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민주화운동 20주년을 기념하는 국제 학술대회 참석차 로스앤젤레스에 와 있으나 이곳에서도 관심의 초점은 단연 연말 대선이다. 1997년과 2002년, 반전에 반전을 거듭했던 지난 두 번의 대선 경험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여기 이국땅에도 적지 않다. '다이내믹 코리아'를 얘기할 때 그 역동성을 대선만큼 보여준 일도 사실 드물다.
하지만 한 걸음 물러서 보면 역동성이란 것은 여러 층위를 갖는다. 구조적 조건이 있고 국면적 상황도 있고 현상적 사건도 있다. 예컨대 지난 2002년 대선에서는 민주화 시대의 지속이라는 구조적 조건 아래 지역 및 세대 투표의 국면적 상황이 이른바 노풍(盧風, 노무현 바람)을 일으켰다. 봄에 거세게 불었던 노풍은 여름과 가을 이회창 후보의 대세론에 꺾였다가 11월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후보의 단일화로 다시 살아나 결국 대선 승리의 결과를 가져 왔다.
이번 대선 역시 이런 세 층위의 흐름을 눈여겨봐야 한다. 올해 대선이 1997년, 2002년 대선과 구분되는 구조적 조건의 특징은 민주화 시대가 갖는 영향력이 약화된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적지 않은 유권자들이 우리 사회에서 민주화는 상당히 성취돼 이젠 새로운 도약이 필요한 것으로 생각하는 듯하다. 한나라당의 높은 지지율은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에 대한 반사 이익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지만, 한나라당에 대한, 특히 유력한 두 후보에 대한 기대 또한 상당하다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
주목할 것은 민주화 시대가 가져온 아이러니다. 1987년 민주화 운동과 더불어 본격화된 민주화 시대는 1990년대 후반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결합해 사회적 양극화를 확대하고 그 결과 사회적 형평을 위한 민주화의 과제는 더욱 중요해졌다. 민주화의 과제가 보다 강조돼야 할 이 시기에 민주화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엷어지는 이 현상을 '한국 민주화의 역설'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한미 FTA와 민주화의 역설
이 역설의 정점에 바로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체결이 놓여 있다. 민주화 세력 가운데 중도개혁 세력, 그 중에서도 보수적 중도개혁 세력에 의해 추진된 한미 FTA는 양날의 칼이다. 우리 산업 및 무역구조를 바라볼 때 이른바 선진통상국가로의 전환은 나름 의미 있는 프로젝트다. 하지만 양극화 해소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이 마련되지 않은 채 추진된 FTA는 민주주의의 사회적 지반을 훼손시킬 가능성이 크다.
한미 FTA 체결 이전에 예상되는 선거 구도는 '성장이냐, 양극화 해소냐'로 나눠진 대립이었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지만, 양극화는 선거에서 이른바 전선을 가를 수 있는 뇌관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한미 FTA 추진으로 인해 이 뇌관은 폭발하지 않는, 물에 젖은 뇌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대선의 주요 구도가 보수 대 중도개혁의 대결로 나타난다면, 두 세력 모두 한미 FTA에 대해 찬성을 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문제가 선거 쟁점으로 부각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물론 한미 FTA가 주요 쟁점이 된다면, 진보의 대약진을 예상해 볼 수도 있지만 말이다.
이런 상황이 함축하는 바는 국면적 상황에서 이번 대선의 경우 계급투표가 그렇게 두드러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계급투표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대립 구도가 명확해져야 하는데, 한미 FTA 체결은 이 구도 자체를 뒤흔들어 놓고 있는 셈이다. 이점에서 이번 대선은 그 전선이 모호한 채 인물의 역량에 대한 평가가 주를 이루는 '인물 선거'가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민주화세력의 세대기반은 안전한가?
지난 2002년 대선에서 또 하나의 주목할 만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 세대투표 경향이었다. 당시 '386 세대'인 30대와 '신세대'인 20대는 민주화 세력에 힘을 실어 줌으로써 노무현 후보의 당선에 작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지난 5년 사이에 진행된 세대적 흐름에서는 20대의 탈(脫)이념화 경향이 두드러진다. 일각에서는 보수화라고 말하고 있지만, 보수화보다는 탈이념화가 더 정확한 개념일 것이다. 이들은 이념적이라기보다 탈정치적이고 실용적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대량소비 사회에 진입한 80년대 후반에 어린 시절을 보냈던 이들이 이런 성향을 갖는 것은 일견 자연스런 일이다.
