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요즘 드라마엔 왜 20대 주인공이 사라졌나"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요즘 드라마엔 왜 20대 주인공이 사라졌나"

[20대 보수화? 그 이면③ㆍ끝]"'20대 보수화'는 위험신호"

교내 24시간 편의점 유치. 패밀리레스토랑 빕스·피자헛 20% 할인, 샐러드바 프리비 20% 할인, 던킨 도넛 커피 5잔에 1잔 무료서비스 제공….

최근 있었던 서울시내 한 대학의 총학생회 선거에서 쏟아진 공약들이다. NL(민족해방), PD(민중민주) 등 정파 차이로 총학생회 선거 구도가 짜이던 이전과 달리 지금의 대학생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실질적이고 개인적인 '이득'이다. 이를 통해서도 20대들의 변화를 단적으로 엿볼 수 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경쟁과 성장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20대는 분명 '보수화'됐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보수화됐나? 이들이 보수화됐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평균소득 88만 원, 승자독식 받아들인 첫 세대"

10%의 안정적 일자리, 아니면 '나락'. 외환위기 이후 10년, 신자유주의적 경제 질서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현 한국사회에서 20대들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만큼 젊은이들이 기존 경제체제에 편입되는 통로가 좁아졌다는 것.

"약간 과장된 측면에 있지만 20대의 월평균소득을 계산해보면 88만 원이다. 이들은 탄탄한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굉장히 좁은 문을 통과해야 한다. 이 집단에 속하는 것 이외에 다른 식의 삶의 대안은 이들에게 주어져 있지 않다."

우석훈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20대가 경제적으로 보수화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 신자유주의적 경제질서가 확산되면서 20대들이 노동시장에 안정적으로 진입할 수 있는 통로가 극도로 좁아졌다. ⓒ프레시안

물론 20대 중에는 학생 등 비경제활동인구가 다른 세대에 비해 월등히 많아 이들의 월평균소득 88만 원을 곧바로 다른 세대와 비교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이들이 현 경제체제에서 어떤 위치를 점하고 있는지는 보여주는 지표라고 해석할 수는 있다.
요즘 드라마 주인공 중엔 왜 20대가 없나

우석훈 연구위원은 20대는 '소외된 계층'이라고 주장했다. '가난한' 20대는 구매력 측면에서도 부모로부터 용돈을 받는 10대보다 더 하위 그룹으로 간주된다는 것. 그래서 기업들은 마케팅에서 20대를 크게 고려하지 않는다.

이런 현상이 단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TV 드라마다. 드라마는 그 시대 대중들이 '선망'하는 것을 가장 민감하게 반영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 연구위원은 "요즘 소위 황금시간대 드라마 주인공 중엔 왜 20대가 없는가"를 물었다.

90년대만 해도 인기를 끌던 트랜디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대학생 내지는 20대 후반의 직장 초년생이었다. 하지만 최근의 드라마 주인공들의 나이는 30대 중후반에서 40대다. 마흔을 넘은 여배우들이 각종 드마라 주인공을 차지하면서 인기를 누리는 현상은 예전에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었다. 우 연구위원은 "이는 30대 후반에서 40대가 가장 구매력이 있기 때문"이라면서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20대는 소외되고 있다"고 말했다.

날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생존경쟁'도 이들의 보수화를 낳은 원인 중 하나지만, 직면하고 있는 공동의 문제를 서로 힘을 합쳐 해결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점도 다른 세대와의 차이를 가져왔다.

"80년대 '노(勞)-학(學) 연대'는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을 개선하는 것이 길게 보면 자신들의 삶을 개선하는 것이라는 인식에 기반했었다. 그러나 지금의 20대들은 협력을 통해 문제를 풀어본 경험이 없다. 그래서 '협력게임'을 통한 집단적 해법보다는 개별적인 해법을 찾는다. 이들은 '승자독식'을 받아들인 첫 번째 세대다." 우 연구위원의 말이다.

경쟁에서 좀 더 유리한 입지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일에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대학 학점 4.5로도 부족하다"면서 영어 공부에 목을 매고, 기업의 인턴 프로그램 등 간접 사회경험에 매달리게 된다.

