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직후부터 정부 부처 장관들과 면담하고 지난 3월부터는 인천, 경남 등을 방문하는 현장대장정 일정을 소화하며 안팎으로 '대화와 소통'에 주력하고 있는 민주노총의 변화가 재계에 의해 제동이 걸릴 조짐이다.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은 지난 3월 19일 "5대 재벌 총수와도 만날 수 있다"며 재계에 손을 내밀었지만 현대를 제외한 삼성, LG, 롯데, SK 등 4개 기업들이 모두 곤란하다는 입장을 전달했다고 민주노총이 6일 밝혔다. 노동계의 대화 요청을 재계가 사실상 거부한 것이다.
재계, 민주노총의 대화 요구 모두 '거부'
이석행 위원장은 지난 3월 올해 사업계획 및 2007년 임단투 계획을 밝히는 자리에서 "서로 진정성이 담겨 있다면 누구와도 대화할 수 있다"며 "5대 재벌 총수와 한국경제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 관련기사 보기 : 민주노총 "5대 재벌 총수도 만나겠다")
그 이후 민주노총은 이석행 위원장의 제안에 바로 화답해 온 현대그룹을 제외한 4대 재벌그룹에 공문을 보내 면담을 공식 요청했다. (☞ 관련기사 보기 : "이건희 회장, 민주노총과 한번 만납시다")
하지만 삼성그룹과 LG그룹은 민주노총의 대화제안을 거절했다.
삼성의 전략기획실은 지난 3일 민주노총에 보낸 공문에서 "개별 기업이 민주노총을 만나 논의할 수 있는 내용이나 현안들이 많지 않다고 사료된다"며 "한국경영자총협회와 협의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LG그룹도 이와 비슷한 내용의 공문을 보내왔다.
롯데와 SK그룹은 공문을 보내지는 않았지만 민주노총과의 대화에 부정적인 입장을 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지난 3월 20일 이석행 위원장과 박정인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이 오찬 회동을 가진 현대그룹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기업과 민주노총의 면담은 모두 불발로 끝날 것으로 보인다.
"'춘투 없는 봄' 재계가 '딴지' 놓아서야…"
재벌그룹들의 이같은 '대화 거부'에 대해 민주노총 관계자는 "언론에서 올해를 두고 '춘투(春鬪) 없는 봄'이라며 칭찬하고 있을 만큼 민주노총은 대화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노사관계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재계가 이런 태도로 나오며 '딴지'를 거는 것은 안타깝다"고 비판했다.
실제 올해 봄은 노사분규 발생 건수와 근로손실일수 등이 급격히 낮아졌다. 노동부 집계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노사분규 발생 건수는 12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19건에 비해 3분의 1이 줄었다. 근로손실일수도 4만2278일로 지난해 8만4378일에 비해 절반으로 감소했다. 이같은 '춘풍(春風)'에는 최근 대화를 강조하고 있는 이석행 위원장의 역할과 의지가 강력하게 작용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하반기도 상반기만큼 조용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최종 서명과 비준 절차 등을 놓고 이미 노동계가 '총력 투쟁' 의지를 밝히고 있고, 7월 시행되는 비정규직 관련 법과 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 방안(로드맵) 관련 법의 시행령을 놓고 벌써부터 노동계가 반발하고 있다.
또 금속노조가 올해 첫 대규모 산별교섭을 앞두고 있어 사용자단체 구성 등을 놓고 재계와 대립할 가능성이 높다. 우문숙 민주노총 대변인은 "경총과 얘기해야 하는 사안들도 물론 있지만 삼성 등 대기업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지대한 만큼 개별 기업과 나눠야 하는 얘기도 있다"고 말했다.
재벌 총수들과 민주노총 위원장의 면담이 성사된다 할지라도 이를 통해 당장 가시적인 성과물을 나올 리는 만무하다. 하지만 언제나 대립과 갈등 관계에 있던 노동계와 재계의 수장들이 마주 앉아 사회 현안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정부와 재계가 강조하는 '생산적인 노사관계'의 첫 걸음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위원장의 제안이 관심을 모았었다.
민주노총은 "이번주 내로 다시 공문을 보내 면담에 대한 민주노총의 의지를 보여줄 것"이라고 밝혔다. 재계가 거듭된 노동계의 대화 요청에 어떤 태도를 보일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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