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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사회의 차별에 동화된 '세계인'은 의미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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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사회의 차별에 동화된 '세계인'은 의미 없죠"

[인터뷰] 저글링 세계 1등 재일교포 김창행 씨

증조할머니 "차별 안 받고 살려면 매력적인 사람이 돼야돼. 뭘 하든 1등을 해라."
할머니 "한국 민족이 최고의 민족이다. 1등이 돼야 한다."
어머니 "나라의 차이는 큰 게 아니다. 무조건 1등이 돼라."

세대가 변하며 일본 사회에서 살아남는 법에 대한 어머니들의 생각은 조금씩 변화가 있었지만, 공통적인 것은 "1등이 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의 손자이자 아들인 재일교포 김창행(22) 씨는 '저글링'으로 세계 1등이 됐다. 2000년과 2004년 세계 엔터테이너 선수권대회 챔피언을 차지한 저글링 예술가 김 씨가 환경재단의 '지구의 날' 기념 'STOP, CO2!' 환경 페스티벌에서 공연을 펼치기 위해 19일 서울을 방문했다.

20일 오후 잠실 롯데월드에서 첫 공연이 열리기 전 그를 만났다.

▲ 저글링 공연을 하고 있는 김창행 씨. ⓒ프레시안

일본사회의 차별 여전한데 '세계인'이라는 말은 공허


그는 1등이 됐지만 그에 대한 일본인들의 태도는 변했을까? 김 씨의 말을 들어보면 그렇지 않다. 그가 1등을 하고 왔을 때 일본 언론들은 '김치 파워', '불고기 파워'와 같은 수식어를 붙였다고 한다. 김 씨는 "그들은 내 능력을 바라보지 않고, 내가 '재일한국인'이라는 틀에서만 본다"고 말했다.

'차별'에 대한 그의 비판의식은 재일교포들을 다룬 일본영화들을 보는 시선에서도 느껴진다. 영화 <고>의 재일교포 주인공은 자신을 남한도 북한도 일본도 아닌 '세계인'이라고 규정한다. 김 씨는 이에 대해 단호하게 "<고>, <피와 뼈>, <박치기>와 같은 영화들을 싫어한다"고 말했다.

이유는 이와 같은 영화들이 재일교포의 차별받는 현실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김 씨는 "인류가 평등하다고 하면서 '세계인' 같은 얘기를 하지만, 차별과 억압에 동화된 상태에서의 세계인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비판했다.

"분단된 한국의 한국인이고 싶지는 않다"

그럼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을까.

그를 만나 명함을 주고받는데 그의 명함에 그려진 한반도 그림이 눈에 띄었다. 명함에 한반도 모양을 그려 넣은 이유를 물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고, 명함의 한반도 그림을 보고 사람들이 '무엇이냐'고, 혹은 '한반도를 그려 넣은 이유가 뭐냐'고 묻는다. 그러면 나는 한국의 분단된 상황과 함께 '재일'(在日)교포라는 자신의 상황을 설명해 줄 수 있는 계기가 된다."
▲ 한반도 모양이 그려져 있는 김창행 씨의 명함. ⓒ프레시안

김 씨의 국적은 대한민국이지만 그는 자신을 "한국인도 북한인도 일본인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가 우리와 같은 민족임에는 틀림없지만 "분단된 한국은 진짜 한국이 아니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남과 북으로 갈라진 한국이 아니라 진짜 '한국인'이 되고 싶다"며 "현재의 분단된 상황에서 '한국인'이라는 말은 잔인하다"고 말했다.

"친구가 재일교포란 말 듣고 일본인 친구 자살"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란 다른 재일교포 3, 4세들처럼 김 씨도 성장과정에서의 정체성 혼란이 컸다. 그가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 밴드 활동을 했는데, 밴드 멤버 중 일본인 친구 한 명의 부모가 "자기들 마음대로 일본에 들어와 살면서 우리 지역을 뺏으려 한다"고 말할 정도로 재일교포를 싫어했다고 한다.

그 일본인 친구는 이 얘기를 듣고 고민을 하다 가장 친한 친구에게 부모님의 말을 전하며 고민을 털어놨더니 그 친구는 "사실 10년 간 너와 친한 친구로 지냈지만, 한 가지 숨긴 것이 있는데 나도 재일교포야"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재일교포 친구의 고백에 충격을 받은 일본인 밴드 멤버는 자살했다고 한다.

이 때부터 김 씨는 재일한국인에 대해서는 물론 한국의 역사에 대해서도 많은 공부를 했다. 그리고 그는 한국, 북한, 일본, 재일교포라는 틀에 자신을 얽매지 않기로 했다.

김 씨는 언론을 통해 여러 차례 소개된 일본 교토의 '우토로' 출신이기도 하다. 그의 집안은 증조할아버지 대에 일본으로 건너왔다. 김 씨는 우토로에 5살까지 살았고, 현재는 교토 시내에 살고 있다고 한다.

우토로는 비행장 건설에 강제징용 된 조선인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던 곳으로 상·하수도 시설도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주민들이 마을을 일궈 살아왔으나, 최근 강제철거 위기에 처하기도 했던 곳이다. 현재 우토로는 땅의 소유권을 가진 일본 부동산 개발 회사가 70억 원에 주민들에게 땅을 팔기로 합의해 '살 길'이 생겼으나 재원 마련으로 곤란을 겪고 있다.

최근 한국 정부가 우토로를 지원하는 방안을 논의 중인데 김 씨는 이에 대해서도 "단순히 돈만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우토로가 왜 생겨났는지 등 우토로의 역사적 배경이 알려지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 김창행 씨. ⓒ프레시안

"나를 표현할 수 있어 저글링이 좋아"


어릴 때 우연히 저글링 용품을 파는 가게에 들렀다 당시 저글링 세계 챔피언의 저글링 장면을 보고 감동을 받아 저글링을 시작했다는 김 씨는 "1등이 되라"는 할머니, 어머니의 영향을 받았는지 피나는 연습을 통해 열다섯 살에 세계 챔피언이 됐다.

저글링의 매력에 대해 김 씨는 "연습과 구상을 통해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낼 수 있어 즐겁고, 내 생각과 센스를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저글링을 사랑한다"고 말했다. 특히 김 씨는 "세계를 돌아다니며 쇼를 보여주는데 말이 아니라 저글링을 통해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며 "내 스스로가 즐기며 다른 사람들을 즐겁게 해 줄 수 있는 내 이름을 건 쇼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김 씨는 한국말을 잘 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지난 2003년 한국 공연을 왔을 때 공연 자체를 하지 못했다고 한다. 사회자가 "한국말을 잘 못한다"고 소개하자 관객 중에 "한국말을 못하는 녀석이 동포냐"며 항의했고, "한국말을 해야만 한국인이냐"고 항의하는 관객 사이에 싸움이 일어나 공연 자체를 못한 것이다.

하지만 인터뷰를 끝낸 김 씨는 '저글링을 통해 의사소통을 하고 있다'는 자신의 말처럼, 롯데백화점 지하 광장에서 저글링을 통해 수많은 관객들에게 환호와 박수갈채를 받으며 훌륭하게 소통했다.

김 씨는 21일 오후 4시30분 잠실 롯데백화점에서, 22일 오후 1시30분엔 명동 롯데백화점에서 공연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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