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타결은 한국의 사회경제구조에 미치는 파장만큼이나 정치지형에도 엄청난 변화를 몰고 오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변화의 핵심은 지난 10년 간 민주주의와 사회개혁을 주도해 온 자유주의 중도개혁세력의 몰락이다. 이제 우리사회에서는 진보개혁의 깃발로 정치적 다수를 만드는 전략이 당분간 그 지반을 잃게 되었다. 수평적 정권교체라는 해방 반세기만의 역사적 과업을 달성했던 중도개혁세력의 신화는 10여 년 만에 막을 내리고 있다.
지난 시기 중도개혁세력이 정치적 다수를 형성할 수 있었던 이유는 김대중, 노무현같이 카리스마를 갖춘 정치인이 '변화와 개혁'이라는 아젠다로 진보층의 열정을 자극하고 여기에 실용적 중도세력을 광범위하게 끌어당겨 결집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민주노동당과 같은 급진적 진보세력에 의한 원심력을 강력하게 억제할 수 있었던 것도 정치적 다수 형성에 중요한 요인이었다. 그렇게 해서 좌우를 대척으로 하는 '저변이 넓고 강한' 중도개혁진영이 구축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카리스마적 정치지도자도 없고, 대중의 열정과 흥분을 유발할 '정치개혁' 같은 아젠다도 없어졌다. 강력한 응집력을 발휘했던 진보층은 보편적 호소력을 갖는 아젠다의 부재로 오랜 기간 침묵하고 있다. 게다가 중도개혁세력의 최대지지기반인 호남지역은 진보성향의 지지집단과 중도·지역적 성향의 지지집단으로 분열되었다.
노무현을 대체할 진보적 코드의 리더십 부재는 중도개혁진영의 그 어떤 정치적 기획도 불가능하게 했다. 실질적으로는 '신자유주의'에 순응해 왔던 정치행보에도 불구하고 조·중·동 및 극우세력의 끊임없는 박해와 싸우는 노무현의 모습에 지지자들은 끝내 애증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그런 와중에서 감히 '반노'의 깃발을 들려던 정치인들은 독기 품은 노무현의 말 한마디씩에 줄줄이 쓰러지고 말았다. 이는 2001년~2002년 사이 '김대중'과 '동교동'이라는 엄청난 권력집단을 뚫고 나와 새로운 구심을 형성했던 민주당 쇄신운동의 경험과 완벽하게 대조된다. 결국 범여권의 비극은 '극노(克盧)'에서의 실패로 귀결된다.
클린턴과 블레어, 그리고 노무현
바로 이런 대안부재의 상황은 한나라당이 아무리 죽을 쑤고, 이명박이 아무리 강력한 네거티브에 걸려도 중도성향의 유권자들이 이탈할 수 있는 출구를 단단히 봉쇄했다.
5.31지방선거는 국민들이 열린우리당에 대한 위임(mandate)을 철회했음을 의미하는 사건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깨진 독을 붙여보겠다고 '빅딜'이라는 쇼를 벌이는가 하면, 그것도 여의치 않자 '대통합신당'을 띄워 어떻게든 생존을 도모해 보려 했다. 하지만 그것은 국민들이 볼 때 모두 민의에 대한 부질없는 저항일 뿐이었다. 그들의 실패는 '만회될 수 있는 단계'를 지나 '규정되고 구조화되는 단계'로 옮아갔다.