또 사적인 노력을 통해 경쟁을 뚫고 나가야 한다는 인식은 곧 공정한 경쟁의 룰이 적용되는 사회가 바람직한 사회라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일정 정도의 '안정'을 보장받을 수 있는 길이 워낙 좁다보니 '약자'에 대해 허용되는 배려도 협소할 수밖에 없다. 이들이 경쟁과 성장의 법칙을 받아들이면서 '복지'에 대해선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성장에 대한 끝없는 갈망....'황빠' 중엔 20대가 많았다

보수화된 20대가 성장담론을 내면화하고 있다는 점은 지난 2005년 겨울 한국을 들썩였던 '황우석 파동' 때도 드러났다고 우 연구위원은 주장했다.

이들 20대는 윗 세대보다 생명공학 등 첨단과학에 훨씬 익숙한 세대다. 그만큼 생명공학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잘 아는 세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를 지지한 소위 '황빠'들 중에는 과학기술에 대해 잘 모르고 국가주의에만 사로잡힐 수밖에 없던 40-50대에 비해 20대가 결코 적지 않았다. 이들 20대 '황빠'들의 강렬한 열망은 생명공학을 통한 국가 경쟁력 확보, 즉 경제성장이었다. '성장'에 대한 강한 열망이 합리적 이성의 작동을 마비시킨 셈이다.

하지만 젊은 세대의 경제적 보수화 현상은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홍성태 상지대 교수는 "전 세계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가 확장되면서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 문제에 봉착했다는 것. 이는 사회민주주의 국가인 스웨덴에서 부유세 폐지 움직임이 이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미국과 다른 경제질서를 구축해 온 유럽형 복지국가들도 예외가 아니다. 따라서 '20대 보수화'는 사회구조적인 현상이며, '자기중심적이면서 냉소적인' 20대들은 신자유주의 체제라는 구조의 산물이자 그 희생양이라는 것이다.
한국같은 나라는 없다

'20대 보수화'가 전세계적 현상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적 특수성을 찾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도 없는 상태에서 신자유주의 경제질서만 무작정 빠른 속도로 도입되고 있는 한국에서 20대들은 아무런 대안 없이 '무한경쟁'으로 떠밀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 연구위원은 스웨덴, 프랑스, 스위스, 일본 등의 사례를 통해 한국도 정부가 나서서 최소한의 보호막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웨덴과 프랑스는 노조에서 20대들의 이해를 대변한 사례. 특히 스웨덴은 사회진출을 준비하는 20대들과 협력 프로그램을 많이 만들어 이를 기반으로 20대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책을 노조에서 주로 건의해 왔다. 그러다보니 자연 노조가입률도 높아졌다.

프랑스에서 기업이 26세 미만의 청년을 채용하면 2년 동안에는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최초고용법'(CPE)이 지난 4월 좌초된 것도 노조와 20대의 협력 사례로 꼽을 수 있다.

연방국인 스위스는 지방정부가 20대 고용 문제를 완화하기 위한 정책을 폈다. 지방정부가 공공일자리를 만들어서 20대를 우선적으로 고용했다.

일본은 법원이 나선 사례. 일본 대법원은 비정규직이 정규직의 80% 이하의 월급을 받는 것을 불법이라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한국노동연구원 조성재 연구위원은 지난 2006년 발표한 논문에서 동일 직종에서 한국, 중국, 일본의 정규직과 비정규직 임금 격차를 비교했을 때, 한국의 임금 격차(비정규직이 정규직의 60% 수준)가 가장 컸다고 밝혔다. 일본의 경우, 비정규직의 임금은 정규직 1년차의 임금과 같은 수준이었으며, 복리 후생과 사회보험 등 처우에서만 차이를 보였다. 조 연구위원은 "일본에서는 그것이 단순히 경제문제인 반면 한국에서는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진보 세력, 박정희식 성장 뛰어넘는 대안 보여줬나
▲'승자독식'의 법칙이 지배하는 사회는 결코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점에서 한국 사회는 새로운 대안을 고민해야만 한다. ⓒ프레시안

이처럼 20대의 경제적 보수화는 신자유주의로 인한 양극화가 낳은 결과다. 따라서 이들 젊은 세대의 변화는 사회적인 '위험' 신호다. 홍성태 교수는 "이런 추세로 양극화가 계속될 경우 사회 갈등과 대립이 전면화될 수 있다"며 "더 심각할 경우 사회해체로까지 나아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홍 교수는 이 문제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으로 20대가 '낡은 개념'으로 치부하고 있는 '복지국가'를 제시했다. 지금처럼 '약육강식'과 '승자독식'의 법칙이 지배하는 사회는 결코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

그는 "20대는 복지국가가 무엇인지 제대로 배워보지도 못하고 경쟁 속으로 빨려들어간 것"이라며 "30-40대가 전반적인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복지국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점에서 진보 세력들은 보수화된 20대들을 탓하기 전에 '박정희식 성장주의'를 뛰어넘는 대안을 보여준 적이 있는지 반성해야 한다고 홍 교수는 지적했다.

