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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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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 되다

[한미FTA 뜯어보기 437 : 기자의 눈]한미FTA로 완성된 '노무현식 민주주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최종 타결된 지난 2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농업과 제약산업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지만 그밖에는 더 어려워질 분야는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노무현 대통령을 보고 박정희 전 대통령을 떠올렸다.

노 대통령이 한미 FTA를 추진해오면서 보여준 리더십, 즉 특정 계층의 희생을 담보로 경제성장을 추진하는 것이나, 자신이 제시한 목표에 따라오지 않고 저항하는 이들은 공권력을 동원해 억압하는 방식이 과거 박정희 전 대통령의 리더십과 꼭 닮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노 대통령의 리더십은 한나라당과 조.중.동 등 보수언론이 "용기있다"고 극찬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노대통령, 박정희 전 대통령 비판해 왔지만

사실 노무현 대통령은 임기 내내 박정희 전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워 왔다. 노 대통령은 과거사 청산 등을 추진해 오면서 여러 차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독재'를 비판했었다.

노 대통령은 지난 2006년 연두기자회견에서 '양극화 해소'를 화두로 제시하면서 박정희 정권의 불균형 성장을 문제로 지적하기도 했다. 당시 <청와대브리핑>에는 "(박정희 정권의) 경제개발계획은 압축성장을 가능케 하여 '한강의 기적'을 낳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양극화 심화의 역사적 뿌리가 됐다"고 주장하는 글이 실리기도 했다.

노 대통령의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비판은 '역사 인식' 수준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한나라당 차기 대권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와 이명박 전 시장과 정치적 대립 전선을 긋는 데 매우 유효하게 사용되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지난 2월 22일 열린우리당 의원들과 만찬을 함께한 자리에서 "대통령은 그 시대와 역사를 상징하는 자리"라면서 "'유신'의 잔재가 남아 있는 박 전 대표와 '개발'의 상징적 존재인 이 전 시장이 대통령이 된다면 걱정스러운 면이 있다"고 두 대권주자를 깎아내리기도 했다.

FTA는 '불균형 성장 전략' 아닌가

하지만 한미FTA에 '올인'하기 시작하면서 노 대통령과 박 전 대통령의 '거리'는 급속도로 좁혀졌다.

노 대통령은 지난 2일 대국민담화에서 "FTA는 정치문제도, 이념의 문제도 아닌 먹고사는 문제이자 국가경쟁력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그 간 노 대통령은 한미FTA를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말해 왔다. '경제성장'을 위해 경쟁력이 뒤처지는 일부 계층의 희생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다.

노 대통령은 지난달 20일 열린 '농어업분야 업무보고'에서 "농업도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면서 "염치도 없다. (농민은) 한.미 FTA 하면 또 돈 내놓으라고 하고, 한.중(FTA) 하면 또 내놓으라고 한다"고 농민들을 힐난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은 "'농촌 부락이 일어나지 못하는 것은 그 부락민이 게으르기 때문'이라고 농민을 꾸짖던 희대의 훈육주의자 박정희 전 대통령을 떠올렸다"고 비판했다.

이처럼 농민과 중소기업 등 경쟁에 뒤처지는 이들의 희생을 담보로 한 '노무현식 경제발전 모델'은 박정희 정권의 '성장우선주의'와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청와대는 박정희 정권의 경제개발계획에 대해 소수 재벌 육성, 공업우선 정책, 수도권과 영남지역에 국한된 특정지역 집중개발 등을 특징으로 하는 '불균형 성장전략'이자 '차별정책'이라고 비판했지만, 한미FTA도 경쟁력 없는 산업은 과감히 포기하는 '불균형 성장 전략'이자 '차별정책'일 뿐이다.

따라서 현 정부가 "박정희식 개발정책이 양극화의 뿌리"라고 지적했던 것이 진실이라면, "한미 FTA가 양극화를 심화시킬 것"이란 요즘 세간의 주장 역시 괜한 트집잡기일 수 없다.

'한국적 민주주의'에 이은 '노무현식 민주주의'?

또 노 대통령은 한미FTA 협상이 진행되는 내내 'FTA 반대' 목소리를 억눌렀다. 노 대통령은 스스로를 절차적 민주주의를 완성시킨 대통령으로 자리매김하고 싶어했으나, 유감스럽게도 노무현 정권 하에서 한국의 민주주의는 후퇴했다고 상당수의 정치학자들이 평가했다.

경찰은 지난해 11월 이후 한미FTA 범국민운동본부(범국본)가 주최하는 집회를 전면 금지해 왔다.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억압하는 이 같은 조치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가 나서서 "집회 신고를 수용해야 한다"고 권고했으나 정부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또 불법집회를 강행했다는 이유로 범국본 관계자들에 대한 무더기 구속, 연행, 수배 등이 이어졌다.

또 정부는 엄청난 예산을 들여 FTA 홍보 광고를 신문과 방송을 통해 내보냈다. 하지만 범국본이 제작한 한미 FTA 반대 광고는 심의에서 사실상 방송 불가를 의미하는 '조건부 방송 가능' 판정을 받았다. 박정희 정권 당시 유신헌법에 반대하는 광고도 '정부 정책에 반한다'는 이유로 심의에서 탈락했었다.

자신에 반대하고 저항하는 이들을 공권력을 동원해 억압했다는 점에서 노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과 닮아 있었다.

더 나아가 이런 '경제발전'을 위해 '민주주의'를 양보할 수 있다는 발상은 경제성장과 국가안보를 강조했던 박정희 정권의 '한국적 민주주의'를 연상시킨다. 한미FTA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노무현식 민주주의'는 박 전 대통령의 '한국적 민주주의'를 계승한 셈이다.

보수세력도 인정하는 노 대통령의 리더십

노 대통령이 박 전 대통령을 '닮았다'는 점은 기자만 감지한 것이 아니다. 이는 한미FTA를 계기로 가장 든든한 '지원세력'이 된 보수언론도 발견한 사실이다.

3일자 <중앙일보>에 실린 "노대통령과 한미 FTA 협상단 잘했다"라는 기사를 쓴 김종혁 사회부문 에디터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면서 다음과 같이 썼다.

"그는 많은 걸 잃었다. 지지층으로부터 '배신자'소리를 들었다. 그를 노골적으로 밀었던 일부 방송.신문.인터넷 매체도 공격 대열에 가담했다. 정치인이 이런 걸 감내하긴 정말 힘들다. 그야말로 '노무현이 아니면' 못했을 것이다.

그런 게 정치적 리더십이다. 68년 경부고속도로를 착공하고 포항제철 만들 때 박정희 대통령은 엄청나게 욕을 먹었다. 70년 마산수출자유지역을 세울 때도 그랬다. 벌거숭이 민둥산이 지금처럼 울울창창해진 것도 박 대통령의 결단 덕분이었다. 그를 미워해도 이런 사실 자체를 부인할 순 없다. 나는 노 대통령이 지금 '최종 결정을 내리는 자의 고독'을 많이 이해했을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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