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잉그릿드 버그만이 사랑했던 남자, 로버트 카파의 사진전에 가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잉그릿드 버그만이 사랑했던 남자, 로버트 카파의 사진전에 가다

[북앤시네마] 3월 29일부터 5월 26일까지 예술의전당 디자인미술관에서

전설의 사진작가 로버트 카파. 영화광들에게는, 역시 전설의 여배우로 알려진 잉그릿드 버그만의 한때의 연인으로 기억되는 남자이기도 하다. 앙리-카르티에 브레송과 함께 세계적인 사진작가 그룹인 매그넘(MAGNUM)을 창립했던 로버트 카파는 전쟁의 참상을 담은 수많은 사진과 함께 "만약 당신의 사진이 충분하게 만족스럽지 않다면, 당신은 충분히 가까이 다가가지 않은 것이다"와 같은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일명 포토 저널리즘이란 말은 그의 사진으로부터 유래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국내에서는 그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프레시안 무비가 카파의 전시회를 다녀왔다.
Robert Capa, 파리의 어느 카페에서, 1952 루스올킨 촬영 | ROBERT CAPA © from 2001 to 2007 By Cornell Capa/Magnum Photos/유로포토-한국매그넘
로버트 카파의 본명은 앙드레 프리드만(Andre Friedmann). 1913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유태인 양복재단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17세때 공산당원을 만났던 일이 비밀경찰에 적발되면서 독일로 망명을 해야 했다.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강연을 하고 있는 레온 트로츠키의 사진을 찍어 슈피겔지에 게재함으로써 사진기자로 데뷔한 그는 히틀러가 정권을 잡은 뒤 1933년에 파리로 옮겨왔고, '로버트 카파'라는 이름으로 개명한 뒤 본격적으로 사진을 찍게 된다. 스페인 내전을 취재하며 특히 공화군 병사의 죽음을 생생하게 포착한 사진으로 유명해진 로버트 카파는 이때 스페인 내전에 함께 참전했던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교분을 맺었으며, 한편으로는 그의 사진인생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 연인 게르다 타로를 잃었다. 전쟁의 화려한 스펙터클보다는 이면의 참상과 전쟁 하 인간의 상처를 담은 그의 사진들은 아마도 이 경험의 영향이 결정적이었다고 후세들은 평가한다. 다양한 잡지들을 위해 중일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의 각 전쟁터를 누비며 사진들을 찍었지만, 1차 세계대전 때부터 '적국'이었던 헝가리 출신이었으며 헝가리 여권으로 자신의 신분증명을 해야 했던 로버트 카파에게 많은 제약을 받았고, 전쟁이 끝난 뒤에야 그는 미국 시민으로 귀화하게 된다. 잘생기고 수려한 외모, 술과 파티와 여자와 도박을 좋아했던 사교성 넘치는 성격, 작품으로 쌓은 명성 등으로 로버트 카파는 사교계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잉그리드 버그먼으로부터는 청혼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게르다 타로의 죽음(그녀 역시 사진기자였고, 스페인 내전 취재를 하다가 탱크에 치어 죽는다)으로 지워지지 않는 상실감을 겪었고 그 자신 전쟁 종군기자로서의 정체성이 강했던 탓에 카파는 여러 번에 걸친 사랑을 경험하면서도 결코 결혼을 하지 않은 채 독신으로 지냈다. 잉그리드 버그만과 사귈 당시 잠깐 영화현장에서 사진을 찍었던 그는(히치콕 감독의 <오명>에선 이름을 올리지 않고 스틸기사로 일했고, 험프리 보가트가 주연을 맡은 존 휴스톤 감독의 <비트 더 데블>에서 정식 스틸기사로 일하기도 했다. 그러나 곧 헐리웃으로 대변되는 쇼비즈니스 계의 생리에 환멸을 느끼고는 이스라엘 독립전쟁을 취재하러 떠났고, 베트남에서의 전세가 급변하던 시기에 인도차이나 전쟁을 취재하기 위해 떠나게 된다. 그리고 1954년 그가 41세이던 해,'전설적인 종군기자'라는 명성답게 그는 사진을 찍던 중 지뢰를 밟고 사망한다. . 카파이즘, 전쟁의 참상과 이면을 들추다
