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가가 연일 새영화로 채워지지만 한편에서는 안방극장용으로도 놓치면 아까운 작품들이 잇따르고 있다. 극장업계의 양극화, 상업영화와 비상업영화의 극단적 차별화 때문에, 뛰어난 작품성을 지녔지만 일반극장에 걸리지 못하고 바로 DVD로 직행하는 작품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국내 DVD시장은 전체 영화시장의 10%선에도 못미치는 실정. 때문에 DVD로 출시가 되긴 했으나 이런 저런 작품들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지나치기가 쉽다. 이번 주말에 인생과 세상을 보다 가깝게 느낄 수 있는 수작 DVD 두편을 소개한다.
. | | 웨더 맨 감독 고어 버빈스키 주연 니콜라스 케이지, 마이클 케인, 니콜라스 홀트 |
영화는, 제목 그대로 기상리포터가 직업인 한 남자의 일상을 그린다. 시카고의 한 로컬방송국에서 일하고 있는 주인공은 자신의 삶이 위기에 봉착해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의 직업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있는데, 어찌 보면 기상리포터란 그리 크게 성공한 것도 또 반면에 그렇게 실패한 것도 아니다. 배를 곯고 사는 인생은 아니지만 길거리에만 나가면 자신의 모든 것을 아는 척 하는 사람들 때문에 피곤해지거나 아니면 일기예보가 틀렸다고 화풀이하는 사람들을 만나기 일쑤다.(사람들은 그에게 패스트푸드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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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더 맨 ⓒ프레시안무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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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는 오래 전부터 별거한 채 살고 있으며 두 아이 중 큰 아이, 곧 청소냔 아들은 한때 마약중독에 빠졌다가 지금 재활치료를 받고 있고 둘째인 딸은 비만에다 모든 일이 다 시큰둥한, 무미건조한 청소년이 되가고 있다. 젊은 시절부터 각광을 받으며 퓰리쳐 상까지 받은 아버지에게 주인공은 늘 콤플렉스를 느끼지만 그 아버지조차 시한부 삶을 선고받게 돼 그의 마음은 심란하기 그지없다. 위로받고 싶지만, 그 어느 누구에게도 위로받지 못하고 살아가는 주인공의 모습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빼닮았다. 위로받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다른 사람을 위로할 줄 알아야 하는데, 사람들은 그 방법을 잃어버린지 오래다. 지리멸렬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들의 초상화를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새삼 인생에 대해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다. <캐러비안의 해적> 시리즈, 공포영화 <링> 등을 만들며 최근 할리우드의 흥행감독으로 떠오른 고어 버빈스키가 제대로 된 '인생찾기' 영화를 만들었다. 니콜라스 케이지는 요즘 <고스트 라이더>란 블록버스터로 다시 한번 주가를 한창 띄워놓고 있지만 그의 필모그래피는 뭐니뭐니해도 이렇게 작고, 의미있으며, 개성이 강한 작품들로 채워지는 게 제격이다. 거기다 영국출신의 연기파 배우 마이클 케인이 함께 출연하고 있으며 <어바웃 어 보이>의 어린 소년이 니콜라스 홀트가 이제 키가 훌쩍 큰, 다 자란 청소년으로 나온다.
. | | 트러스트 더 맨 감독 바트 프로인들리히 주연 줄리안 무어, 데이빗 듀코브니, 메기 질렌할, 빌리 크루덥 |
한때 잘나가는 광고회사 카피라이터였으나 일에 싫증을 느껴 직장을 때려친 톰(데이빗 듀코브니)은 전업남편으로 애 둘을 키우며 살아간다. 아내 레베카(줄리안 무어)는 성공한 영화배우이자 인정받는 연극배우. 한창 새로운 연극무대를 준비중이다. 친구이자 아내의 동생이기도 한 토비(빌리 크루덥)는 일라인(메기 질렌할)이라는 여자와 7년간 동거중이며 이 네명은 주말이면 종종 단골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함께 하며 사이좋게 지낸다. 하지만 이들의 행복은 여기까지일 뿐. 네사람 모두 알고 보면, 2% 부족한 자신의 삶에 갈증을 느끼고, 뭔가로의 도피처를 찾고 있으며, 새로운 욕망의 일탈을 꿈꾸고 있다. 사랑하지만 뭔가 채울 수 없는 모자람이 있는 삶들. 일레인은 토비와의 결혼과 출산을 꿈꾸지만 자유로운 삶을 원하는 토비는 도통 거기에 관심이 없고 톰은 톰대로 일상의 무료함을 깨는 파격적인 섹스를 원하지만 아내와는 그게 가능하지가 않다. 톰은 결국 학부모 중의 한명과 혼외정사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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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러스트 더 맨 ⓒ프레시안무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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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사람의 관계는 크게 흔들린다. 토비와의 예측하기 어려운 생활에 염증을 느낀 일레인은 그와의 결별을 선언하고 톰의 외도 사실을 눈치 챈 레베카는 그를 집밖으로 쫓아낸다. 단란하고 안온한 생활은 환상일 뿐, 일순간에 모든 것은 균열을 일으킨다. 레베카가 중간에 일레인에게 얘기하는 대사가 인상적이다. "남녀관계란 서로 막대기 끝을 쥐고 서있는 모습이야. 막대기가 길면 상대가 잘 안보이는 법이지." 혼외정사에 빠진 톰이 결국 레베카에게 고백하는 대사도 가슴에 와닿는다. "나는 길을 잃었어. 나도 내가 누구인지 잘 모르겠어." 길을 잃지 않으려면 막대기의 끝을 놓치면 안된다. 더 좋은 것은 막대기 끝을 잡고 있는 것보다 상대방의 손을 잡으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영화는 보여준다. 현대를 살아가면서 남녀관계란, 연인이든 부부든, 그 애정의 관계란 고정된 불변의 것이 아니라 늘 흔들리고 변하는 것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사랑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영화가 아니라 관계의 변화와 그 최종의 길을 보여주는 영화다. 엔딩은 지나치게 할리우드적이지만 그 전까지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은 다분히 비할리우드적이다. 어느 쪽이 마음에 드는지는 보는 사람들의 몫이다.
로 유명한 데이빗 듀코브니를 오랜만에 만날 수 있다. 줄리안 무어, 빌리 크루덥, 메기 질렌할 모두 할리우드에서 내로라하는 성격파 배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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