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조선일보>의 허풍, "미국 소 겁내지마!"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조선일보>의 허풍, "미국 소 겁내지마!"

[한미FTA 뜯어보기 470 : 기자의 눈]보수언론, "경쟁력 강화" 앵무새

"우린 無항생제·無농약…미국소 겁 안나"(조선일보)
500만 원 암소가 380만 원 "이런 망할 일이…"(경향신문)

12일자 두 신문의 축산업 관련 기사의 제목이다. 절반의 물이 담긴 컵을 보고 '반이나 남았다'와 '반밖에 안 남았다'는 시각 차이에 불과할까?

#1. 또 다시 '경쟁력' 타령하는 <조선일보>

<조선일보>는 경기도 양평의 '개군한우'라는 브랜드를 갖춘 축산농가의 예를 들어 미국산 쇠고기가 전면 수입돼도 경쟁력을 갖춘 축산농가는 얼마든지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 12일자 <조선일보>

'개군한우'는 혈통이 등록된 소만을 구입해 항생제를 쓰지 않고 사육하며, 사료를 통일해 맛과 육질을 균일하게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또 출생에서부터 사육·도축·가공·판매의 모든 과정이 담긴 생산이력 추적 시스템을 실시해 우수축산물 브랜드 인증을 받아 다른 한우에 비해 5~7% 높은 가격을 받고 있다고 <조선일보>는 소개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특히 개군한우 축산농가 모임인 '초우회'의 박동기 회장의 말을 통해 "당장은 소 값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지만 소 값이 떨어지면 싼 값에 송아지를 더 많이 사서 개군한우를 증산한다는 전략을 세웠다"며 "수입 쇠고기와 차별화를 잘 유지하면 계속 높은 가격에 많은 양을 판매할 수 있다"고 전했다.

'개군한우'는 좋은 품종의 소를 골라 좋은 먹이를 먹이고 항생제를 쓰지 않는 등 바르게 기르고 생산이력제를 통해 정직하게 파는 등 우리나라 축산 농가가 가야할 길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이를 통해 한미FTA를 파고를 넘을 수 있을 것이라 <조선일보>는 보도하고 있다.

#2. 소값 폭락에 초점 맞춘 <경향신문>
▲ 12일자 <경향신문>

이에 반해 <경향신문>은 축산업의 미래에 대해 비관적이다. 강원도 횡성의 우시장 르포를 통해 "한미FTA 타결 이후 열흘 만에 소 값이 20%나 '뚝' 떨어졌다"고 보도했다. <경향신문>은 '한우 300마리를 키우는 축산농'의 "지난해 500만 원 하던 4~5년생 암소가 380만 원대로 떨어졌다. 너무 가슴이 아파 아예 출하하지 않고 있다"는 말을 전했다.

<경향신문>은 또 "FTA찬성한 놈들, 수입 쇠고기 먹고 잘먹고 잘살라고 그래", "문제는 지금부터다. 망하는 건 시간문제"라는 축산농의 '격정과 푸념'을 전하며 "'팔자' 분위기가 확산되면 앞으로 소 값은 절반 넘게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조선일보>와 <경향신문>의 보도를 종합해보면 퍼즐이 맞춰진다. 소규모 축산농이 떨어진 소 값과 비싼 사료값을 감당하지 못해 헐값에 소를 시장에 내 놓고 축산업을 포기하면, 소 구입비와 시설비 등의 자본력을 갖춘 대규모 축산농이 싼 값에 소를 사들여 더 큰 규모의 축산농으로 발전해 미국 축산농가와도 맞설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춰 나간다는 것. 한마디로 정부가 얘기하는 '구조조정'이다. 경쟁력 있는 농가는 살아남고 경쟁력이 없는 농가는 일찍 축산을 접으라는 얘기나 다름없다.

#3. '벤처농업론'의 허상 지적한 <한겨례>

'경쟁력 강화' 논리는 얼핏 보기에는 그럴싸하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한겨레>는 이날 '벤처? 도대체 몇 명이나 성공하겠나'라는 제목으로 '경쟁력 강화'의 허황된 논리를 지적했다.

윤석원 중앙대 산업경제학과 교수는 이 기사에서 "벤처농업해서 성공하고 경쟁력 키우라는 얘기는 아이들한테 서울대 들어가라는 얘기와 똑같다. 도대체 몇 명이나 성공하겠는가"라며 "극소수 성공사례에 기댄 벤처, 시이오(CEO) 농업론 등 시장논리에 입각한 농업개혁 담론은 농촌 현실을 무시한 탁상공론"이라고 말했다.