게다가 이들의 삶 한가운데 놓여 있는 문제는 청년실업이다. 우리사회 청년 실업률이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은 편은 아니지만, 이들에게 실업은 사회적 좌절이자 공포다. 따라서 이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에 대한 전략은 이들의 정치적 선택에 큰 영향을 미친다. 여론조사에서 볼 수 있듯이 성장을 통한 실업 해소를 강조하는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에 대한 지지율이 20대에서 상당히 높은 것은 바로 이런 현실을 반영한다. 20대가 민주화 세력의 튼튼한 지지자였던 과거와는 분명히 다른 국면적 상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40대로 무게 중심을 옮긴 386 세대에서도 변화는 감지된다. 최근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강화된 이후 흔들리는 고용안정, 높아지는 사교육비, 불안해 보이는 노후 대책 등은 민주화 세력에 대한 이 세대의 지지를 유보하게 만들었고, 새로운 성장 패러다임에 관심을 기울이게 했다. 386 세대라는 동질성은 최근 정치권 내지 문화 영역에서의 386 세대에게만 유효한 것이지, 평범한 386 세대에게 그것은 이미 철지난 유행가일 것이다. 이런 흐름은 이미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표출된 바 있으며, 어떤 극적인 반전이 없다면 이번 대선에서 더 강화될지도 모른다.
중도의 양극화 비전과 후보구도가 관건
과거의 경험을 돌아볼 때 물론 현재의 지지 구도가 12월까지 그대로 진행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구조적 조건과 국면적 상황에서 민주화 세력에게 이번 대선 구도는 결코 유리하지 않다. 앞으로 변화의 가능성이 있다면 두 가지를 주목할 수 있다.
첫째, 한미 FTA 체결에도 불구하고 양극화가 선거의 주요 쟁점이 되는 상황이다. 최근 소득분배가 더 악화되고 있다는 보도에서 엿볼 수 있듯 양극화가 대선의 쟁점이 될 경우 이른바 '세계화의 패자(敗者)'들이 결집될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여기에는 보수 세력이 제시하는 성장을 통한 중산층 재육성론과 진보 세력이 제시하는 복지를 통한 사회적 약자 보호론의 틈바구니에서 중도개혁 세력이 과연 어떤 비전을 제시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다.
둘째, 현상적 수준에서 후보 구도가 어떻게 이뤄지는가도 주목해야 한다. 우선 한나라당이 분화될 경우 올해 대선의 결과는 1997년처럼 예측불허의 상황에 휘말릴 것이며, 중도개혁 세력이 분화될 경우 이번 대선은 1992년 대선과 유사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보수와 중도개혁 모두 단일 후보로 갈 경우, 현상적 수준에서 획기적인 변화가 없다면 앞서 지적한 구조적 조건과 국면적 상황이 선거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마지막 가능성으로 만약 한나라당과 중도개혁 세력이 모두 분화할 경우, 그 결과를 예측하기는 어렵겠으나 진보 세력의 후보가 크게 약진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지난 한 주 동안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내에서는 '말의 정치' 또는 경선규칙에 대한 열띤 공방전이 이어졌다. 이번 대선이 아직까지 '세력 간 경쟁'보다는 '세력 내 경쟁'에 머물러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우려스러운 것은 세력 내 경쟁이 지루하게 반복되면서 정작 필요한 세력 간 경쟁에 대한 검증의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게 된다는 점이다. 이러다가 유권자들은 두어 달 동안 겨우 몇 번의 상호 공방전만을 지켜본 다음 기표소 앞에 서게 될지도 모른다.
정치의 역동성이라는 것은 보는 이들을 다소 즐겁게는 하겠지만 그것이 정치의 발전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새로운 리더십에 대한 충분한 검증과 합리적인 선택이다. 대선 후보와 정치 세력들은 이제 국민들에게 눈을 돌려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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