"20대들이 노동운동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한다고 비난하지만 정규직 중심의 현 노동운동이 대부분의 20대들이 처음 사회에 진출하면서 경험하는 비정규직 문제를 정말 자기 문제로 고민해 왔나. 노동운동 세력이 현 한국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할 능력과 의지가 있는가. 이런 질문은 노동운동뿐 아니라 다른 진보 진영에게도 해당되는 것이다. 노무현 정권 들어 권력의 핵심을 차지한 일부 386 세력들처럼 진보진영이 다 저마다 제 잇속 차리는 데에만 몰두하고 있는 것 아니냐. 20대들이 이걸 모를 거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지금이라도 진보 세력이 이같은 사회적 흐름을 명확히 인식하지 못 할 경우 '20대 보수화' 현상은 더욱 강화될 것이며,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던 진보운동마저 모두 몰락할 것이라고 홍 교수는 경고했다. 그는 "한국은 세계 11위의 막대한 경제력을 동원해 '국가 재건'을 해야 할 상황이며, 그런 역량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와 한국 사이의 거리…'20대 보수'는 한나라당 지지세력 아니다

20대들이 경제적으로 보수화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현 한국 상황에서 정치적 보수세력인 한나라당을 지지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라는 지적도 많다. 올해 초 각종 여론조사에서 20대들의 한나라당 지지가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지만, '민주주의'를 경험한 20대들을 기존 보수세력과 동일시할 수는 없다는 것.

홍성태 교수는 "한국에서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의 개념에 대한 혼동과 왜곡이 심하다"며 "한국의 '보수'와 세계사적 '보수' 사이에는 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홍 교수는 한국의 보수는 그간 반민족적, 반민주적 행태와 부정부패를 저질러 왔다는 점에서 청산해야 할 대상이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한국에서 진보와 보수는 추구하는 정책적 차이에 앞서 '진보는 좋은 것', '보수는 나쁜 것'이라는 이미지가 덧씌워져 있다는 것.

그는 또 "보수와 진보의 내용은 역사적으로 계속 바뀌어 간다"며 "현 시대에는 정치뿐 아니라 경제,문화, 자연(생태) 등을 잣대로 놓고 수구, 보수, 개혁, 진보를 나눠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개인의 존재 가치를 부정했다는 점에서 마르크스 주의도 이제는 극복해야 할 대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런 점에서 세계사적인 차원에서 나타나는 '보수화된 20대'들은 국가나 집단의 폭력 문제에 대해서는 훨씬 더 예민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종래 국가주의적 사회주의자들보다 더 진보적"이라면고 강조했다.

진보와 보수를 나누는 잣대로 경제만이 아니라 '개인주의'를 또 다른 축으로 포함시켜야 한다는 논의도 한국 사회의 이념 지도를 다시 그리기 위해서는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1997년 영국의 존 블런델(John Blundell)과 브라이언 고스초크(Brian Gosschalk)는 이념적 구분을 위해 '경제적 자유'를 한 축, '개인적 자유'를 다른 한 축에 설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경제적 자유는 추구하나 개인 자유는 통제해야 한다는 보수주의(conservative)△경제적 자유와 개인적 자유 모두 보장돼야 한다는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s) △경제적 자유는 국가가 통제해야 하지만 개인적 자유는 보장해야 한다는 사민주의(socialists)△경제적, 개인적 자유 모두 국가가 통제해야 한다는 권위주의(authoritarian) 등 4가지로 정치적 태도를 구분했다. 이들의 조사에 따르면, 영국에서 약 1/3이 보수주의자, 20% 가량이 자유주의자, 18%가 사민주의자, 13%가 권위주의자 등으로 나타났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