바로 이 지점에서 희극배우 노무현 대통령이 등장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의 법칙은 냉혹하다. 노 대통령이 의식했든 안했든 빈사상태에 이른 임기 말 권력을 제대로 관리해 나가기 위해서는 힘센 자와 타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키아벨리에 따르면, 어떤 군주가 대중으로부터 증오를 받는 일만 없다면 아무리 잔혹한 집단의 음모라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대중의 증오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보다 '강한 세력'의 증오를 피하기 위해 전력을 다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보수층을 만족시키려는 노무현정권의 행동을 냉철한 세력균형의 법칙이라고 이해해야 한다. 하지만 마키아벨리는 여기에 하나의 단서를 달고 있다. 바로 그런 행동이 '강한 세력'으로부터 권위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노무현과 클린턴, 블레어의 비교가 적절할 듯싶다. 클린턴은 그의 집권초기 의료보험개혁 등 진보적 아젠다가 좌초되면서 급속히 곤경에 빠지자 그 돌파구를 보수적 아젠다를 흡수하는 우(right)로의 선회에서 열었다. 그 과정에서 민주당 내부에서는 진보파와 중도파 간에 격렬한 논쟁이 전개됐다. 하지만 클린턴은 진보파를 끝까지 승복시켜 끌고 갔고, 민주당은 큰 균열 없이 정치적 타협에 도달했다. 동시에 중도보수층의 지지를 끌어들여 국정운영을 안정시켰고, 재선에 무난히 성공할 수 있었다. 바로 클린턴의 이 같은 훌륭한 자질들이 자유주의 세력의 눈에는 존경스럽고 만족스러웠으며, 보수주의자들의 눈에는 만족을 느끼면서도 경외심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영국의 블레어도 마찬가지였다. 백년 전통의 노동당 노선을 오른쪽으로 수정하는 데에 구좌파의 반발이 당연히 거셌지만 그는 노동당의 새로운 미래비전을 약속하며 당내 반대파들의 저항을 무마할 수 있었고, 마침내 보수당의 품에서 중도층을 다시 탈환하여 집권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에 반해 노무현대통령은 자기 둥지를 모두 부숴버렸다. 그럼으로써 한국사회에는 심각한 정치적 세력불균형 상태가 초래되었다. 한미 FTA 이후 정치지형은 양극화와 파편화가 심화되고 있다. 노대통령의 한미 FTA 담론 속에는 1960년대 월남전 특수를 연상시키는 대박성장의 기대들로 꽉 차 있고, 중도적 진보층과 사회적 패자들을 조금이나마 설득해 볼 만한 공공성, 약자에 대한 배려, 민주성의 재료는 거의 없다. 그는 한미 FTA로 피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사회적 약자들을 진심으로 위로하고 "그렇지만 이 길밖에 없지 않느냐"고 간곡하게 설득하는 대신에 '고작 700명의 어민피해를 가지고 부풀리느냐'며 몰인정한 표정을 거침없이 드러냈다. 과거 그의 동지였던 정치적 반대자들을 향해서는 야유와 조롱을 서슴지 않았다. 그는 늘 그래 왔듯이 '극단의 리더십'을 택하였다.
극단의 리더십과 한미 FTA는 가장 나쁜 최악의 조합이다. 세계화시대에 그 나라의 성패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정치'다. 한미 FTA는 치명적 독성을 갖고 있긴 하지만 '불가피성'이란 측면도 있다. '정치'는 여기에서 독성과 기회를 상당부분 조절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노대통령은 "한미 FTA는 정치의 문제도, 이념의 문제도 아니고, 먹고 사는 문제"라고 말했다. 세계화시대에 과연 '먹고사는 문제'와 정치는 별개인가?
중도개혁 노선 개척의 실패
세계화시대는 상시적 구조조정의 시대다. 그런 만큼 불확실성이 만연하며 사회적 패자들의 저항 또한 격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들의 저항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면서 구조조정을 유연하게 수행해 나가기 위해서는 정치적 세력균형과 그에 입각한 타협의 정치문화가 필요하다. 이런 정치적 장치가 잘 구비되어 있는 나라들이 오늘날 세계화 과정에서 가장 성공하고 있다는 사실은 국제적 비교사례들이 보여주는 통칙이다.
그런데 노대통령은 정치를 통해 문제를 풀지 않고 반(反)정치의 논법으로 문제를 풀었다. 그는 '극단의 리더십'으로 세력균형을 깨버렸다. 반정치는 사회이익갈등에 대한 억압이다. 우리는 '반정치 세계화'의 아주 나쁜 선례를 아르헨티나의 메넴정권, 페루의 후지모리정권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은 집권초기 급진적 신자유주의정책을 추진하면서 '먹고사는 문제'를 내세워 반대자들을 억압함으로써 가난한 민중들의 환호를 불러일으켰지만 결국에는 민중들의 손에 의해 임기 도중 축출되고 말았다.
