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미는 보스톤의 허름한 동네에서 조그마한 가게를 하고 살아가긴 하지만 자기네 커뮤니티에서는 그래도 꽤 영향력을 갖고 사는 인물이다. 친구인 숀은 경찰이고 동네 건달들도 그의 말은 대체로 잘 듣는 편이다. 그리 행복하지도, 또 그렇다고 그리 불행하지도 않게 살아가는 지미에게 유일한 희망이자 기쁨 같은 존재는 바로 19살이 된 자신의 딸 케이티다. 무뚝뚝하고 거친 성격인 지미도 딸과의 관계에선 나름, 꼼짝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만다. 그런데 덜컥, 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딸이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하는 일이 벌어진다. 지미는 시체안치소에 발가 벗겨진 채 누워있는 케이티를 향해 터져 나오는 울음을 씹어 삼키며 이렇게 말한다. "너를 이렇게 만든 놈을 꼭 찾아 내겠어." 실제로 지미는 그렇게 한다. 경찰친구 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지미는 동네 불한당들을 모아 직접 살인자를 찾아 나선다. 지미가 찾아 낸 살인자는 또 다른 그의 오랜 친구 데이브. 지미는 가차없이 데이브를 처단하지만 안타깝게도 나중에 진범이 따로 잡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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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틱 리버 ⓒ프레시안무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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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으로 접어들수록 만드는 영화마다 걸작 아니면 손을 대지 않고 있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2004년작 <미스틱 리버>는 자신의 죽은 딸의 복수에 미쳐 사리분별을 잃어버린 아버지, 그리고 그 부정(父情)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집단의 광기를 그린다. 지미 역을 맡은 숀 펜의 광기 어린 연기는 이 영화를 오랫동안 기억하게 만든다. 숀 형사 역의 케빈 베이컨, 억울하게 죽음을 당하는 데이브 역의 팀 로빈슨 연기 또한 잊을 수 없는 모습들이다. 그런데 갑자기 왜 <미스틱 리버>가 생각나겠는가. 요즘 우리사회 돌아가는 형국이 영화속처럼 미쳐 돌아가는 몇몇 인물들 때문에 난리 굿을 치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신문사에 다니는 가까운 친구가 전화로 얘기했다. "요즘은 말여. 복수가 화두인 세상인 거여, 복수가. 당신은 어디 복수할 일 없는 겨? 근디 너는 안 되겠디야. 돈도 읎고 빽도 없잖여. 당신은 꿈도 꾸지 말랑께." 영화가 사회현실을 반영한다고 누가 얘기했던가. 내가 그랬던가? 근데 그거 다 거짓말인 것 같다. 지금 충무로가 '봇물처럼' 내놓고 있는 아버지 영화들을 보면 그 아버지들은 절대로 경호원을 데리고 다니며 사람들을 쇠파이프로 때리거나 아들보고 니가 맞은 만큼 때리라고 하지 않을 사람들이다. 영화속 아버지들은 아이큐가 60 언저리인 아들을 어떻게 하면 초등학교만이라도 졸업시킬까 눈물 콧물 다 빼는가 하면 뿔뿔이 흩어져 살아가는 큰아들 내외와 딸 부부, 그리고 막내 아들을 마누라 제삿날 오게 하려고 애쓰거나, 살인범으로 징역을 살다 하루 귀휴 허가를 받아 15살된 아들을 보러 가는 날 마음이 설레 어쩌지를 못한다. 이런 영화속 아버지의 모습이 다 거짓말이라는 얘기란 말인가.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게 진짜일 것이다. 지금의 부성애 영화들이야말로 현실 속 아버지들의 모습을 제대로 그려내고 있는 것들이다. 오히려 현실 속 일부 아버지가 영화처럼도 못살고 있는 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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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틱 리버 ⓒ프레시안무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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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을 일으킨 장본인도 장본인이지만 사실 더 나쁘고 아둔한 건 일부 언론들의 모습이다. 마치 이번 일이 자식 사랑이 지극한 탓에 벌어진 일이라며 여론을 호도한다. 그래서? 그 자식 사랑이 지극해서 <미스틱 리버>의 지미도 죄없는 데이브를 죽이지 않았는가. 이번 일을 지극한 자식 사랑때문이라고 슬쩍 미화시키는 언론이 있는 한 제2,제3,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심각한 청담동 사건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모두들 조용한 곳으로 불러다가 <미스틱 리버>를 단체관람시켜야 할 일이다. (*이 글은 영화주간지 무비위크 276호에 실린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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