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펀트 ⓒ프레시안무비 | |
엉뚱한 얘기처럼 들리겠지만 나는 오 부장이 이 글을 쓰면서 마이클 무어의 <볼링 포 컬럼바인>보다는 구스 반 산트의 <엘리펀트>를 떠올렸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큐멘터리인 <볼링 포 콜럼바인>은 총기구입이 자유화돼있는 것을 넘어 총기구입을 '부추기는' 미국의 사회구조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작품이다. 반면에 극영화인 <엘리펀트>는 표면적으로는 남들과 전혀 다를 것 없어 보이던 평범한 두 소년이 알고 보니 그 내면은 갈갈이 찢겨져 있었음을 파고들었던 작품이다. 버지니아주 경찰과 FBI는 조승희의 범행동기가 여전히 오리무중이라고 발표했지만 그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는 마이클 무어 식의 사회구조적 보고서보다는 구스 반 산트의 심리분석 보고서를 더 많이 참조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점은 우리의 언론들에게 더 많이 적용되는 얘기다. 사건이 터지고 열흘간 아노미의 현상이 지배했을 때 대다수의 국내 언론들이 사건의 본질과 그 핵심을 추적하지 못한 것은 <엘리펀트>같은 영화를 제대로 알지 못했던, 문화적 식견의 부족 탓이 아니었을까. <엘리펀트>는 2003년 칸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인 황금종려상과 감독상을 수상할 만큼 그 뛰어난 작품성을 인정받았지만 막상 2004년 8월 국내에 개봉됐을 때는 예술영화관에서 단관개봉되며 순식간에 사라지는 비운을 맛봐야만 했다. 세상에 대해 정확한 시선을 담아낸 작품일수록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홀대받는 사회, 그리고 그런 영화문화. 이런 현상이 계속되는 한 버지니아텍과 같은 사건이 언젠가 우리사회에서 벌어지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고 말한다면, 지나치게 방정맞은 생각일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엘리펀트 ⓒ프레시안무비 | |
영화는 이제 단순히 현실을 겉모습을 모사하는 차원을 넘어 현실세상의 내면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좋은 영화라면 응당 그렇다. 영화산업이 극단적으로 양극화되가고 있다는 것은, 단순하게 돈과 관련된 얘기만이 아니다. 진실의 목소리를 담아내고 있는 작품들이 끝없이 창고 속에 쌓여만 가고 있다는 얘기다. 곧 오락성만이 넘쳐나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시즌이 시작된다. 영화를 보면서 정신적으로 더 황폐해지는 길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뭔가 의미있는 생각을 되새기는 기회로 삼을 것인가는 철저하게 우리 자신들의 몫이다. (*이 글은 영화주간지 '무비위크' 275호에 실린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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