"선진국형 보조금 정책이 우선되지 않으면 경쟁력 없는 95%는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윤 교수의 말과 함께 "실제 미국과 유렵연합(EU) 등 농업 선진국들의 경쟁력 유지 기반도 막대한 보조금"이라고 보도했다. 미국이 막대한 보조금을 통해 농업 생산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프레시안>도 2005년 보도한 적이 있다.(☞관련기사 보기)

이런 '경쟁력 강화' 담론의 보도행태는 지난 2005년 11월 WTO에서 쌀 개방이 이뤄지면서도 나타났던 현상이다. 당시 보수 언론들은 주로 얼마 안 되는 부농(富農)을 예로 들며 경쟁력을 갖춘 농가는 개방화 시대에도 얼마든지 살아남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 12일자 <한겨레>

#4. 경쟁력 강화, 누구를 위한 얘기여야 하는가

한 농업전문가는 2년 전 "지난 10년간의 농업 기사를 보십쇼. 해는 바뀌어도 기사 내용이 얼마나 똑같은지 놀랍다"고 말했다. 이제 이 말은 "지난 12년 간 농업 기사가 똑같다"는 말로 '업데이트' 해도 무방할 듯 하다.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은 우루과이라운드(UR) 때는 '대농 육성을 통한 농업 경쟁력 강화'를, 세계무역기구(WTO)의 도아아젠다협상(DDA) 때는 '친환경 농산물 재배를 통한 경쟁력 강화'를 내세웠고, 한미FTA에서도 역시 '경쟁력 강화'라는 레퍼토리를 들고 나섰다.

앞서 지적했듯이 이 '경쟁력 강화' 논리에는 함정이 숨어있다. 친환경 농산물이나 축산물이 다른 일반 농산물에 비해 5~10% 비싼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시장가격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싸다는 말이다. 지금 소 값이 500만 원이고 친환경 소가 550만 원을 받을지라도, 소 값이 300만 원으로 떨어지면 제아무리 좋은 품질의 쇠고기라도 400만 원을 넘게 받을 수는 없다. 기본 시장 가격이 지탱되지 않으면 '친환경'이나 값비싼 브랜드화도 무용지물이다.

또한 '상대적으로' 비싼 농축산물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도 생각해봐야 한다. 대형마트에 가서 식육코너에 적힌 가격표를 보자. 서민들은 제삿날이라 쇠고기국 끓이려해도 비싼 한우 가격에 어쩔 수 없이 조상들에게 호주·뉴질랜드산 쇠고기국을 올리고 있다. 이미 '식탁 양극화'는 시작된 셈이다.

경쟁력 있는 한우는 분명히 수요가 존재할 것이고 살아남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살아남은 '경쟁력 있는' 쇠고기는 이 양극화 시대에서 '경쟁력이 있어' 한우고기를 사먹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소비자들의 전유물이 되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한다.

#5. 우리는 경쟁력이 뭔지 몰라 안 하나

농민들은 불만이 많다. 평소에 언론이 농업이나 농민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다가 서울에 올라가 '데모'라도 해야 관심을 가져주는데 보수 언론들은 그마저도 "길 막힌다"고 농민들을 비난하기 때문이다. 그 다음 관심이 생길 때는 WTO나 FTA같은 농산물 개방 이슈가 터질 때지만 보수 언론들은 매번 '경쟁력을 가지라'고 충고하는데만 급급하다.

하지만 그 농민들이라고 어찌 '경쟁력' 고민을 하지 않겠는가. 1년에 두어번 서울에 올라와 데모를 한다지만 집에 있을 때는 '먹고 살 궁리'에 여념이 없다. 농업의 위기가 시작된 것은 이미 YS 정부로 거슬러 올라가고 그 동안 위기가 한 번도 아니었던 적은 없다. 십수년을 나름대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발버둥 쳐왔으나, 나아지기는 커녕 정부가 나서서 더 큰 난관을 던져주고 있으니 살 맛이 안 나는 것이다.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되려면 검역 기준 완화라는 '검역 주권'을 건 한미 간의 한판 싸움을 거쳐야 한다. 그리고 이 싸움에서 한국이 다시 한번 미국에 굴복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FTA를 준비하는 사람들'이라는 부제로 버젓이 나가는 <조선일보>의 기사는 이미 미국에의 굴복을 기정사실화한 시각의 전형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