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꾼에게 수십억대 생수공장을 빼앗긴 50대 사업가가 40번째 고소를 접수한 검사의 집요한 재수사로 8년만에 공장을 되찾게 됐다.
12일 청주지검에 따르면 김모(50) 씨는 1994년 경남 산청에 지인들과 힘을 모아 A음료라는 상호로 생수공장 착공에 들어갔다.
공사는 착착 진행돼 마무리 공사만을 눈앞에 두고 있었지만 서서히 자금압박이 시작되더니 1999년 5월에는 자금이 바닥나 더이상 공사를 진행할 수가 없었다.
인생을 건 회사를 포기할 수 없었던 김 씨는 지인을 통해 자금력이 풍부하다는 모 종합건설 박모 대표를 소개받았고 '공사대금 미지급시 생수회사를 양도한다'는 '제소전 화해' 조건으로 모자란 공사비를 충당받았다.
하지만 박 씨의 조건을 받아들인 게 화근이었다.
박 씨는 이후 공사대금을 부풀려 김 씨에게 청구한 뒤 대금이 미지급됐다는 이유로 김 씨 생수공장을 빼앗았고 모 종합건설의 실제 사주인 유모 씨에게 공장을 넘겨버렸다. 일생의 피땀이 밴 회사가 일순에 넘어간 것이다.
사기꾼에게 농락당했다는 생각에 김 씨는 부산경찰서와 부산지검을 찾아가 사기죄로 유모 씨 등을 처벌해달라며 고소를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유 씨가 사건에 개입했다는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혐의없음 처분을 내렸기 때문.
하지만 김 씨는 포기할 수 없었다. 수사기관이라는 수사기관은 죄다 찾아다니며 고소장을 냈고 혐의없음 처분을 받으면 또 다시 고소장을 냈다. 김 씨가 8년간 투쟁하며 수사기관에 낸 고소장만 39번. 긴 노력이었지만 일은 김 씨 뜻대로 되지 않았다.
오히려 지난한 시간 속에 생수공장을 함께 설립했던 비서는 심장병으로 숨졌고 친구는 뇌경색으로 쓰러졌으며 자신도 괴로움에 못이겨 자실기도를 여러 차례 했다.
또 6억 원 상당의 공사대금을 갚지 않았다며 모 종합건설로부터 고소 당해 기소돼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는 고통도 이어졌다. 당시 생수공장 직원들은 김 씨가 유 씨 등과 짜고 회사를 빼돌렸다고 비난하며 김 씨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다.
그러나 회사를 포기할 수 없었던 김 씨는 마지막으로 청주지검을 찾았다. 39번째로 경찰에 고소한 사건이 혐의없음 처분을 받은 지 며칠 지나지 않았지만 조목조목 적은 탄원서를 들고 청주지검 장재혁(38) 검사팀에게 희망을 찾아달라고 호소했다.
김 씨의 탄원서를 접한 장 검사팀은 처음부터 상습 고소인의 주장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한이 맺히지 않고서야 40번이나 고소를 했겠나'라는 생각으로 사건을 원점부터 재수사하기로 결정하고 관련 기록을 면밀히 검토하기 시작했다.
장 검사팀은 김 씨의 39번째 고소사건인 유 씨의 위증죄 사건에 주목했다.
장 검사팀은 "유 씨가 자신의 항소심 재판에 출석해 '생수회사 인수과정에 개입한 적이 없다'며 위증을 했다"는 김 씨 주장을 토대로 관련자들을 불러 조사를 했고 기록을 세세히 살펴봤다. 그러나 위증사건 성격상 피의자 자백이 없는 한 진실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다는 것만을 다시금 알게 됐다.
재수사는 한동안 진전이 없었지만 그래도 한가닥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장 검사팀은 이전 수사에서 모 종합건설의 주식변동상황과 주주명부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주주명부 조사를 통해 유 씨가 이 건설회사의 실제 사주인지를 파악하는 데 수사력을 모으기로 했다.
장부를 확보한 장 검사팀은 그간 주주명부와 일일이 비교하며 유 씨와 유 씨 친인척이 73%가량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음을 확인했고 대주주였던 유 씨가 모 종합건설 실제 사주로서 생수공장 인수과정을 몰랐다는 것은 거짓말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장 검사팀은 유 씨를 곧 소환했고 "생수공장 인수과정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며 혐의를 부인하는 유 씨 앞에 주주명부를 슬며시 내놨다.
일관되게 혐의를 부인하던 유 씨는 주주명부를 본 뒤 그만 사색이 됐고 건설회사의 실제 사주라는 점을 시인하고 생수공장 인수 건에 대해서도 실토를 했다.
장 검사팀은 이어 유 씨에게 김 씨 등이 본 피해회복을 위해 생수공장을 돌려주는 것이 어떻겠냐고 설득했고 유 씨는 고소인에게 생수공장을 돌려주겠다는 내용의 합의를 하겠다고 장 검사에게 약속했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8년간의 긴 싸움이 장 검사팀의 재수사로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김 씨는 3일 뒤 유씨로부터 생수공장을 되돌려주겠다는 공정증서를 받아들고 장 검사를 찾아 왔고 그간 어둡기만 했던 김 씨 얼굴은 환한 미소로 가득했다.
유 씨도 장 검사에게 합의사실을 확인해주며 "자백을 하니 마음도 후련하고 다리 뻗고 잘 수 있게 됐다"며 오히려 고마움을 표시했다고 검찰은 전했다.
장 검사는 여러 사정을 감안해 유 씨를 벌금 200만 원에 약식기소했다.
청주지검은 "장 검사팀의 성의있는 조사와 심도 있는 수사에 김 씨가 감동을 받아 감사의 편지를 보내 왔다"며 "가슴 뭉클한 김 씨의 편지는 가슴에서 나오는 친절로 민원인 사건을 대해야 한다는 성실함을 다시금 깨닫게 해줬다"고 말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