미군과 전쟁고아, 영국런던, 1943년 | ROBERT CAPA © from 2001 to 2007 By Cornell Capa/Magnum Photos/유로포토-한국매그넘
'포토 저널리즘의 신화 - 로버트 카파 전'이라는 이름 하에 열리고 있는 이번 전시회는 4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어 총 140여 점의 작품을 전시한다. 각각의 섹션마다 '포토저널리즘의 신화의 탄생', '전쟁의 실상과 휴머니즘', '자유로운 보헤미안', '전설이 된 사진작가'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데, 이중에도 중심이 되는 것은 단연 두번째 섹션인 '전쟁의 실상과 휴머니즘' 섹션으로, '전쟁의 실상과 그 이면의 휴머니즘', 'D-Day 신화의 탄생', '승리/해방'이라는 소주제로 나뉘어져 있다. 스페인 내전을 비롯, 제2차 세계대전의 각 전투들을 커버했던 종군기자로 명성을 날렸던 로버트 카파답게 가장 많은 사진이 이 섹션에 몰려있고, 이 사진들이야말로 로버트 카파 사진의 정수라 할 만하다. 후배 종군기자들에게 '카파이즘'이라 불리는 사진 철학을 남긴 그의 전쟁사진들은 '용감하게 활약하는 연합군'의 모습이나 전쟁이 보여주는 화려한 스펙터클의 모습보다는, 전쟁 이면에 감춰진 사람들의 긴장감과 공포, 두려움과 황량한 폐허들을 담담히 사진에 담음으로써 전쟁의 모습을 생생히 전달한다. '전쟁의 실상과 그 이면의 휴머니즘'은 전투가 끝난 뒤 폐허가 된 마을이나 작전회의를 하고 있는 장교들, 작전 회의 브리핑을 듣고 있거나 전투 투입 직전 긴장감에 휩싸인 채 대기하고 있는 병사들, 혹은 잠시 짬을 내 쉬고 있는 병사들, 그리고 황폐해진 마을에서 피난을 떠나거나 전쟁고아가 된 아이들, 그리고 자식을 잃고 오열하는 어머니들을 찍은 사진들이다. 'D-Day 신화의 탄생'은 로버트 카파의 사진들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작품들, 즉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수행하고 있는 병사들을 가까이에서 담은 사진들로 채워져 있다. 온갖 전투지를 다니며 심지어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곳에 낙하산을 타고 뛰어내리면서 사진을 찍는 등 그 누구보다도 전쟁 깊숙이 들어가 사진을 찍었던 카파이지만 상륙작전에 투입된 전투정에서 다른 군인들과 함께 노르망디 오마하 해변에 상륙했던 카파도 이 때만큼은 긴장했던지, 사진들의 초점이 조금씩 빗나가 있다. 그나마 이 사진들은, 당시 그가 속해있던 라이프 지에서 그의 조수가 사진을 인화하며 너무 흥분한 나머지 용제를 잘못 써서 100여 장이 넘는 사진 중 겨우 건진 11장의 사진들이다. 이 사진들이 라이프지에 실리면서 밑에 붙었던 캡션이 바로 'Slightly Out Of Focus'인데, 직역하면 '살짝 초점이 나간'이 되지만 우리말로는 '그때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라는 좀더 시적인 표현으로 번역되어 널리 알려져 있다. '승리/해방'은 드디어 파리로 입성한 연합군들과 파리 시민들이 승리를 만끽하는 장면들, 또한 독일군의 아이를 임신한 여성들이 머리를 박박 깎인 채 군중들로부터 수모를 당하는 장면을 담은 사진들을 모아놓고 있다.