물론 한미 FTA 반대세력의 주장이 다 옳다고 할 수만은 없다. 특히 '중도적' 진보주의자라면 굳이 한미 FTA 자체를 보이콧할 필요까지는 없다. 한미 FTA에 대한 비판적 태도가 혹시 장기적으로 '반세계화', '반개방'의 이미지로 고착될 우려는 없는지를 항상 신중하게 점검하면서 가야 한다. 그런 점에서 김근태, 천정배, 임종인의 행보는 노 대통령의 반대 극단에 위치한다. 사실 국민들은 한미 FTA가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 잘 알지 못한다. 한미 FTA에 대한 여론의 찬반은 정치세력들의 여러 가지 정치적 태도요인에 영향을 받는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사람들이 미래의 막연한 결과에 대하여 불안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한미 FTA에 통으로 안티(anti)를 거는 대신 주요 핵심이슈에 집중(focusing-on)하여 사람들의 불안을 자극하는 전략을 쓰는 것이 더 옳았다. 가령 '국민의 치명적 건강권을 담보로 협상하는 것만은 안 된다'고 강하게 버티는 것이 더 나았다.
어찌됐든 결론은 이것이다. 즉 노 대통령이나 김근태 어느 쪽도 한미 FTA 이슈에서 중도개혁노선의 개척에 실패하고 양극단으로 분열되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노무현과 김근태 모두의 실패를 의미한다. 노 대통령은 자신을 '유연한 진보'라고 규정했다. 그런데 다양한 세력의 정치적 연합체일 수밖에 없는 중도개혁세력을 승복시키지도 못하고 타협을 도출하지도 못한 노 대통령이 '유연한 진보'인가, 아니면 그것에 성공한 클린턴과 블레어가 '유연한 진보'인가?
중도개혁의 시대의 종언
노무현 정권은 일시적으로 보수층과 한나라당의 협조를 받아 정국을 안정적으로 관리해 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보수세력의 선처와 자비심에 의존하는 권력의 유지가 지속적으로 가능할 수 없다. 앞으로 보수세력들은 지난 10년 동안 그들이 탈취당했던 기득권을 다시 토해내라고 요구할 것이다. 이제 곧 물러가면 그만인 노무현 정권은 그들의 요구를 하나씩 들어주면서 임기 말까지 권력을 안정적으로 관리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미 FTA로 획득한 보수층의 지지를 발판으로 사회투자국가론, 한반도평화체제정착 같은 진보적 아젠다의 공론화에 가속력을 붙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이야기이다. 한미 FTA, 개헌, 사회투자국가론 등은 전선(front)의 통일성이 없이 아무렇게나 뿌려져 있는 아젠다들이다. 그래서 보수성향의 논객 송호근 교수 같은 이는 노무현 정권을 향해 "정치학을 모르는 정권"이라고 비웃지 않았는가?
중도개혁의 시대는 끝났다. 구심이 완전히 핵분열되어 해체되었기 때문이다. 최근 자칭 '중도'를 표방하는 여러 정치집단들이 출현하고 있지만 그들은 정체성의 중심이 모호하고 응집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계속 시끄럽게 몰려다니면서 지리멸렬할 것이다. 반면에 보수세력은 극우에서 중도에 이르는 광활한 영토를 개척할 수 있게 됐다. 이제 압도적 보수우위의 정치구조가 정착되어 가고 있다.
중도개혁세력 내 이념적 진보층의 상당부분은 민주노동당에 흡수될 것이다. 그 덕분에 민주노동당은 생존의 가능성이 높아졌다. 안티(anti)전략은 민주노동당의 생존전략에 부합한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의 생존은 정치적으로 별 의미가 없다. 그것은 보수가 압도적 우위를 점하는 '정립과 반정립'의 지배구조가 정착되어 가는 일부분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의 생존에 상관없이 진보세력은 전반적으로 고립되는 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다.
적어도 중도지대에서 새로운 진보적 구심이 생겨나는 특단의 반전이 없는 한 이상의 시나리오는 불가피한 흐름이 될 것이다. 중도적 진보개혁세력의 몰락이 국가적 불행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다. 87년 체제가 만들어낸 민주세력의 저변은 의외로 두텁다. 그들은 길을 못 찾고 분산되어 있다. 이런 사람들을 결집하여 중도지대에 새로운 진보적 구심을 만들고 중도개혁진영을 재건할 수 있는 가능성은 딱 10% 정도 있다.
여기에서 그들이 어느 정도 유의미한 결과를 창출할 수 있다면 위기의 심도와 국제적 비교사례들을 검토할 때 약 10년 정도면 부활에 성공할 수 있다. 그렇지 않고 그냥 지지부진한 흐름이 이어질 때 올 대선 결과는 대략 60(한나라당):20(중도세력):10(민주노동당) 정도의 득표 구도가 되지 않을까 전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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