하는 세력들을 지나치게 폄하해서는 안 된다.
  
  반한나라당 세력 중에는 반신자유주의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한나라당류의 급진적 신자유주의는 더더욱 아닌 개혁적 진보블록이 폭넓게 존재한다. 그런데 신자유주의에 대한 찬반 양분구조가 강화되면 이들의 입지가 축소되고 그와 함께 이들이 묶고 있던 중도세력들이 떨어져 나가 한나라당류의 보수적 신자유주의진영에 합류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한미 FTA를 둘러싼 사회적 쟁투과정은 이런 정치동학의 구조를 가장 잘 보여주었다. 따라서 민노당은 자신이 어디서부터 출발해야 하는지 좌표를 근본적으로 다시 설정할 필요가 있다.
  
  물론 필자 역시 '반한나라당 전선'론이 2007년 대선의 화두가 되기는 어렵다고 본다. 무엇보다 지금은 2002년 대선 때와 달리 반노무현, 반열린우리당, 반민주화세력의 정서는 있을지언정 반한나라당 정서라는 게 없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반한나라당' 구호가 정치적으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것을 너무 잘 간파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은 민주화세력이 자기 스스로에게 칼을 대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중도개혁세력이나 민노당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된다. 민노당이 노무현 정권이나 중도개혁세력과 가장 확실하게 차별화하는 길은 확실한 자기성찰의 모습을 보여주면 된다.
  
  그런 점에서 민노당에게는 열린우리당이 갖지 못한 엄청난 무기가 있다. 바로 민주노총과 전교조다. 민주노총과 전교조를 정치적으로 바로 세우는 것은 일차적으로 민노당에게 주어진 몫이다. 민노당은 한나라당이나 열린우리당과 달리 그들을 설득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바로 여기가 민노당이 자신의 정치적 가치를 인정받는 최대의 승부처이다. 여기에서 성공하면 단언컨대 민노당은 지지율 20%를 돌파할 수 있다. 이를 기반으로 민노당은 정국의 주도권을 쥐고 보수세력, 중도세력, 재벌세력들을 거세게 압박할 수 있다. 그러나 민노당은 이 지점에서 단 한 번도 처절하게 승부를 걸어본 적이 없다. 이는 안티전략에 의해 대체되고 은폐되어 왔다.
  
  '안티'를 넘은 '새로운 길'의 모색
  
  민노당은 안티·급진성이 항상 순결하고 가장 진보적이라는 사고를 버려야 한다. 안티·급진성이 신자유주의나 보수체제에 반드시 위협적인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급진적 안티세력의 존재가 보수주의적 헤게모니 체제의 등장을 합리화시켜 주는 보조적 기능을 할 수도 있다. '호남 대 반호남' '개혁 대 수구'처럼 정치적 헤게모니란 반대세력을 대척점으로 하여 자신을 확장시키기 때문이다.
  
  오늘날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한국사회에 던져진 가장 근본적인 도전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신자유주의가 문제라고 해서 반신자유주의가 해답이라는 인식은 대단히 이분법적 사고구조이다. 유럽에서 자본주의가 태동하던 초기에 자본주의가 가져온 더러운 착취와 무질서를 지탄하며 사유재산제도의 폐지를 주장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 같은 주장이나 행동은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신자유주의가 세계화와 동일한 것인지조차 아직 확증하지 못하고 있다.
  
  세계화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 우리는 안티전략을 새로운 전략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지금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현상에 대한 내재적 접근과 그것을 진보적으로 재구성해 가는 지루하고도 집요한 투쟁을 위한 장기적 구상이 필요한 때이다.
  
  운동정치의 수준에서는 반세계화운동도 분명히 의미가 있는 실천적 흐름이다. 그러나 제도정치의 수준에서 세계 여러 나라들의 대다수 좌파세력들은 안티를 넘어 다양한 형태의 제3의 길을 실험하고 있다. 제3의 길이 신자유주의에 대한 투항이라는 급진좌파들의 비판처럼 여러 가지 한계를 드러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성과들을 산출해 가고 있다는 사실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된다. 민주노동당의 앞길에 축복이 있기를 기원한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