노르망디상륙작전, 프랑스 오마하해변, 1944년, 6월6일 | ROBERT CAPA © from 2001 to 2007 By Cornell Capa/Magnum Photos/유로포토-한국매그넘
이밖에 첫번째 섹션인 '포토저널리즘의 신화의 탄생'은 카파의 초기 사진들을 묶었다. 그가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처음 매체에 실은 레온 트로츠키의 사진(이때 사진의 저작권 표시는 카파의 본명인 '프리드먼'의 이름으로 표기되었다)이나 스페인 내전 당시 병사의 죽음을 찍은 사진 등이 이 섹션에 전시되어 있다. '자유로운 보헤미안' 섹션은 그가 좀더 사적인 친분의 인물들을 찍은 사진들을 모아놓은 섹션이다. 스페인 내전 때 교분을 쌓은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로버트 카파는 '파파'(아빠)라고 부르며 따랐고, 이 섹션에는 2차 대전 중 유럽으로 달려온 헤밍웨이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 그리고 파블로 피카소가 매우 사적인 시간을 보내는 장면들을 찍은 사진, 그리고 2년간 사귀었던 잉그리드 버그만이 히치콕 감독의 영화 <오명>의 촬영현장에서 연기 중인 모습을 담은 사진 등이 포함돼 있다. '전설이 된 사진작가' 섹션은 2차 대전 이후 그가 일본에서 찍은 사진 몇 점, 그리고 그가 남긴 최후의 사진들이 전시돼 있다.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지뢰를 밟고 사망한 그가 남긴 마지막 사진들은 2차 대전 때의 사진들과 마찬가지로 군인들을 매우 가까이에서 잡은 사진들이다. 전시장 내에서는 이외에도 로버트 카파의 생애를 다룬 앤 메이크피스(Anne Makepeace)감독의 다큐멘터리, <로버트 카파 : 전쟁과 사랑 Robert Capa: In Love and War>가 비디오로 상영되어 전시장 방문객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2003년 선댄스영화제에 초청된 이 작품은 로버트 카파의 작품들을 통해 그의 일생과 예술세계를 정리하는 90분짜리 작품으로, 특히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찍을 때 카파의 사진들이 자신에게 얼마나 많은 영감을 주고 참조가 되었는지 밝히고 있기도 하다. 아쉽게도 한글 자막은 없지만 카파가 찍은 사진, 그리고 카파를 찍은 사진들 위주로 이미지가 구성되어 있는 만큼 영화를 이해하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 현대 전쟁사진들이 주는 교훈과 의미 "만약 당신의 사진이 충분하게 만족스럽지 않다면, 당신은 충분히 가까이 다가가지 않은 것이다." 몇 년 전 모 디지털 카메라의 광고에 쓰인 이 카피는 바로 로버트 카파가 남긴 말이다. 찍으려는 대상에 최대한 가까이 근접해 사진을 찍곤 했던 로버트 카파의 이 말은 그러나 딱히 물리적 거리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피사체에 대해 사진 찍는 이의 감성적인 애착과 그 본질을 이해하려는 노력 등을 포함한다. 그러나 전쟁의 장면을 생생히 전달하는 오늘날의 사진과 동영상들은, 수전 손택이 그녀의 저서 [타인의 고통]에서 지적한 대로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기보다 오히려 '광대한 스펙터클'로서 소비되기 위해 제공되는 경향이 분명히 존재한다. 이미 학살의 이미지에 너무 많이 익숙해져버린 우리에게 전쟁을 증오하면서도 그 누구보다 전쟁에 가까이 접근해 사진을 찍었던 로버트 카파의 사진들이 주는 메시지가 갖는 의미도 그만큼 복잡해졌다 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사진들이 주는 의미는 명확하다. 인간 신체의 연장으로서 카메라를 다루었던 로버트 카파는 전쟁을 증오했고, 전쟁이 주는 상처와 그 파괴력이 어떠한 것인지 자신의 사진을 보는 사람들이 알기를 원했다. 아마도 로버트 카파가 아직 살아있다면, 자신의 사진이 전쟁의 스펙터클을 보다 노골적인 시각적 쾌감을 위해 소화되는 것을 못마땅해 했으리라.
국내에 로버트 카파에 관련된 책은 두 권이 출판돼 있다. 하나는 로버트 카파가 직접 쓴 2차대전 종군기록인 [그때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이고, 또 하나는 알렉스 커쇼가 쓴 평전 [로버트 카파 - 그는 너무 많은 걸 보았다]이다. 잘 생기고 사진도 잘 찍었을 뿐 아니라 글솜씨도 좋은 로버트 카파의 종군기록은 뉴욕의 스튜디오에서 굶주린 배 때문에 일어날 기력도 없어 침대에 누워있던 그가 '콜리어스'지로부터 전쟁사진 의뢰를 받는 시점으로부터, 전쟁이 끝나는 시점까지 로버트 카파 자신의 기록을 다룬다. 유머 감각 넘치는 그의 글은 2차대전 당시 그의 동선뿐 아니라 그가 겪은 사랑, 그리고 전쟁의 와중에도 잃지 않았던 유머와 삶에 대한 낙천성과 같은 카파의 성격이 생생히 묘사돼 있다. 전시회에 전시된 작품들 상당수가 도판으로 실려있어, 각 사진들의 뒤에 얽힌 이야기들도 알 수 있다. 반면 알렉스 커쇼의 책은 그의 탄생부터 죽음까지, 그의 종군기록뿐 아니라 사생활, 그의 사진들에 얽힌 에피소드 등을 폭넓게 다루고 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