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공대 참사의 범인인 조승희 씨가 유달리 남성의 성공을 강조하는 한국사회의 문화적 분위기 속에서 똑똑한 누나의 빛에 가려진 삶을 살았다는 보도가 나왔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21일 조 씨 부모의 주변 사람들의 증언을 토대로 성공해야 한다는 이민자들의 강박관념과 "성공이냐 실패냐의 두 길만 있는" 이민자 사회에서 조 씨가 실패한 사례의 전형처럼 받아들여졌던 분위기가 조 씨의 좌절감의 원인이었을 수도 있다는 분석을 전했다.
"이민자들에게는 성공이냐 실패냐의 두 길만 있을 뿐"
<LA타임스>는 "아무도 그렇게 끔찍한 범행을 준비하고 실행에 옮긴 조 씨의 마음 속을 알 수 없지만 몇 가지 실마리는 있다"는 있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신문은 그 스스로도 이민자인 캘리포니아대학의 에드워드 장 교수의 말을 전하며 "한국의 이민자들에게는 성공 혹은 실패의 두 가지 밖에 없으며 중간은 없다"고 밝혔다. 신문은 "아시아계 이민자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교육과 성공을 중시한다"고 덧붙였다.
조 씨의 부모들도 여타의 이민자들과 마찬가지로 성공을 위해 고군분투했다. 신문은 조 씨의 부모들의 이민 과정과 배경을 상세히 전하며 "성공에 대한 압박이 상당했다"고 보도했다.
특히 조 씨 가족의 경우 이민 왔을 당시 외할머니의 사망에도 불구하고 한국으로 들어갈 비행기 요금이 없었을 정도로 심각한 생활고를 겪었다고 신문은 전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자식들의 '성공'은 조 씨 부모에게 더욱 절실했을 것.
부모가 성공에 대한 압박이 클수록 자식들에게도 그와 같은 기대가 커질 수밖에 없다. 더욱이 프린스턴 대학을 나온 조 씨의 누나와 조승희씨는 늘 비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고 남성의 성공을 더 중시하는 한국 사회의 문화적 배경 속에 그것이 조 씨에게 과도한 스트레스로 작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조 씨 엄마는 딸자랑은 잦았지만 아들 얘기 거의 안해"
신문은 조 씨 어머니가 일하던 세탁소의 주인 수산나 양 씨가 "조 씨의 어머니는 딸에 대해 상당히 자랑스러워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반면 조 씨의 모친은 아들에 대해서는 양 씨에게 거의 말하지 않았다는 것.
신문은 조 씨의 어머니가 "딸이 아니라 아들이 프린스턴 대학을 졸업하기를 바랬었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신문은 "미국에서 한국인 이민자들의 사회는 섬과 같은 경향이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조 씨 가족들은 특이하게도 은둔자처럼 보였다"는 것. 신문은 "그들은 이민자들의 사회적 활동과 네트워크의 중심인 교회에도 정기적으로 나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한국계 미국인 변호사인 서 씨(Tong S. Suhr)는 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우리의 삶은 다른 이들이 우리에게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체면'에 의해 지배 당한다"고 말했다. 그는 "가족이 아닌 다른 이에게 (가족의 문제를) 상담하는 것은 내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다는 것을 시인하는 것으로 부끄러운 일"이라며 "그래서 우리는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하곤 한다"고 말했다.
조 씨의 가족들이 이민자 사회의 중심인 교회에도 잘 나가지 않고 '은둔자'와 같은 생활을 한 데는 아들의 실패라는 상황의 영향이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
"누나는 성공의 전형이었던 반면 조승희 씨는 실패를 상징했다"
캘리포니아 대학의 장 교수는 "여자(조 씨의 누나)는 성공한 이민자의 전형이었던 반면 남자(조 씨)는 실패를 상징했다"고 말했다. 그는 "조승희는 바보였고 학생들도 그를 놀렸다"며 "그는 도움이 필요한 정신병자였다. 그의 부모와 친구들은 그 점에서 있어서 실패했다. 사회 역시 실패했다"고 말했다.
조승희 씨가 어린 시절부터 내성적이고 말이 없었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진 바 있다. 심지어 이웃들도 그의 존재를 모를 정도였다.
조승희 씨의 고모할머니는 조 씨가 "유순하고 행동거지가 바른 아이였다"고 회고했다. 그는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승희는 불러도 대답을 잘 안하고 그저 처다보기만 할 정도로 말이 없다고 말하곤 했다"며 "그리고 그런 증상은 그들이 미국으로 이민 간 후에 더욱 심해졌고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말을 하지 않는 문제로 크게 낙심하곤 했다"고 말했다.
말이 없는 조승희 씨가 누나의 '성공'과 상대적으로 아들의 '실패'를 낙담했을 부모를 바라보면서 혼자 감당해야 했을 상처가 이번 사태를 빚은 원인 가운데 하나는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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